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국 침대 업계의 개척자 역할을 한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이 지난 26일 밤 11시경 별세했다.
안유수 회장은 명실공히 국내 침대 산업을 이끌었던 선구자적 인물이다. 그는 침대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63년 에이스침대 공업사를 설립했다. 당시 나이 29세.
설립 초기는 국내에 변변한 침대 스프링 제조 기술은 물론 기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제대로 된 스프링 침대를 만들기 위해 손으로 강선을 감아 제품을 개발해낸 그의 열정은 에이스침대를 국내 최고의 침대 회사로 이끌었다.
안유수 회장은 평소 '최초'와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왔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시련과 위기를 극복해내며 기업 경영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몸소 체득했기 때문이다.
안 회장은 대한민국 국민의 라이프 스타일과 체형에 맞는 매트리스 개발을 위해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적극적인 설비 투자로 '잘 잘 수 있는 침대'의 과학적 바탕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의 매트리스 스프링 제조설비, 침대 업계 최초의 KS마크 획득, 300개의 특허획득 등 에이스침대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최초, 최고의 기록은 이런 안유수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안유수 회장은 1930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1년 1·4후퇴 당시 부모와 떨어져 혈혈단신으로 월남하는 아픔을 겪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침대를 처음 접한 것도 이 시기다.
부산에 위치한 미군 부대에서 잡역부를 하며 생활하던 중 미군 야전에서 처음으로 서양 입식 생활의 문물인 침대를 접했다.
이후 안 회장은 서울로 올라와 방송국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하며 가구점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제법 큰 규모의 가구점임에도 침대가 없는 것을 보고는 ‘내가 먼저 없던 시장을 개척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두려움 없이 침대 사업을 추진했다.
안 회장은 1963년 서울 금호동에 터를 잡고 ‘에이스침대 공업사’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에서 스프링 침대를 제조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스프링부터 프레임까지 모두 개발하여 제조해야 했다.
처음 스프링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스프링 모양으로 깎고, 손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강선을 감아 보기를 수없이 반복한 후에야 1년여 만에 스프링을 찍어낼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는 한국 1호 매트리스 스프링 제조기기이다.
침대 프레임 또한 당시 상용되던 목재 기술로는 안 회장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 시기에는 모든 목재와 무늬목 접착은 아교로, 칠은 나무 송진을 변형한 와니스로 여러 번 바르는 것이 전부였다.
안 회장은 그 당시 페인트 기술부 직원과 함께 도막이 강하고 경제적인 도료 ‘아미노알키드’를 개발해냈다. 이 도료는 훗날 우레탄 도료가 개발될 때까지 침대 프레임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처럼 당시 안 회장이 시도하고 제작한 침대 자재와 부품 하나 하나가 국내 침대 역사의 기록이 되었다.
안유수 회장은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최고의 침대를 개발해 왔다. 서양인들과는 다른 체형과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 우리 국민만을 위한 매트리스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힘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