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시민들의 생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행복추구권' 못지않게 '환경권'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집회와 시위가 쾌적한 생활환경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환경권을 공공연하게 침해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헌법상 권리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앞세워 동등한 가치의 헌법상 권리인 환경권을 외면한 채 벌어지는 막무가내식 집회와 시위는 정당한 권리 행사의 범위를 벗어난 만큼 조정이 필요하다.
국내 주요 기업 사옥 주변 등에서 특정 목적 관철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거나 피해를 끼치는 수단으로 집회·시위를 악용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명예를 훼손하는 모욕적 표현 및 허위사실이 적시된 현수막 등을 별다른 제재 없이 내걸고 있고,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고음의 운동가요를 반복재생하는 방식 등을 동원해 특정인과 기업, 인근 지역 시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우리 헌법은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위해 필요할 경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집회 및 시위의 자유에 가려진 환경권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빨간색 글씨체로 자극적 문구가 적혀 있는 모습. ⓒ 독자제공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현행 헌법 개정(1987년) 이후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의 절대적 금지(신고제), 국가의 절차적 통제 최소화, 사전신고 등 시위 당사자의 의무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왔다.
헌법재판소도 집회와 시위의 장소(국회·법원 인근 금지 등), 시간(일몰 후~일출 전 금지) 등의 제한 움직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 역시 '시위 소음으로 인한 업무 방해'와 '사전신고 절차를 위반한 집회 개최' 등과 관련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취지 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오고 있다.
문제는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과도하게 해석되면서 헌법이 동등하게 보장하고 있는 가치인 환경권 등이 불합리하게 침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그룹 서초 사옥이 위치한 강남역 주변은 주말까지 집회시위가 지속돼 기업은 물론 주변 상인들과 인근을 지나는 시민들까지 극심한 소음피해를 입고 있다. 불특정 다수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환경권을 침해 받고 있.
또 개인사업자로 자동차 판매업을 했던 A 씨는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인근에서 근거 없는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0년 이상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A 씨는 극심한 소음을 발생시키며 기업과 인근 시민의 환경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인도 위에 불법천막을 설치해 보행하는 시민들의 이동환경도 저해하고 있다. 지자체 허가 없이 인도나 차도에 천막을 설치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또 도로 사거리 주변에 세운 10여개의 깃발형 현수막은 천막과 함께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 보행자들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 위험성마저 높이고 있다.

깃발형 현수막은 천막과 함께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 보행자들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 위험성마저 높이고 있다. ⓒ 독자제공
무엇보다 A 씨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 민·형사상 판결 등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와 경찰 등도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적시한 헌법 제21조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도구로 전락하면서 다수 시위현장이 법원 판결과 행정당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통제불능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공해 없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로 국민의 기본권인 환경권을 명시하고 있다.
환경권 이념은 일부 선진국에서 산발적으로 논의돼 오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UN 인간환경회의에서 "인간 환경의 보호와 개선은 인간의 복지와 경제발전에 미치는 주요 문제이므로 이는 전 세계 인간의 절박한 염원이고 모든 정부의 책임이다"라는 'UN 인간환경선언' 결의문이 채택된 것을 계기로 세계 각국이 자국 법체계에 흡수했다.
환경권에서 언급되는 환경은 토지·물·공기 등 자연적 환경뿐 아니라 도로·공원과 같은 인공적 생활환경에서, 넓게는 문화유산·의료·교육과 같은 문화·사회적 환경까지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모두 포함한다.
우리 생활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권리인 환경권이 침해될 경우 즉시 생활의 불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한 행복추구권과 함께 가치와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인근에서 근거 없는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0년 이상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독자제공
헌법상 권리인 환경권이 침해됐을 때 현수막 설치, 진정서 제출,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적 구제수단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현직 대통령 자택 인근 서울 서초동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맞은편에서 열리는 집회 소음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며 경찰에 확성기 사용 등을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한 바 있다.
헌법상 다른 권리들에 비해 집회·시위의 자유가 과도하게 보호받는 과정에서 나타난 기본권 간 충돌을 국회가 나서서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본권 간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법률 개정 권한이 국회에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전제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다른 기본권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 30여건이 다수 의원들을 통해 발의돼 있다. 자신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표현하는 정도를 넘어 타인에게 심각한 괴롭힘이나 피해를 주기 위한 수단으로 집회·시위를 악용하는 것을 법률로써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 결과다.
하지만 지난해 여야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율해 건물로부터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대상에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한 것 외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 21대 국회(2020년 5월30일~2024년 5월29일) 회기가 1년 남짓 남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집시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미국의 오랜 격언 중 '당신이 주먹을 휘두를 권리는 타인의 코앞에서 끝난다(Your right to swing your fist ends where the other man’s nose begins)'는 말이 있다"며 "지금은 집시법 개정을 통해 집회·시위의 자유에 가려진 다른 헌법상 가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