[프라임경제] ASML이 넷제로 달성 목표를 10년 앞당긴 것과 관련해 국내 반도체 업계가 긍정적 신호탄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ASML의 극자외선(EUV) 장비는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이나 전력 소모량이 기존 대비 10배 이상 많아 그간 친환경 경영의 걸림돌로 지목돼 왔기 때문이다.
1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ASML은 최근 발표한 연간 보고서에서 오는 2040년까지 고객사를 포함한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넷제로란 탄소를 포함한 모든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이 0이 되는 것이다.
ASML은 LNG나 원전 없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만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이와 함께 넷제로 달성 시기도 기존 2050년에서 2040년으로 10년 앞당겼다.
특히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고객사와 협력에 나서겠다는 게 골자다. ASML은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에 필요한 EUV 장비를 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고객사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양산 설비를 24시간 가동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크다. 최첨단 공정으로 갈수록 전기 사용량은 더욱 늘어난다. 최첨단 공정을 위해선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필수적인데, 이 장비는 연간 1㎿(메가와트)의 전기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0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으로 기존 장비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ASML의 온실가스 배출 대부분이 고객사의 제품(장비) 사용 단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고서에 따르면 ASML이 제품 생산과 전력 사용 단계에서 직접 배출한 온실가스는 2022년 38.1kt(킬로톤)에서 지난해 35.1kt으로 줄었지만, 고객사를 통한 간접 배출량은 1만1936.3kt에서 1만5025.2kt로 급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피터 베닝크 ASML 회장. ⓒ 연합뉴스
글로벌 기업의 넷제로 반도체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 속 ASML의 방침이 국내 반도체 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지난해 ASML 매출의 약 2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는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ASML의 보고서는 고객사와 협력사가 같이 넷제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EUV 공정에서 전력 사용량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고객사의 탄소중립 실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반도체 업계 화두는 단연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정점에 있는 빅테크가 협력사에 RE100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으로 이는 반도체 수출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반도체는 주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BMW 등 이른바 RE100 기업에 납품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RE100 기업이 요구하는 반도체 생산 조건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RE100에 가입하며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발표했다. 오는 2030년까지 7조원을 투자해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신환경경영전략은 2030년 디바이스 경험(DX) 부문부터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반도체 중심의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을 포함한 전사는 2050년을 RE100 기준을 충족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보다 앞선 2020년 11월 RE100에 가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꾸준히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그 수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대부분 재생에너지 사용은 국내 공장이 아닌 해외 사업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 사업장에서, SK하이닉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와 중국 우시‧충칭 등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완료한 상태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만6000기가와트시(GWh)로 전체 발전량의 8.1%에 머물렀다. 이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만1731GWh, 1만41Gwh의 전력을 소비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47%가량을 삼성전자 혼자 써야 RE100 달성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 기준으로는 전체의 약 22% 수준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꼬리표까지 달게 됐다. 더 클라이밋 그룹과 탄소공개정보프로젝트(CDP) 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RE100 2023'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 중인 국내외 RE100 가입 기업 165개사 중 66개사(40%)는 한국을 '재생에너지 조달에 장벽이 있는 국가'로 꼽았다.
보고서는 RE100 가입 기업의 한국에서의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9%로, 독일(89%), 영국(88%), 미국(77%)은 물론 중국(50%)과 일본(25%)보다 현저히 낮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부는 원전 발전을 늘리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줄일 계획이다. 우리나라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원은 석탄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지난해 하반기 에너지수요전망에 따르면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은 석탄이 31.1%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원자력 30.4%, 가스 27.9%, 신재생·기타 10.3%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