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부가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창업자와 같이 외국인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재추진한다. 한국계 외국인이 지배하는 기업이 생겨나고 있지만 외국 국적을 보유해 규제를 받지 않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외국인이나 이중국적자인 동일인 배우자 혹은 2·3세 사례가 증가해 향후 대기업집단 제도와 관련해 불거질 형평성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23년 공정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26일 보고했다.
우선 공정위는 정책 환경 변화에 따른 대기업집단 정책을 전반적으로 합리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그중 하나가 외국인을 포함한 동일인 판단 기준과 변경 절차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다. 공정위의 잠정 조사에 따르면, 배우자나 2·3세가 이중국적자 혹은 외국인인 대기업 수가 10여개로 파악되고 있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10여개 기업 동일인의 배우자, 2·3세가 외국인이거나 이중국적자"라며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동일인이란 공정거래법상 자연인 혹은 법인으로 간주하는 주주 1명을 말한다. 1987년 재벌과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매년 5월 공정위에서 동일인을 발표하면 직급과 소유 지분이 어떻든 간에 실질적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일종의 '총수' 개념으로 관련 규제 역시 동일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외국인 동일인 지정…김범석 쿠팡 의장에 쏠린 눈
정부가 재추진하는 '외국인 동일인 지정' 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쿠팡과 롯데이다.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미국 국적 보유자다. '롯데 3세' 신유열 상무도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다.
공정위는 "쿠팡 때문에 추진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해당 사안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김범석 의장에게 자연히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동일인의 정의를 따로 명시해둔 조항이 없다. 이에 2021년에는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의장이 사실상 지배력을 확보한 기업임을 인정하면서도 미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로 동일인 규제를 회피하게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동일인 지정의 핵심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막는 것이다.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면 그의 배우자와 친족들과의 거래가 모두 공시대상으로 묶인다.
아울러 외국 국적을 보유한 총수 2·3세가 향후 경영에 나설 가능성을 고려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상무가 대표적이다. 그는 현재 일본 국적자로 그룹 주요 행사인 VCM(옛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는 등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미국과 통상 마찰 우려…산업부와 협의 관건
지난해 공정위는 외국 국적을 보유한 한국계 인사도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준비해왔으나,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로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외교부에서 이견을 보이며 또 무산된 바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미국인이나 미국법인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게 대우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점이 걸림돌이 되면서다.
산업부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규범에 상충하거나 위배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지정에 대해 기업집단이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제공하는 등 항변 절차를 마련할 방침이다.
윤 부위원장은 "입법예고로 시행했다가 관계부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일단 중지하고 산업부랑 계속 협의해 왔다"며 "산업부가 동의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산업부는 공정위가 추진하는 내용이 국제규범 등에 위배될 우려가 없도록 추진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