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지난해 8월, 115년 만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대한민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아비규환에 빠졌다. 시내 곳곳은 물론 강남 등 번화가 일대도 마비됐다. △사망 9명 △실종 7명 등 인명피해도 심각했다. 특히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사망사고'는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지난해 폭우와 같은 이상 기후는 올해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오는 7월까지 태평양 수온이 상승하는 '슈퍼엘니뇨'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해 이상의 폭우 등으로 주거 취약계층 피해가 우려되는 이유다.
정부 및 관할 지자체는 이런 천재지변에 따른 인명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나름 노력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근본 해결책이 아닌, 단발성 제안에 그치면서 주거 취약계층은 또 다시 수마에 대한 극심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사고에도 불구 변함없는 반지하 실태
지난 5일 방문한 신대방역(2호선) 일대 골목 양측에는 노후된 다세대·연립 반지하 주택들이 즐비하다. 문제는 지난해 수마사고 이후 달라진 점이 별반 없다는 점이다.
"이곳은 지난해 집중 호우로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한 동네다. 당시 고통을 잊을 수 없다. 밤새 내리친 폭우 탓에 집 내부로 물이 스며들었으며, 화장실 변기는 범람해 불과 30분 만에 오물이 섞인 아수라장이 됐다. 이후 1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상흔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올해도 많은 비가 예고되고 있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할 뿐이다." - 신대방역 인근 반지하 주택 거주민 A씨
문제는 '일가족 사망사고'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고 이후 가격이 하락하면서 또 다시 취약계층을 유혹하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실제 신대방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참사 이후 잠시 발길이 끊겼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재차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욱 저렴해진 가격 탓인지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서민들에게 있어 유일한 선택지인 셈.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누구나 지상층 또는 깔끔한 주택에서 거주하고 싶지만, 비싼 집값을 생각하면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은 반지하 주택을 선택해야 하는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인지한 정부 등 관련 당국은 반지하 지원책들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사고 직후 '반지하 주택 제로'를 선언했다. 단기 해결책으로 반지하 전수조사 및 수해방지시설 설치를, 장기적으로 월세 바우처 지급과 반지하 주택 매입(올해 3450가구)을 통한 이주 대책을 제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의 경우 지상층 전세 계약시 저리(연 2%)로 보증금(최대 1억3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원재 국토교통부 제1차관과 이한준 LH 사장이 지난달 31일 신림동 반지하 매입임대 현장을 방문해 침수방지시설 설치 상황 등을 점검했다. ⓒ 연합뉴스
서울시 관계자는 "약 21만가구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를 마무리, 이달 말까지 침수예방시설 설치를 마칠 계획"이라며 "사전에 침수 인지 및 대피를 안내하는 침수 예측 시스템 시행 등 주거안전망시스템을 이용해 관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당국 대책 향한 의구심 "실효 있는 대책 시급"
하지만 이런 당국의 반지하 대책에 대한 의구심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침수방지시설 설치 등은 단발성 대응이라는 비판이다. 또 반지하 주택 매입 등 이주 대책 역시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다가올 수해를 대비하곤 있지만, 사실상 개폐형방범창·차수판(물막이판)·역류방지밸브 등 단발성 대응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미미한 이주 대책 성과가 가장 큰 문제로, 과연 올해 폭우를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신대방역 일대 반지하 주택 거주민 B씨
지난해 11월 시행된 '바우처 제도'는 서울시 지상층 이주 가구에 대해 최대 2년간 매달 2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정작 이를 이용하는 주민은 서울 관내 침수 우려 가구(2만8000가구) 가운데 불과 970여가구(3.4%)에 그친다.
반지하 주택 매입(연립·다세대 주택 등) 성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목표치(3450가구) 중 98가구(지난달 31일 기준)만 매입됐다. 세대 절반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는 동시에 SH(서울주택도시공사) 감정평가 기준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만큼 소유주로선 매력이 떨어져 좀처럼 성과를 이뤄내기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진단이다.
SH 관계자는 "반지하 매입 성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지난해 공고된 매입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다"라며 "매입 신청 조건(세대수 절반 이상 동의) 충족이 어렵긴 하지만, 국토교통부 기준을 따른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역대급 폭우 소식에 반지하 주택 거주민들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 프라임경제
이처럼 반지하 대책 성과가 부진한 가운데, 들리는 올해 폭우 소식은 서민들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반지하 주택 거주민 C씨는 "20만원 지원에도 불구, 여전히 비싼 지상층 가격은 우리와 같은 저소득층은 부담스럽다"라며 "LH 보증금도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사고 이후에도 어쩔 수 없이 이곳에 거주한다는 게 개탄스럽다"라며 "조만간 장마가 시작되는 만큼 정부 등 당국은 탁상행정이 아닌,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지지부진한 지원 대책은 소유주나 반지하 거주민 등 이들이 처한 현실을 깊게 내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를 모두 아우르는 이주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시 역대급 폭우가 예상되면서 반지하 주민들의 우려와 걱정은 깊어가고 있다. 지난해 악몽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단기 대응책만이 아닌 근본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
과연 관련 당국이 제시한 대책들이 제대로 성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나아가 향후 주거 개선까지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