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15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서울·수도권에서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시내 곳곳이 침수됐고, 일대가 마비됐다. 무엇보다 이번 수마가 '주거 사각지대'에 노출된 취약계층까지 겨냥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며칠간 이어진 폭우로 서울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에 빠졌다. 수많은 차량이 물에 잠겼으며, 일부 지하철역은 역류와 침수로 가동이 멈췄다. 특히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고질적인 침수 지역으로 꼽히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동작구 △금천구 △관악구 등 남쪽 지역 피해가 막심했다.
하지만 매섭게 파고드는 빗줄기는 '주거 사각지대'에 노출된 취약계층에게도 냉정했다. 삶의 터전에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은 이들의 근심은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창신동·성북3·빨래골 일대를 방문해 현재 상황과 주민 이야기를 들어봤다.
◆'도시재생 1호' 창신동, 8년 결과물은 현실판 '기생충'
서울 지하철 동대문역(1호선)을 나오면 목격할 수 있는 창신동 일대는 서울에서 노후주택 비율(2017년 기준)이 두 번째로 높은 곳(72,2%)으로 매우 열악한 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노후 주택이 즐비한 창신동은 이번 폭우로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 프라임경제
지난 9일 방문한 창신동은 차량 한대조차 지나기 힘든 좁은 골목 양측으로 판잣집을 연상케 하는 오래된 주택들이 즐비했다. 밤새 내리친 물폭탄 탓에 곧 무너질듯한 건물과 널브러진 음식물 쓰레기, 오물 등으로 일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밤새 물난리를 겪은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밖에 나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양동이를 들고 거실까지 차오르는 물을 퍼 나르고 널브러진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주민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창신동 노후화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여름엔 집 안으로 물이 스며들고 하수구가 범람하는 것이 일상인 만큼 극심한 불편함 속에 생활하는 주민이 대다수다. 우리 집은 전날 호우로 내부가 잠겼다. 정전도 일어난 탓에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아 물을 퍼내기도 힘들었고 집안 용품들은 쓸 수 없을 지경이 됐다. 곧 집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현재도 곳곳에 양동이를 배치해 비를 담고 있다. 막막하기만 하다." - 창신동 주민 A씨(76세, 남)
사실 창신동 주민들은 이런 노후도 탈피를 위해 과거부터 주거 개선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2007년 창신·숭인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본격 사업 추진이 예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돌연 구역지정 해제(2013년)라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도시재생 1호 사업지(2014년)로 재기를 꾀했지만 이조차도 근본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폭우로 인해 건물 내부에 물이 새고 있다. ⓒ 프라임경제
창신동 한 주민은 "도시재생을 이유로 많은 예산이 사용됐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주거 질은 더욱 하락한 상태"라며 "'현실판 기생충'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며, 과거부터 개발을 위해 노력했지만 도시재생지역이라는 이유로 자격조차 되지 않아 슬럼화는 가속화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후 주택인 만큼 이번 폭우 피해는 극심했고, 하루하루 한숨만 늘어가고 있다"라며 "언론에서는 강남 등 주요 도시 피해 사례를 언급하고 있지만 '주거 사각지대'에 놓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는 이곳의 아픔도 알려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창신동 일대는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곳곳에서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 도시정비형 재개발 등 정비사업 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강대선 창신동(창신9·10·12구역) 재개발 추진위원장은 "주거 환경이 원천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제2~3의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고, 피해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대부분 주민이 저소득층이라는 점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금액 부담이 만만치 않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3개 구역 주민들은 개발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다"라며 "향후 2차 신통기획 공모에 응할 예정으로, 주거 환경이 변화할 수 있게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줘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성북3·빨래골 "우리는 주거 개선을 간절히 원한다"
물론, 이번 피해는 창신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주거 사각지대에 노출된 성북3구역과 빨래골 역시 같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한성대입구역(4호선) 5번 출구를 나와 북측으로 15분 가량 이동하면 마주할 수 있는 성북3구역은 고도차가 무려 45m에 달하는 구릉지로 급격한 경사를 자랑한다. 길 곳곳이 파여 있어 이동에도 적지 않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창신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거 환경은 판자촌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성북3구역 한 주민이 집 내부로 들어온 빗물을 퍼내고 있다. ⓒ 프라임경제
"이곳은 6.25 전쟁 이후 이주해 온 주민들이 형성한 동네다. 50년이 넘은 목조 주택이 즐비해 장마나 태풍이 들이닥치면 그 피해는 극심하다. 높은 노후도(84%) 탓에 폭우로 적지 않은 주택이 무너져가고 있다. 오래된 정화조에 분비물이 밖으로 넘쳐흐르고 집 안에 물이 들어차고 건물 천정도 무너졌다. 급격한 경사로 빗물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과연 이곳이 서울인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다." - 성북3구역 주민 C씨(67세, 여)
사실 성북3구역 역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도 개발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도시재생지역과 용도 지역 상향 협의 기준 등 여러 제한으로 인해 개발이 좌초되면서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성북3구역 공공재개발 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공공재개발 1차 후보지와 도심공공개발사업에 신청했지만 탈락했다"라며 "우리는 생사를 고민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데, 지자체는 이를 외면하고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당장 생존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필요한 것이지 고급 아파트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원주민들도 동네를 떠날 정도로 열악한 만큼 이번 피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라고 덧붙였다.

성북3구역은 폭우 사태로 건물 천정이 무너지기도 했다. ⓒ 프라임경제
일명 '빨래골'로 불리는 수유동 486 일대도 거센 빗줄기를 피하지 못했다. 이곳 역시 주거 개선을 위해 1차 신통기획을 신청했으나, 북한산 고도제한에 묶인 탓에 좀처럼 개발을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폭우로 가구 곳곳에 누전이 발생해 전기공사가 이뤄졌다. 주차장 천정과 담벼락도 훼손돼 건물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주민들 개발 열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 2차 공공재개발에 꼭 선정되길 바란다. 우리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 - 박철서 수유동 486 일대 재개발 추진위원장
현재 두 구역은 공공재개발 2차 공모를 신청,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반드시 이번 사업에 포함돼 주거 개선을 이룩한다는 포부다.

거센 폭우로 인해 지하주차장 천정이 무너져 내린 수유동 486 일대. ⓒ 프라임경제
업계 관계자는 "주거 취약계층이 생활하는 구역은 자연재해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라며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번 폭우에 대해 적극 대처하고 있고, 구청 역시 관할 구역 피해 복구를 위해 힘쓸 것"이라며 "서울시도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