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차량 출고 대기기간이 길게는 2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완화로 완성차 생산이 정상화하고 되고 있지만, 이보다 신차 수요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현대자동차(005380)의 글로벌 백오더(주문 대기량)는 100만대, 기아(000270)는 120만대 수준이다. 현재 출고 대기기간이 긴 차종들은 제네시스 전 모델과 현대차·기아의 SUV 및 하이브리드·전기차 등의 전동화 모델에 쏠려있다.
제네시스는 GV80 2.5T 모델의 출고 대기기간은 무려 30개월에 달했고, 나머지 제네시스 모델들은 최소 1년 이상을 기다려야 차를 인도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대차에서는 싼타페 하이브리드가 24개월, 전기차 모델인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도 계약 후 차를 받을 때까지 각각 12개월과 18개월 정도 소요됐다. 기아도 마찬가지다. 스포티지와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18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하며, K5와 K8 하이브리드 모델의 대기기간이 각각 12개월·10개월이다. 가솔린 모델보다 대략 5~7개월 더 길다.
출고 대기기간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그동안 반도체 공급난으로 밀린 수요가 상당한 것도 있지만, 중복계약을 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탓에 대기기간이 길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쉽게 말해 소비자들이 동시에 여러 모델에 계약을 걸어두고, 먼저 나오는 모델을 고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인기 모델들의 대부분을 국내 공장에서만 생산이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상당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네시스 전 차종 생산은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만 이뤄지고 있고, 전동화 모델도 사실상 국내 공장이 생산을 독점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 중인 현대차의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코나 EV 등, 기아는 △니로 EV △쏘울 EV △EV6 등은 한국에서 전량 생산해 수출되고 있다.
즉, 해외에서 제네시스 및 현대차·기아의 전동화 모델들 수요가 늘어날수록 국내 소비자의 대기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반대로 국내 물량을 소화할 경우 현대차·기아로서는 글로벌 전기차시장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근본적인 대책은 인기 차종을 해외 공장에서도 생산하면 되는데, 문제는 현대차와 기아가 전기차의 미국 현지 생산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선결과제가 있어서다.
현대차·기아 모두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전기차를 해외에서도 생산하려면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들 노조는 국내 고용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수요가 많은 전기차의 미국 생산을 반대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차·기아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IRA) 탓에 발등에 불똥까지 떨어지는 사면초과에 빠졌다. 현대차·기아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당초 계획보다 미국 현지생산 계획을 앞당겨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단기간에 전기차 현지생산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6조3000억원을 투입해 조지아 주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밝히고, 내년 상반기에 착공해 오는 2025년에나 완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IRA 법안이 통과될 경우 현대차·기아는 2023년부터 조지아 공장 완공 시점까지 2년 반 동안 현지에서 전기차를 세제혜택 없이 판매를 해야만 한다.
현대차·기아가 미국 현지 생산과 관련된 의사결정이 더딘 사이에 미국 완성차업체인 GM(제너럴모터스)과 포드, 독일 폭스바겐,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 1위 테슬라 등은 현재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는 동시에 생산 규모 역시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전기차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주요국 정책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현대차와 기아는 기민하게 생산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가 세제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은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현대차그룹으로써는 미국 조지아 공장의 건설을 앞당기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지만, 노조에 발목이 잡혀 있다 보니 합리적인 노사 화합이 절실한 때다"라고 첨언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이 최근 IRA 법안과 관련해 미국 재무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미국 재무부는 IRA 내 각 항목의 용어 정의, 법안 적용 시 고려해야 할 요소 등 세부적인 사안까지 구체적인 질문을 제시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 5 생산라인. ⓒ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그룹은 북미산 전기차에만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친환경 자동차(Clean Vehicle) 세액공제'와 IRA에 포함된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다양한 조항에 대해 의견을 전달했다.
특히 친환경 자동차세액공제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FTA 체결국인 한국에서 조립되는 전기차에 세제혜택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한미 FTA 내용과 정신 모두에 위배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또 '법안 발효 이전에 미국 전기차 공장 건설에 대해 구속력 있는 약속을 한 법인에서 제조한 전기차는 북미 조립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유예기간을 허용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IRA에 명시된 전기차 공장 신설, 배터리 부품 판매 시 세액을 공제하는 조항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출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미국 재무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으로 자동차기업들이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다각적인 의견을 제시했다"며 "법에 규정된 다양한 인센티브 혜택을 받으면 미국 현지 사업 수익성 개선과 현지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