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은행 서비스 비대면 전환이 활발해 지면서 시각장애인의 불편은 더 커졌다. 당국이 마련한 시각장애인 지원 방안 중 일부는 오히려 현실의 불편을 담아내지 못해 외면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기업은행에서 선보인 ‘전자점자 서비스’가 시각장애인 서비스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5대 시중은행 영업점이 지난 2021년 4187곳에서 지난해 3989곳으로 감소했다. = 장민태 기자
8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최근 작성한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시각장애인 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는 25만195명이다. 이 중 실제 취업자는 10만1119명이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시각장애인들이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경제 활동 과정에서 필수인 '은행 업무' 부문에서 불편함이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면 창구인 은행 영업점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비대면 서비스는 시각장애인 기준에서 개선 사항이 산적해 있다는 게 이유다.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은행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를 살펴보면, 5대(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시중은행 영업점은 지난해말 기준 3989곳이다. 이들 영업점은 지난 2020년 4426곳에서 2021년 4187개로 감소해 오다 지난해 결국 앞자리수가 바뀐 셈이다.
은행 영업점 방문은 지방일수록 더 어려운 상태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4대(국민·신한·하나·우리) 은행 점포 1곳당 담당 인구수는 서울에서 평균 3만3154명이다. 반면 전라북도에서는 점포 1곳(평균)이 무려 18만2993명을 담당했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에 대한 접근성이 과거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편한 요소들도 존재한다”며 “실사용은 물론 상품 안내문·소개서 등에 시각장애인들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영업점 축소 등에 따른 불편 사항을 개선해달라고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에 요청하고 있지만, 재탕에 가까운 방안만이 제시된다"고 분노를 토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이 방문해 처리할 은행 영업점은 사라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내놓은 시각장애인 금융 접근성 개선 방안은 여전히 대면 업무에 중점을 두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6월 은행권과 논의해 마련한 ‘시각장애인 은행거래 시 응대 매뉴얼’이 대표적 사례다.
금융당국은 매뉴얼 공개 당시 "앞으로 시각장애인 혼자서 은행에 '방문'하더라도 보호자 동행을 요구받지 않고 은행거래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가 개선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매뉴얼이 대면 업무에 중점을 뒀다는 것을 공언한 셈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비대면 은행 서비스에 대한 개선 노력이 없던 건 아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폰뱅킹 이용에 필요한 점자 보안카드와 음성 OTP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이마저도 보완이 필요한데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무총장은 "점자 보안카드는 실제 은행 영업점에 받으러 가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음성 OTP는 숫자 인식 오류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몇 년째 당국에 요청했지만, 느닷없이 발급 편의를 제고하겠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국은 2년 전에도 시각장애인 금융 접근성 제고 방안으로 동일한 내용을 발표했었다"며 "금융권 합의·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실적용으로 방안을 재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각장애인들은 그간 은행 업무와 관련된 대안들이 비장애인 관점에서 기획돼 실효성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은행 업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은행에서 공개한 '전자점자 서비스'와 같은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업은행이 제공 중인 전자점자 서비스. = 장민태 기자
기업은행은 지난 9월 금융기관 최초로 '전자점자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 서비스는 화면 내용을 점자로 변환해 전자점자단말기에 전송해 준다. 기업은행은 이 서비스를 송금 등 단순 업무뿐 아니라 총 30개 메뉴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각장애인 김모씨는 "일부 사람들은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화면 낭독 프로그램(screen reader)이 만능인 것처럼 이야기한다"며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소리만을 듣고 스마트폰을 조작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면 점자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며 "기업은행을 이용하지 않았지만, 이번 '전자점자 서비스 때문에 은행을 갈아탔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총장은 "전자점자 서비스는 주변에 이미 이용하는 분들이 꽤 된다"며 "기업은행이 제시한 방향이 바람직하고, 이런 서비스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