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그룹 부도 이후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던 대우건설은 국내 최고 토목 기술과 시공능력을 바탕으로 건설업 '전통 강호'로 꼽힌다. © 대우건설
[프라임경제] 건설사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몰락의 나락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일지라도 변화 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국내 산업 기틀을 형성하고 있는 건설사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건설강국을 이끌고 있는 건설사들을 탐방해 '건설사개론' 시리즈를 꾸린다. 이번 회에는 '미운 오리 새끼'에서 벗어나 또 한 번의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대우건설(047040)의 태동과 성장에 대해 살펴본다.
대우건설은 지난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90년대 말까지 '국내 재계서열 2위'를(1999년 자산과 매출액 기준) 지켜왔던 대우그룹으로부터 탄생한 '건설업 빅5'다. 실제 지난 20년 동안 시공능력평가 순위에 있어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림산업(현 DL이앤씨) △GS건설들과 함께 서로 순서만 바뀔 뿐, 독식을 이어온 바 있다.
전통적으로 토목 분야에 강점이 있어서 국내 최고 수준의 토목 기술과 시공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장, 국내최초의 침매터널인 거가대교를 시공한 건설사가 대우건설이다. 발전플랜트 분야 중 특히 원자력 발전소 시공능력 또한 현대건설과 함께 왕좌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대우건설은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2017년까지 시공능력평가에서 3위권을 유지하며 건설업 전통 강호 모습을 유지한 바 있다. 특히 2006년부터 3년 연속 1위도 달성한 바 있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매각에 의한 영향을 받은 2011년을 제외하면 5위권 이내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대우건설이 걸어온 발자취는 다른 건설사와 달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0년 대우그룹 해체 여파로 워크아웃을 피하지 못한 대우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의 성공 및 시장 경기 회복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함과 동시에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인수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 안정화를 이루기 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산업은행에 또 다시 매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호반건설로의 인수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이마저 무산되면서 '주인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새로운 주인' 중흥을 맞아 본격적인 재도약을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기업가치 제고 활동을 통한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같이 축적된 기술역량 및 경영능력 그리고 업계 최고의 인재를 바탕으로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건설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자본금 6000만원과 해외시장 토대 '발전 기틀 마련'
대우건설의 시작은 1973년 당시 국내 도급순위 604위에 그쳤던 '영세 건설업체' 영진토건사다. 1970년대 중동 중심 해외건설 붐에 발맞춰 해외 지향적으로 사업을 전개한 대우그룹이 영진토건사 영업권을 인수한 후 그해 8월1일 대우건설 주식회사로 바꿨다.
당시 자본금이 6000만원에 그쳤던 대우건설은 1974년 11월1일자로 상호를 대우개발주식회사로 출범, 본격 건설업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국내 최대 오피스 빌딩' 대우빌딩 착공에 돌입한 이후 △1976년 2월 전기통신설비공사업 △8월 해외건설업 △12월 포장공사업 등의 면허를 취득해 종합건설업체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대우건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산업은행으로 재매각되는 과정에서 '회사 상징'이던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을 매각하는 타격을 입었다. © 대우건설
대우건설의 성장 요인은 바로 해외건설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1976년 해외건설업 면허를 취득한 대우건설은 남미 에콰도로 퀴토시 도로포장 공사(1976년) 수주를 시작으로 1977년 수단 영빈관을 수주하면서 국내 최초 아프리카 진출과 함께 국내 최초 리비아 진출에 성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은 당시 국내 업체간 과당경쟁이 치열했던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등 기존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라며 "이후 어디서나 특유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 시장 개척 또는 수주 방식 등 단골 수식어를 만들며 성장을 거듭했다"라고 회상했다.
국내에서도 △1978년 동작대교·옥포조선소 착공 및 롯데호텔 준공 △1981년 울산화력 4·5·6호기 준공 및 88올림픽도로 착공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어갔다.
그리고 1981년 대우실업과의 합병으로 대우가 출범함에 따라 대우건설은 건설부문으로 개편된 이후 '제2의 도약기'를 맞이했다. 실제 그해 해외건설 수출 30억불탑 수상에 그치지 않고, 1984년 서울 힐튼호텔 및 중부고속도로 착공 등 불과 2년 만에 해외건설수출 40억불탑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아울러 1988년에는 미국 건설시장에 개발형 투자방식으로 진출한 대우건설은 카메룬·대만·일본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1992년 경부 고속철도 사업 참여와 동시에 서인천 복합화력발전소를 세계 최단기간인 29개월 내에 완공하는 등 국내외 건설 강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이런 괄목한 성장을 바탕으로 대우건설은 1993년 대우 세계경영 선언에 맞춰 '지구촌건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더욱 적극적으로 사업 확장을 꾀했다.
하지만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글로벌 시장 위축으로 입지가 크게 흔들린 대우그룹은 뒤늦게 실시한 구조 조정 효과를 보지 못한 채 1999년 8월 '그룹 해체'라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지 못했다. 이로 인한 여파로 대우건설 운명도 하루아침에 바뀌기 시작했다.
◆쉽지 않던 '새로운 주인 찾기' 그룹과의 시너지로 본격 재도약
대우그룹 해체 이후 대우 건설부문은 대우건설로, 무역부문은 대우인터내셔널로 각각 분할됐다. 이때 서울역 앞 대우빌딩은 대우건설이, '대우 상징' 오리발 마크 로열티는 대우인터내셔널이 각각 보유하게 됐다.
물론 대우건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절치부심 끝에 워크아웃을 졸업(2002년)한 대우건설은 기존 아파트 브랜드 '대우드림타운' 후속으로 '푸르지오'를 런칭했다(2003년). 그리고 대우그룹 시절부터 국내 최정상급 시공능력과 규모를 바탕으로 2006년부터 연속 3년간 시공능력평가 1위를 달성했다.
이런 성장세를 바탕으로 당시 '대주주' 한국자산관리공사는 대우사태 투입 공적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우건설을 매각하면서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금호그룹은 '건설업 강호' 대우건설 인수에 그치지 않고 '물류 운송 강자' 대한통운까지 인수(2008년)하면서 2010년까지 한진그룹을 제치고 '재계 7위'에 등극했다.
하지만 대우건설의 금호그룹 생활은 그리 길지 못했다. 여러 M&A 과정에서 발생한 경영상 문제와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친 금호그룹이 2010년 6월 산업은행에 대우건설을 재매각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입장에서는 또 다시 그룹에서 버림받는데 그치지 않고, 재매각 과정에서 '회사 상징'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을 매각, 본사를 광화문에 임대로 옮기는 타격을 입기도 했다.
나아가 '새로운 주인 찾기'도 쉽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2017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호반건설로의 매각을 시도했지만, 인수 성사 직전 불거진 해외 사업 부실로 인해 호반건설이 인수 철회를 선언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대우건설 매각은 2017년 3분기까지의 실적을 보고 협상과정이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4분기 실적이 발표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라며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 현장 문제로 3000억원에 달하는 잠재손실이 반영된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이로 인해 당초 7000억원 이상으로 기대됐던 2017년 영업이익이 4000억원 남짓으로 감소했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치러진 인수전도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이 지난해 6월 본입찰 결과,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중흥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정작 중흥건설은 "너무 가격이 높다"라고 포기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흥건설은 호반건설 참여를 의식해 계획보다 많은 입찰가(2조3000억원)를 제시했지만, 호반건설은 응찰도 하지 않았다. 더불어 입찰에 참여한 DS네트웍스 컨소시엄 가격(1조8000억원)과도 5000억원 정도 격차가 발생했다.
결국 산업은행은 중흥건설과 DS컨소시엄 대상으로 '재입찰 아닌 입찰'을 진행한 결과, 2조1000억원을 제시한 중흥건설(DS컨소시엄 2조원)이 이변 없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좌측)과 이대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대우건설 지분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 체결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중흥그룹
그리고 지난해 12월, 중흥그룹이 KDB인베스트먼트와 대우건설 지분 50.75%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 공정위원회가 올 1월 중흥그룹과의 기업결합을 승인함에 따라 인수합병이 마무리됐다.
대우건설은 '새로운 주인'을 맞아 중흥그룹과의 시너지 효과로 향후 본격적인 재도약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창선 회장이 대우건설의 해외 역량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한동안 그룹 차원에서의 적지 않은 지원이 이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과연 대우건설이 그동안 '미운 오리 새끼'에서 벗어나 '든든한 버팀목' 중흥그룹에서 행복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