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14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금융감독원
[프라임경제] 금융당국이 은행업권 진출 문턱을 낮추겠다고 밝히면서 증권업계의 '법인지급결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까지 나서 "10년 묵은 숙원사업"이라며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다만 삼성증권(016360) 등 증권사를 소유한 대기업이 있기에 '금산분리' 논란은 남겨진 숙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 및 제도 개선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은행의 대표 업무인 지급 결제, 예금·대출 분야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증권사와 보험사 등의 진입 허용 방안을 논의 중이다.
앞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예금·대출 등에 있어서 실질적인 경쟁이 촉진될 수 있도록 은행권뿐만 아니라 보험, 증권, 저축은행 등 다른 금융권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법인 고객 서비스 확대로 IB 경쟁력 강화
당국은 은행 대표 업무인 △지급결제 △대출 △외환 등의 부문을 대형 증권사와 보험사, 저축은행에도 허용한다면 은행의 독점을 방지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러한 소식에 증권업계는 여러 차례 좌절됐던 법인지급결제 허용에 대해 다시 희망을 품는 분위기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사 계좌로 개인은 자금 송금과 이체를 할 수 있지만, 법인은 불가능하다. 이번 논의로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된다면 법인은 증권사 계좌를 현재의 은행 계좌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회사 통장을 증권사 계좌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기업은 제품 판매대금, 공과금 납부, 협력업체 결제 등을 증권사 계좌로 거래할 수 있다. 근로자 월급을 증권사 계좌를 통해 지급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증권사로서는 지급결제 범위가 기업으로 확대되면 기업들의 주거래계좌가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전환될 수 있다. 은행들이 독점 중인 월급통장도 증권사 CMA로 확산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이는 법인 고객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어 기업금융(IB)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
◆은행권 "유동성 리스크 발생" 반발
증권사의 법인결제지급 허용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융당국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겠다며 자본시장법에 증권사의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했다. 이에 33곳의 증권사는 금융결제원에 지급결제망 이용 참가금으로 3000억원 이상을 내고 있다. 이들이 내는 참가금은 금융결제원 전체 운영비의 10%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은행권의 반발로 인해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허용은 16년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증권사에 이를 허용할 경우 변동성이 큰 고객예탁금 위주로 자금을 조달하는 증권사가 유동성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또한 증권사 결제망의 안정성이 은행에 비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서유석 제6대 금융투자협회장. ⓒ 금융투자협회
증권업계는 은행권의 주장에 대해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결국 밥그릇 싸움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일에는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까지 팔을 걷어붙이며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서 회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14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법인지급결제는 10여년간 증권업계 숙원사업"이라며 "그동안 분담금도 4000억원 가까이 내고 있는 상황인데, (지급결제를) 개인만 허용하고 법인만 허용이 안 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어 "(법인지급결제를) 은행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농협, 신협, 새마을금고 다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본금, 네트워크도 다 갖추고 있는 대형증권사가 못 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증권 금산분리 원칙 훼손 우려
서 회장을 비롯해 증권업계가 법인지급결제 허용에 뜻을 모으고 있지만, 숙제는 남아있다. 삼성증권, 현대차증권(001500) 등 증권사를 소유한 대기업의 경우 금산분리 원칙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 및 지배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은행권은 역시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계열 증권사로 계좌를 집중시킬 경우 대규모 자금이 유입돼 금산분리 정책의 실효성이 저하된다고 반대했다.
2016년 금융위가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에서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를 배제한 바 있다. 당시에도 은행권의 반발과 삼성증권 등 특정 증권사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 등이 작용돼 물 건너갔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14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증권사 CEO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 금융감독원
결국 그때나 현재나 지적되는 것은 증권사를 소유한 대기업의 경우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된다면 금산분리에 저촉된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다.
한편,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14개 증권사 CEO와 간담회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됐을 때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방안이 있는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자고 (증권사 CEO들에게) 말씀을 드렸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