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정유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로 석유화학 사업을 낙점하고 수조원대 투자를 단행하며 이제 겨우 첫 걸음 시작했는데,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마저도 석유화학 사업에서 손을 털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수익성의 가늠자인 에틸렌 스프레드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중국의 석유제품 수요 부진 등이 겹쳐서다. 이에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기후변화 시대와 수소 사회 전환에 따라 성장성이 낮은 석유 사업 대신 △배터리 △친환경 소재 △신약 등으로 주력 사업을 교체 중이다.
반면, 정유업계가 석유화학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불안정한 정유 사업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2분기 정유사들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은 배럴당 평균 4달러(5042원, 18일 기준)를 기록했다. 이는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절반 이상, 전년 동기 대비로는 80% 이상 폭락했다. 통상적으로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이 4달러 선인 점을 감안하면 이윤이 거의 없는 셈이다.
국제유가가 떨어져 정제마진이 악화된 만큼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S-OIL·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의 올해 2분기 실적은 1분기에 이어 부침이 불가피하다.
현재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096770)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3%, 에쓰오일(010950)은 80% 떨어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도 유사한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9일 열린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에서 시삽하는 윤석열 대통령. ⓒ 에쓰오일
문제는 정유사들이 눈을 돌려 석유화학 사업에 수조원대 투자를 단행, 업황 부진으로 투자 대비 손실률이 높아질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제일 크게 투자를 단행한 곳은 에쓰오일이다. 에쓰오일은 9조원 이상을 투입해 대규모 석유화학 프로젝트인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생산시설은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조성하고 있다. 오는 2026년 6월 완공이 목표다.
아울러 GS칼텍스도 지난해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여수에 올레핀 생산시설(MFC)을 구축하고 올해부터 가동을 시작했으며, HD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011170)과 손잡고 3조원 이상을 투자한 대산 HPC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정유사마다 석유화학을 신사업으로 전개하고 있지만 업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올해 2분기 손익분기점을 밑돌았고, 향후 실적 전망마저 어두운 상태다. 그럼에도 정유업계는 부진을 극복하고 석유화학 사업을 지속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글로벌 소비가 살아나야 석유화학 업황이 좋아지는 건데,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인한 업황 반등을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효과가 안 나타나는 것 같다"며 "아직까진 부진이 이어지고 있으나, 앞으로 저점을 지나서 업황이 회복될 거라고 기대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업황이 차츰 회복될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고, 샤힌 프로젝트의 설비 완공 시점이 2026년이라 지금보다 훨씬 개선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겪는 석화 불황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석화업계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구조조정 등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상황이다"라며 "다만 산업 특성상 성장·성숙·쇠퇴·침체 등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인내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유사들이 투자 중이거나 이미 가동 중인 석화 설비 같은 경우, 가격 경쟁력 면에서 전통 석화 산업이 가진 설비에 비해 좋은 편이라 사업을 멈추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며 "또 정유사들이 석화 사업에만 투자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리스크를 분산시키며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점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