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변동성에 따라 실적이 널뛰는 정유업계가 윤활유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본업인 정유 부문에서 발생한 손실을 상쇄하며 새로운 캐시카우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1조9039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51.4%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에쓰오일(S-OIL, 010950)은 영업이익 1조4186억원으로 58.3% 줄어들었다.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HD현대오일뱅크는 영업이익 6167억원을 거두며 77.9% 급감했고, GS칼텍스는 영업이익이 58% 떨어진 1조6838억원이었다.
지난해 국내 정유 4사가 실적 부진을 겪은 주된 이유는 국제유가 및 정제마진 하락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정유사들은 윤활유 부문에서 꾸준한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실적을 방어하고 있다.
작년 SK이노베이션은 윤활유 사업으로 9978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 대비 6.9% 감소한 수치지만, 전체 영업이익의 과반을 차지하며 정유 사업 영업이익인 8109억원보다도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
에쓰오일은 윤활유 부문에서 815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정유 부문 3991억원의 영업이익을 크게 앞섰다. 이로 인해 윤활유 부문이 전체 영업이익의 과반을 책임졌다.

SK엔무브의 전기차용 윤활유가 전기차 모형 안에서 구동되는 모습. = 조택영 기자
HD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4분기에는 정유 부문과 석유화학 부문이 각각 영업손실 729억원, 339억원을 기록했지만 윤활유 부문은 흑자 347억원을 달성했다. GS칼텍스 역시 정유 부문의 수익성 악화가 윤활유 사업 부문의 영업이익 증가로 보완됐다.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해서 커지는 윤활유 사업은 정유사들의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한 모양새다. 특히 변동이 심한 정유 사업보다 큰 안정성을 갖고 있고, 전기차 시장 성장에 발맞춰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정유사들은 휘발유·경유 등을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인 잔사유를 처리해 윤활기유를 생산한다. 윤활기유에 여러 첨가제를 넣으면 윤활유가 된다.
전기차용 윤활유는 기존 내연기관 윤활유와 달리 냉각과 이차전지 효율 향상을 위해 사용된다. 전기차의 전기모터와 기어의 열을 빠르게 식히고, 차량 내부에서 불필요하게 흐르는 전기를 차단하는 절연 역할을 해 모든 전기차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도 지속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BIS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28.8%씩 성장하며, 오는 2031년에는 174억1290만달러(약 23조2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유사들은 전기차용 윤활유 신제품을 선보이며 경쟁력 강화에 나선 모습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엔무브는 지난해 9월 윤활유 브랜드 지크(ZIC)의 전기차용 제품 라인 'ZIC e-FLO'를 출시했다.
에쓰오일과 GS칼텍스도 작년 각각 전기차용 윤활유 브랜드 '킥스 EV'와 '세븐 EV'를 선보였다. HD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12월 '현대엑스티어 EVF'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시장 선점에 나섰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기술 개발을 통해 까다로운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것이 목표다"라며 "앞으로도 전기차용 윤활유 제품군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최근 각광받고 있는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 수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정유업계에서 윤활유 부문이 '막강한 화력이다'라고 보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안정적인 시장과 시황이 구축돼 있어 지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또 데이터 서버 냉각 등 새로운 시장에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다양한 사업으로 확장될 여지가 높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