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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정신적 지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96세로 서거, 전세계 애도 물결

국장 서거 후 열흘간 진행…찰스 3세 왕위 계승

이정훈 기자 | ljh@newsprime.co.kr | 2022.09.09 14:52:37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영국의 정신적 지주이자 최장 재위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 왕위 계상권자는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찰스 3세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영국 왕실은 8일(현지시간) 오후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날 아침 왕실은 여왕의 건강이 염려스럽다고 발표했다. 

여왕은 예년처럼 밸모럴성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던 중이었다. 이틀 전인 6일에는 웃는 얼굴로 신임 총리를 임명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다음 날인 7일 오후 왕실은 여왕이 의료진의 휴식 권고로 저녁 일정을 취소한다고 전했다.

여왕의 건강 악화는 지난해 4월 70여년 해로한 남편 필립공을 떠나보낸 후부터 급격히 쇠약해졌다. 10월에는 하루 입원을 하고, 올해 초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간헐적인 거동 불편으로 지팡이를 짚고 임박한 일정을 취소하는 일이 잦기도 했다.

재위 기간 70년을 지낸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하면서 찰스 왕세자가 국왕 자리를 자동 승계해 찰스 3세로 즉위한다. 외신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이미 공식적인 영국의 국왕이지만, 관례에 따라 대관식은 몇 개월 뒤에나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왕실은 찰스 3세 부부가 이날 밸모럴성에 머문 뒤 9일 런던으로 옮긴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는 '런던브리지 작전'으로 명명된 여왕 서거 시 계획에 따라 절차를 진행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는 서거 이후 열흘간 국장으로 치러진다. 서거 닷새 후인 13일부터는 닷새간 여왕의 유해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하루 23시간 동안 일반에 공개되고, 여왕의 유해는 윈저성 내 성조지 교회 지하에서 영면에 든다.

찰스 3세는 성명에서 "친애하는 나의 어머니 여왕의 서거는 나와 가족들에게 가장 슬픈 순간"이라며 "우리는 소중한 군주이자 사랑받았던 어머니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애도와 변화의 기관, 우리 가족과 나는 여왕에게 향했던 폭넓은 존경과 깊은 애정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받고 견디겠다"고 덧붙였다.

여왕의 서거에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상들도 애도를 쏟아냈다.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영문 트위터를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에 영국 국민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친절한 마음과 선행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여왕은 세계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며 "여왕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힘을 줬다. 여왕은 바로 영국의 정신이고, 그 정신은 지속될 것"이라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찰스 3세 국왕에게 보낸 전보에서 "여왕이 아낌없는 봉사의 삶을 살았다"며 "의무에 헌신한 본보기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확고한 증인"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미국과 영국의 동맹을 강화한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위엄과 불변의 정치인"이라며 "군주를 넘어 시대를 정의했고, 여왕의 유산이 영국 역사와 전 세계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과 모든 공공장소, 군부대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의회에 조기 게양을 하며 뜻을 같이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의장국인 프랑스의 제안으로 이날 회의 시작 전 여왕의 서거를 애도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연방 국가를 순방 중이던 1952년 2월6일 아버지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25살 젊은 나이에 케냐에서 왕위에 오른 뒤 70년 216일간 재위했다. 

영국 최장 재위 군주이자 기록이 확인되는 독립국의 군주들 중에서 프랑스 루이 14세 다음으로 긴 기간 왕위를 지켰다. 이 기간 15명의 총리가 거쳐 갔으며 냉전과 공산권 붕괴, 유럽연합(EU) 출범과 영국의 탈퇴 등 격동을 함께했다.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역할로 국민의 존경은 물론 영국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그는 영연방을 결속해서 영국이 대영제국 이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미국 대통령 14명 중 13명을 만나고 유엔 연설을 하는 등 외교 무대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한편, 여왕은 지난 1999년 영국 군주로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1883년 두 나라가 수교한 지 11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여왕은 안동에서 생일상을 받고 사과나무를 심었다. 안동 하회마을, 서울 인사동 거리, 이화여대를 방문해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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