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 2009년 미국 월가에 큰 사건이 터졌다. 175억달러, 한화 약 23조원에 달하는 피해액이 터지면서 월가가 발칵 뒤집어졌다. '폰지사기 제왕'으로 불리는 미국의 버나드 메이도프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이사장까지 지낸 월가의 거물인 유대인 메이도프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후속 투자자들의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주는 폰지 사기를 벌였다.

버나드 메이도프가 지난 2009년 3월10일 폰지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은 뒤 뉴욕 연방지방법원을 나서는 모습. ⓒ 연합뉴스
법정에 선 그에게 내려진 형량은 150년형이다. 결국 그는 2021년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메이도프에게 150년형을 선고한 데니 친 판사는 2020년 한 인터뷰에서 "(메이도프에게) 150년 형을 선고한 것은 감옥에서 숨을 거두라는 의도였다"며 "판결 이후 생각을 바꿀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이에 앞서 2007년 국내에도 주가 조작범들이 검거됐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루보의 1500억원대 사건이다. 이때 국내 법원의 판결을 보자. 법원은 루보 주가조작 책임자 김모 씨에게는 징역 3년6개월에 벌금 10억원, 주가조작 기획자 황모 씨에게는 징역 2년6개월, 벌금 1억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했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시세조종행위 등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고 특히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시세조종행위로 얻은 경제적 이익을 완전히 박탈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150년 vs 3년6개월. 주가 조작범에 대한 미국과 국내 법원의 인식이다.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같은 주가조작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솜방망이' 처벌과 낮은 추징금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무관용 원칙 vs 1년 이상 징역
금융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은 주가조작범에게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 경제·금융 사범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맹주인 미국의 주주 자본주의를 훼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주가를 조작해도 짧은 실형에 그친다. 경제·금융 사범 옥살이를 해도 감옥에서 넉넉한 영치금으로 호화로운 감옥 생활을 보낸다. 이른바 '범털' 대우를 받는다는 후문이다. 범털은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사용하는 은어로 돈이 많거나 지적 수준이 높은 수감자를 뜻한다.

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국내 현행법상 벌칙 조항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먼저 시장교란행위를 저질러도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집행유예의 가능성도 폭넓게 열려 있다. 벌금도 불공정거래행위로 인한 이익의 3배~4배에 불과하다.
여기에 현행 자본시장법은 '주식 시세조종 등 불공정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몰수한다'고 규정했지만, 이를 어떻게 산정할지 명시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주가조작으로 얻은 이익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가조작범은 출소 후 부당이득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는 셈이다.
◆불공정거래 근절 의지 다지지만…
2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양석조 서울남부지검장 등 금융당국 및 검찰 수장들이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SG증권발 주가조작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와 함께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의지를 다졌다.

(왼쪽부터) 양석조 서울남부지검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3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콘퍼런스홀에서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합동토론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 한국거래소
이날 김 위원장은 "정부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를 뿌리 뽑고 공정하고 신뢰받는 자본시장 토대를 굳건히 하도록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말했다.
특히 주가조작범에 대한 처벌 강화 계획도 밝혔다. 그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자본시장법 개정 법안이 통과되면 주가조작 범죄 처벌과 부당이득 환수가 대폭 강화될 것"이라며 "주가조작 혐의 계좌에 대한 동결조치를 도입하는 안도 연내 입법 발의를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주가조작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공정거래행위로 인해 기소된 사건 중 집행유예자는 △2020년 40.6% △2021년 61.5%다. 주가조작을 해도 2명 중 1명은 실형을 면한다는 얘기다. 재범률은 △2019년 16.8% △2020년 29.7% △2021년 28% △2022년 18.6%다. 주가조작범으로 적발돼도 5명 중 1명은 다시 주가조작을 한다는 거다.
이번 SG증권 사태로 금융당국과 검찰이 주가조작 뿌리 근절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국회도 법 강화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가조작 등 증권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주가조작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결국 금융범죄를 저지를 경우 패가망신할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범죄 발생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