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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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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들 동쪽 끝에는 옛이야기 지줄되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중략)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후략)>
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끔 눈을 감고 정지용의 시 향수를 읍조리며 뇌리를 떠나지 않는 고향의 정겨움을 생각하며 나도 모르는 미소를 흘린다.
내 고향은 경남 남해군 창선면 대산골. 동쪽은 통영시, 사천시, 남해군 설천면과 건너 마주하고 북쪽은 사천시와 창선의 삼천대교로 남쪽은 삼동면과 창선교로 연결되는 사면이 바다인 창선도 이다.
내가 태어난 대산골은 마을 뒷산은 대나무가 그득하고 앞으로는 바다를 품은 전형적인 어촌으로 죽방염과 연안 조업, 적은 토지에 작물을 재배하는 등 전형적인 반농반어(半農半漁)연안 도서이다.
특히 주변 청정해역에서는 굴, 피조개, 새조개, 개조개, 홍합, 바지락 등의 조개류와 해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면 2005년부터 시작된 바지락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관광객이 찾아 함께 즐기는 남해의 큰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남해군의 체험관광지로 가천 다랭이 마을과 창선면 지족리 해수욕장, 뗏목낚시도 창선도를 찾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또 500여년의 수령과 중후함을 자랑하는 왕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299호)를 비롯하여 가인공룡발자국, 당항리지석묘, 구암사지 등의 사적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아름다운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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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2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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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슴에 영원한 고향으로 남아 있어
내가 태어나던 60년도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생활고를 겪고 있었으며 우리 가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 3남 1녀에게는 창선도는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꿈과 추억을 담고 있는 영원한 고향으로 마음속 깊이 큰 자리를 잡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와 함께 구도섬에 가서 돌 사이에 나다니던 게가 아버지 손을 물어 아프시겠지만 아픈 표정도 없이 잡아 나에게 던져주던 기억과 장군섬에서 청각을 채취를 하던 일이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고향이 부모님 생전 시는 매년 명절에 방문하여 친척과 동네 어르신을 찾아 안부 인사와 창선을 지키는 소중한 친구 남준, 용준, 창훈 등 함께 뒹굴던 학창시절의 소중했던 추억에 젖어보기도 한다.
이제는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그 시절 꿈이 베어있는 어린 시절 매일 다니던 마을 안길과 이웃집, 뒷동산, 앞바다, 뱀의 목을 잘라 물길을 열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는 추섬, 이 모두가 나의 생각을 고향으로 이끄는 향수이기도 하다.
아내 김미애와 딸 유경, 유하. 나의 고향 창선도를 자주 방문치 못하지만 고향에는 나의 친척과 친구,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내가 기억하는 모든 분의 형상은 결코 내가 잊지 못하는 나의 가슴에 영원한 고향으로 남아 있다.
박주묵/ 광고대행사 베터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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