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미국에서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 밀실·졸속 입법으로 지적받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외교 총력전에 나섰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총 7400억달러(약 966조4400억원) 규모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미국이 자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만 보조금을 세액공제 형태로 지급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IRA를 발효하면서, 현대자동차‧기아가 미국 내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이 당장 내년부터 보조금 없이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IRA가 내년부터 적용되면 현대차·기아는 일정 기간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이에 정부는 한·미간 협의체를 조기 가동함으로써 미국 행정부가 의회에 법 개정을 촉구해 달라고 요청하고, 유럽연합(EU) 및 일본과도 협력해 다자간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IRA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 현대자동차그룹
다만, 업계에서는 우리 정부가 구체적인 성과를 당장 얻어내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하다.
이는 미국이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IRA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급해진 민주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법안이어서다.
골자는 이렇다. IRA의 모태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공약이었던 △기후변화 대응 △사회보장 확대 △보건 및 복지제도 개선 △인프라 확충 등을 이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더 나은 재건법(Build Back Better Plan, 이하 BBB)'이다.
총 4조달러에 이르는 재원을 마련해야 했던 BBB는 공화당 의원들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고, 그로 인해 1년 넘게 검토되다 결국 지난 6월 좌초됐다.
약화된 입지에서 벗어나 정치적 승리가 반드시 필요했던 민주당은 4조달러 규모의 BBB를 IRA로 둔갑시키면서 법안 규모도 4000억달러로 대폭 축소시킨 뒤, 기존 BBB에 반대하던 민주당 내 의원들을 결집시켰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를 서둘러 의회에서 통과시키려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조 맨친(Joe Manchin) 민주당 상원의원만이 동조를 거부하자,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합류시키는 등 '밀실 행정'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원은 민주당 50명, 공화당 50명 총 100명으로 구성돼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1명의 의원만 반대해도 법안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조 맨친 의원은 BBB 중 최대 1만2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을 탐탁치 않아했고, 전기차 보조금을 더욱 깐깐하게 매겨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당초 1만2500달러 중 7500달러는 원산지에 상관없이 기본으로 제공되는 금액이었고, 나머지 5000달러는 미국산 및 노조가 있는 공장에서 생산 시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북미에서 완성차 생산 △미국산 배터리 광물 조달 △북미산 및 FTA 체결국 배터리 부품 조달 등을 전제로 전기차 보조금을 대당 7500달러로 매길 것을 요구했다.
9월부터 중간 선거를 준비해야했던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이고 8월 중 법안 처리가 시급했던 탓에 미 상원이 휴회에 돌입(하계휴가를 앞두고)하기 직전인 8월7일에 기습적으로 IRA를 통과시켰고, 이미 휴회에 들어간 하원은 12일에 의원들을 소집해 긴급투표를 진행했다.
또 하원이 이미 휴회에 돌입한 상황에서 투표가 진행됐던 탓에 총 의원 435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200여명은 대리 투표로 진행됐다. 이렇다 보니 절차 상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는 법안 통과를 무효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고 2주 만에 상·하원 통과, 대통령 서명까지 일사천리로 끝난 꼴이다"라며 "미 의회 내에서 공화당 의원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조차 법안의 세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표가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 행정부는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야 법안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며 "미 의원, 행정부조차 법안의 세부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체 진행된 만큼 당연히 미국 외 타 국가나 기업에서는 IRA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셈이다"라고 꼬집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 셀 공장 건설에 투입하기로 한 55억달러 외에 오는 2025년까지 50억달러의 추가 투자하겠다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체 신규 투자 규모가 총 105억달러 달했지만, 이번 IRA 발효 탓에 현대차그룹은 △테슬라 △GM 등과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됐다.
상황이 불리해진 만큼 미국 현지 전기차 생산을 서두를 필요성이 커졌지만,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생산라인을 확보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6조3000억원을 투입해 조지아 주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지만, 내년 상반기에 착공해 오는 2025년에나 완공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