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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 혐오 인터넷 생중계" 달라진 시위 형태, 집시법 개정 절실

타인 기본권 위협 시위 확산…성숙한 시위 문화 정착 위해 시대상 반영 논의 불가피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3.05.10 11:08:10
[프라임경제]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회·시위가 관행화되면서 혐오 표현과 사실을 왜곡한 주장 등이 도를 넘고 있다. 명예훼손성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별다른 제재 없이 곳곳에 내걸려 있고, 인신공격성 비방과 욕설, 허위사실 등이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여과 없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현수막 내용이나 구호 등이 시위 현장에만 머무르던 이전과 달리 시위 과정에서 사용되는 혐오 표현이나 왜곡된 사실이 유튜브 등 다양한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광범위하게 유포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더해지고 있다.

때문에 집회·시위 현장의 비방이나 욕설 등 혐오 표현과 왜곡된 사실에 근거한 주장 등에 대해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다수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 영역을 넘어 공공의 질서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집회 또는 시위가 일상화되고 있다"며 "성숙한 집회 및 시위 문화 정착을 위해 달라진 시대 상황이 반영된 집시법 개정 등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지적했다.

명예훼손성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별다른 제재 없이 곳곳에 내걸려 있다. ⓒ 독자제공


일례로 광화문 A 기업 사옥 앞에는 '범죄경영진 구속처벌' 등의 명예훼손성 문구가 적힌 수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으며, 강남역 B 기업 주변 현수막에는 정돈되지 않은 빨간색 글씨체로 '갑질하고 직무 유기하는 XX' 등의 자극적 문구가 적혀 있다. 양재동 C 기업 인근에는 기업은 물론 관할 구청까지 비방하는 '대기업 X개 노릇 XX구청' 등의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이처럼 서울 도심에 위치한 국내 대기업 사옥 주변에서는 기업과 경영진 등을 비방하는 혐오스러운 표현의 △현수막 △띠줄 △피켓 △배너 △천막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해외 거래처 외국인 관계자들의 방문이 잦은 글로벌 기업 사옥이라는 점을 노려 상대방을 비방하는 내용을 영문으로 작성한 현수막과 특정인의 이름 및 사진을 노출시킨 설치물 등도 목격된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고성능 스피커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비방·욕설 등 소음이 거리를 메우고, 혐오 표현 및 허위사실 등이 담긴 시위 모습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거나 동영상 형태로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된다. 

대기업을 겨냥한 시위에 유독 사실관계를 왜곡한 주장이나 모욕적이고 혐오스러운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다. 자극적인 시위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여론과 이미지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대기업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고,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한 목적인 셈이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정당한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닌,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상대를 적대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사옥 주변 시위는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진 사안임에도 허위 주장을 근거로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현행법상에서 기업은 마땅한 대응책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빨간색 글씨체로 자극적 문구가 적혀 있는 모습. ⓒ 독자제공


기업들은 △허위사실 △모욕 △명예훼손 등에 대해 법적대응에 나서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소요시간이 길고, 승소하더라도 시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서다. 시위자들은 패소하더라도 법원이 금지한 표현만 수정한 현수막을 새로 제작해 시위를 재개한다. 또 시위현장의 비방과 욕설 등은 현실적으로 제재가 어렵고 법적 집회 소음 기준은 유명무실하다.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10년 이상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A 씨는 혐오 표현 사용 등 무분별한 시위 방법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았지만 여전히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앞서 법원은 기아가 진행한 소송에서 '세계적 XX 기업, 고소고발 남발한 OO기업, Global company Kia Motors is a corrupt and inhumane company' 등의 문구와 장송곡 등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A 씨의 시위 행태는 변하지 않고 있다. 문구만 조금 수정된 현수막이 내걸려 있고, 명예훼손과 인격모독성 비방·욕설도 여전하다. 또 장송곡을 대신한 운동가요가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탓에 기업은 물론 인근 시민들에게 소음 고통을 안기고 있다.

이처럼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한 기업 망신주기용 민폐시위 탓에 해당 기업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기본권과 공공질서마저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집회와 시위는 과거 민주화·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주로 대규모 정치집회 형태로 발현돼 왔다. 이런 과정에서 대표적인 국민의 저항권 행사 방법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목적의 정당성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민주화가 성숙되고 다양한 이익집단이 출현하는 등의 시대적 변화는 집회시위의 목적과 성격을 공공의 가치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모시켰다. 인터넷·휴대폰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1인 시위 △릴레이 시위 △촛불 시위 △플래시 몹 △온라인 집회 △인터넷 생중계 등 집회 시위 방식 역시 다양해졌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의 이익을 위해 △모욕 △비방 △적대감 표출 등 혐오 문화를 조장하는 집회 시위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법적 공백, 느슨한 행정 규제 등 법률적·사회적 통제 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공공질서를 위협하고,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민폐 시위가 양산되고 있다.

집회 및 시위의 목적과 성격, 방식 등이 달라진 만큼 그에 걸맞은 집시법 개정 등 적절한 규제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에서도 헌법에서 보호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집회 시위 방식을 제한하고 국민의 인격권 및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하는 취지에서 집회 시위 현장의 혐오 표현 등을 규제하는 다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돼 있다.

개정안에는 △명예훼손, 모욕, 반복된 악의적 표현으로 인격권 침해 △사생활 평온을 해치는 행위 △소음·진동·모욕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해치는 경우 △성별·종교·장애·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혐오를 조장하는 폭력적 행위를 선동하는 행위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음향·화상·영상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개인적인 사유 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다양한 성격의 집회 시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며 "과거 정치적 집회와 시위 등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집시법을 이제는 현실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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