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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 도매가 공개" 논란 키운 정부, 3개월째 방관 중

'석대법 개정안' 규개위 표류…"소비자 피해 불가피, 개정 철회해야"

조택영 기자 | cty@newsprime.co.kr | 2023.06.20 09:56:37
[프라임경제] 정부가 이른바 '정유사 도매가 공개' 추진을 강행했다가 논란만 키운 뒤 3개월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이럴 거면 왜 시작했나", "시장에 혼선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유업계에서도 과도한 규제라며 개정 철회를 요구 중이다.

지난해 9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민생 안정을 위해 유류세 인하를 시행했다. 하지만 인하분이 정유사·주유소 등 업계 마진으로 일부 흡수됐다는 주장을 이유로, 도매가격 공개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대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재 정유사들은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서 매주 전국 평균 가격을 공개하고 있다. 이른바 소매가격이다. 이에 반해 개정안은 정유사가 일반 대리점과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도매가격을 판매처와 지역별로 확대 공개하는 게 골자다. 판매량 등을 산업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내 석유 가격 보고·공개 범위 확대를 통해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정유사들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국내 석유 가격 안정화를 도모하겠다는 게 개정안을 추진한 산업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도매가는 엄연히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은 물론, 산업부의 개정안 취지와는 달리 경쟁사의 가격정책 분석이 가능해져 오히려 시장 경쟁 제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정부의 계획이 실행되면 초기에는 출혈경쟁으로 가격이 하락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가격 상향 동조화 등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헌법상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헌법 제126조 사영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불간섭 원칙 손상 및 자본주의 시장경제 근간 및 헌법적 가치 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주유소. ⓒ 연합뉴스

도매가 공개는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추진된 바 있다. 다만 영업비밀 침해라는 정유업계 주장에 따라 2011년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 예비 심사에서 철회됐다. 

10여년 만에 재추진된 석대법 개정안은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 규개위 테이블에 오른 상태다. 하지만 규개위는 올해 2월24일 첫 심의를 연 이후 현재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이다. 

매월 둘째·넷째 주에 개최되는 심의이다 보니 3월10일에 재심의 일정을 잡았지만 취소됐고, 3월24일 일정도 무산됐다. 이후에는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규개위는 산업부로부터 추가 자료를 받고 검토한 뒤 심의 재개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첫 심의에서 찬성하는 쪽, 반대하는 쪽이 극명하게 양분됐다"며 "추가 자료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심의를 미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심의위원은 "첫 심의 이후로 개정안이 의제나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고 있고, 국무조정실과 산업부가 실무적으로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산업부가 추가적인 자료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첨언했다.

문제는 정작 산업부가 석대법 개정안을 민심잡기 카드로 쓰며 논란을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핸들만 잡은 채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이런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현재 유가가 안정화됐고, 정유사들의 실적도 부진해 석대법 개정안을 처리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상황 속 정유업계는 숨죽여 상황을 지켜보면서 개정을 철회하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시장경제 체제 유지 국가 중에서 이렇게 특정 업계와 기업에 도매가를 공개하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라며 "현재도 오피넷을 통해 과도하게 공개하는 수준인데, 더 확대하면 시장에 혼선을 가중시켜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높은 주유소 폐업률이 개정안을 통한 과도한 경쟁으로 높아지게 될 경우 시장 플레이어 자체가 줄어드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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