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은행에 이어 경남은행에서도 한 업무만 오랜기간 담당했던 직원이 대규모 횡령사고를 일으켰다. = 장민태 기자
[프라임경제] 은행권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우리은행 횡령 사고와 동일하게 장기근무자가 범죄를 저질러 주목된다. 그간 지속 제기돼 왔던 '금융사 순환근무 제도화' 추진이 힘을 받는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총 562억원을 횡령·유용한 혐의를 받는 A씨는 경남은행 서울지점에서 지난 2007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약 15년 5개월 동안 한 업무를 담당한 셈이다.
지난해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700억원대 우리은행 횡령사고'도 장기근무자가 일으켰다. 우리은행 본점 소속 B씨는 기업개선부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문서를 위조하고 차명계좌를 이용해 약 728억원을 빼돌렸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긴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돈을 빼돌리면서 횡령 규모와 수법이 대담해졌다는 데 있다.
현재까지 검사결과에 따르면 경남은행 직원 A씨는 처음 돈을 빼돌린 다음 4개월 뒤 일부 금액을 되돌려 놓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근래 저지른 326억원 횡령에서는 문서 위조까지 강행했다.
통상 인터넷전문은행을 제외한 은행권은 돈을 다루는 직종인 만큼, 직원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금융사고 방지책으로 순환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2년 이상 한 부서에서 근무했던 직원은 장기 근무자로 지정돼 다른 지점이나 부서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문제는 순환근무가 은행들 내부 규정에만 포함돼 있을 뿐, 강제성을 띤 은행법 시행령이나 감독규정 등에서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경남은행과 우리은행 횡령사고자들처럼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에 장기근속을 허용하고 있다.
제도 구멍이 은행권 대규모 횡령 사고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사고가 발생한 이후 '내부통제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순환근무와 관련된 부분을 개선하려고 했다.
TF는 은행연합회와 지난해 11월말 인사 관련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제정했다. 해당 규준 제4조는 장기근무 제한으로, 은행은 직원이 장기근무를 하지 않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장기근무자는 동일 영업점에서 3년 또는 본부부서에서 5년을 초과해 근무한 자로 용어를 정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개별 은행에서 따라야 할 강제성은 없다. 금감원은 장기근무자를 명령휴가제 대상에 포함하고 내부고발자에 대한 포상도 강화했지만, 보란 듯 경남은행에서 대규모 횡령사고가 또 발생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비슷한 원인으로 500억원 이상의 횡령이 발생했다 보니, 금융당국에서도 순환근무를 제도화한다든지 좀 더 강하게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장기근무자나 업무를 잘 아는 사람들은 쌓여있는 경험으로 은행 내부통제를 충분히 피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은행은 몸집을 줄이면서 한 직원이 너무 많은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며 "그동안 원칙화했던 순환근무가 일부 은행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금융당국은 큰 그림에서 매뉴얼만 제시하다 보니, 세부 방안은 은행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된다"며 "은행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지기 전에 여러 가지 규제 강화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