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005380)가 또다시 일본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2009년 일본 시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전격 철수하며 자존심을 구겼던 현대차는 전기차 온라인 판매라는 전략을 앞세워 다시 한 번 일본 공략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현대차는 일본에 △아이오닉 5 △넥쏘를 온라인 출시한다.
이번 진출에 있어 현대차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임한다는 입장이다.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시장 상황을 반영해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진출이 향후 시장 내 마중물 역할인 셈이다.
현대차의 이런 결정에는 일본의 변화도 한몫했다. 유독 전기차에 보수적이었던 일본에도 전동화 훈풍이 불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오는 2030년 내연기관 판매 금지와 함께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겠다고 공언하며 지원에 나섰다. 또 지난해 일본에 신규 등록된 수입 전기차는 8610대로, 전년 대비 3배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지난해 일본에 신규 등록된 수입 전기차는 8610대다. ⓒ 연합뉴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올해 일본 정부는 전기차 한 대당 최대 80만엔을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대상 차량은 △전기차(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수소전기차(FCEV)이며, 수입차도 지원 대상이다.
특히 전기차 산업 특성상 국가의 구매력 지수와 인프라 구축 가능 여부가 매우 중요해 일부 선진국에 수요가 한정됐다는 점도 일본을 더욱 부각시킨다. 기존 전기차 시장으로 주목받던 중국은 과도한 규제를 비롯해 중국 기업을 우선으로 한 정책으로 자국 기업만을 끼고도는 경향이 강해져 시장 매력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에 많은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이 일본 전기차 시장을 탐내고 있다. 현재 일본은 전기차 비중이 1%에 불과할 뿐 아니라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전동화 모델이 없어서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상황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일본은 수입차 무덤이라고 불릴 만큼, 자국 제품 선호 현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본자동차판매협회(JADA)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승용차 판매량은 444만8340대이며, 그 중 수입차는 34만4552대에 불과하다. 전체 판매량 중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7.7%로, 전체 브랜드 중 10위권에 안착한 수입 브랜드는 전무하다.

우라베 타카오 HMJ R&D센터 디자인팀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현재 일본에서 상황이 괜찮은 수입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아우디 정도다. 특히 폭스바겐에 대한 일본인들의 충성도는 남다르다. 약 20년 전 폭스바겐이 토요타와 세일즈 협업을 통해 진행했던 판매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수입차에 유독 보수적인 일본인들에게 오랜 기간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한 결과로 분석된다.
반면, 현대차의 상황은 다르다. 일본은 유독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감이 높아 소비자 인식 개선이 필수적으로 병행돼야 한다.
이에 현대차가 삼성전자의 판매 전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일본의 반한 정서를 고려해 2015년부터 삼성 로고 대신 갤럭시 로고를 부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7년 만에 일본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0%를 넘어섰다.
최근 현대차는 일본시장 법인명을 현대모빌리티재팬(Hyundai Mobility Japan)으로 변경했지만, 아직까지 브랜드명은 결정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볼보자동차가 폴스타라는 전기차 브랜드를 따로 출범했듯이 현대차도 순수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폴스타는 중국 지리홀딩과 볼보자동차가 협업해 만든 전기차 브랜드로 완전한 중국 브랜드지만, 스웨덴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며 반중 정서가 강한 국내시장에서 중국과 거리를 두는 판매 전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대차 역시 별도의 전용 전기차 브랜드인 아이오닉을 이미 보유하고 있고, 현대차는 급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아이오닉으로 일본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좋은 전략일 수 있다"고 첨언했다.

현대차가 아이오닉 5와 넥쏘를 앞세워 일본 시장에 진출한다. ⓒ 현대자동차
또 현대차에게는 가격 정책도 고민거리다. 현대차와 가장 직접적 비교 대상인 테슬라는 현재 일본에서 국내 판매가격(6159만원)보다 1000만원 이상 저렴한 가격(모델 3 RWD 479만엔)으로 판매되고 있다. 테슬라가 진출한 31개 국가 중 △미국 (약 4779만원) △마카오 (약 4783만원) △홍콩 (약 4930만원)에 이어 네 번째로 낮은 가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내놓을 △아이오닉 5 △넥쏘는 각각 479만엔, 776만8300엔으로 알려졌다. 이에 아이오닉 5의 가격 정책이 통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서비스센터를 비롯해 일본 내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테슬라 모델 3와 동일한 가격으로 과연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차의 온라인 판매 전략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 오프라인을 통한 딜러와의 교감과 서비스를 중시 여기는 일본인들에게 이런 전략이 주효할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일례로 일본은 아직까지도 투표 시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수기로 적는 '자서식(自書式) 투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처럼 행정과 구매에 있어서 유독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일본인들의 관습이 걸림돌인 것이다.

일본은 투표 시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수기로 적는 투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뿐만 아니라 AS에 대한 유기적 연동을 중시 여기는 성향도 리스크로 작용할 확률이 크다. 수입 브랜드 특성상 대규모 오프라인 인프라를 단기간에 확충하기 어려워서다.
이런 우려를 덜기 위해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 요코하마를 시작으로 수년 내로 전국 주요 지역에 현대고객경험센터를 구축해 △오프라인 브랜드 체험 △구매 지원 △정비 △교육 등을 제공할 방침이다.
나아가 현지 카셰어링 및 P2P 업체 DeNA SOMPO Mobility(서비스명 Anyca)와 협력해 △넥쏘 △아이오닉 5를 활용한 카세어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활용을 통해 일본 소비자를 공략할 예정이다.
올해 폭스바겐을 비롯한 스텔란티스도 일본 전기차 시장 공략에 나선다. 특히 토요타를 비롯해 많은 일본 브랜드들도 전기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향후 일본 전기차 시장 내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일본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라며 "시장 안착을 위해 일본 소비자의 취향과 정서적인 문제까지 고려한 철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