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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열기에 눈치보는 '의원님'들

'대의제의 위기' 속에 눈치보기 대신 '위상재정립' 노려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8.06.13 12:19:26

[프라임경제]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대규모 촛불집회와 온라인 활동 등으로 활발히 의견을 쏟아내고 있는 게 새 트렌드가 된 가운데, 기성 정치인들이 이러한 상황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사진= 쇠고기 정국으로 인해 여야의 국회 등원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뉴스파트너>
 
직접 민주주의 열기가 사상 유례 없이 고조된 상황에 대의기관인 국회와 민의를 수렴하고 새 방향을 창출하는 정당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것.

정치인들은 현정국에 주도권을 잃고 방관자로 밀려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정국 해결을 위해 협의하는 일상적인 활동에 대해서까지 여론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기성 정치인의 수모를 넘어서서 대의정치의 위기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다.

 

◆ 광장에 나서도 '리더'아닌 '구경꾼', 정치행위 하나하나에도 오히려 눈치보이는 판

이러한 상황은 최근 정국이 쇠고기 수입 거부 문제로 바뀌면서 촉발된 것. 시민들이 소통에 문제를 보이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밀려나와 촛불을 든 상황에, 여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야당들도 구경꾼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연출됐다. 유권자들이 직접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서 대의정치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것.

촛불집회에 참여한 통합민주당 등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무대의 전면을 주도하러 나서지 못하고 도로에 앉아 우두커니 구경을 하는 상황이 연출될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은 그저 '누군가 나서서 상황을 조종하려는 것에 반감을 일으키는 쪽으로 대중문화가 변화한 탓'으로 해석됐다. 문화행사인 촛불집회에 정치가 껴들 여지가 없다는 논리였던 셈.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촛불집회가 점차 장기화되고 모든 정치 현안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해지면서 대의정치가 장기간 표류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촛불집회로 대표되는 직접적이고 즉시적인 민의의 표출에 기성정치인들이 주눅들고 눈치를 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불편을 느끼는 것은 비단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한나라당(여당)만이 아니다. 국회 공회전 사태를 언젠가 풀고 돌아가 여당과 함께 국정을 논의해야 하는 야당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장관을 지낸 경력이 있는 모 야당의원은 "FTA를 처리를 논의해야 하는데 쇠고기 문제가 이렇게 돼 있으니 아무도 말을 못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고조된 직접민주주의의 상설화 경향이 의원들이 소신껏 정치적 소신을 피력하는 데 엄청난 압박감을 주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심지어 의원들이 의원들의 당연한 의무사항인 '등원'을 결정하는 부분에서도 여론 흐름에 눈치를 보는 경향도 감지된다.행여나 '쇠고기 문제도 해결하기 전에 국회에 들어간다고 하면 밥그릇 챙기기로 오해를 사 집중포화를 맞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기저에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쇠고기 수입 문제 외에 다른 일상적 정치현안들도 처리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행보를 스스로 결정짓지 못하고 있는 것.

13일 쇠고기 재협상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 공청회에서는 '등원'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여러 정치인들이 해명성 발언과 우려 발언을 하는 모습이 연출돼 눈길을 끌었다.

송영길 통합민주당 의원이 "이번 공청회는 등원을 위한 수순이 아니다"라고 거듭 분리,강조한 것이나, 최인기 민주당 정책위원장이 "등원 문제는 원내대표들이 협의할 문제"라고 규정한 것은 쇠고기 문제에 쏠린 여론의 관심이 자칫 정치인들의 (등원 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한 타협에 적대적인 에너지로 표출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 야당의 불참으로 제18대 국회의 개원이 무산된 지난 5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뉴스파트너>
 
당초 이 자리에는 여당인 한나라당도 참석하게 되면서, 등원 가능성에 대한 모색 등 다른 정국 현안에 대한 대타협 가능성이 크게 기대됐던 바 있다. 이런 터에 '공청회에서는 오로지 쇠고기 문제에만 집중한다'는 식으로 정치인들이 스스로 가능성을 제한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 '큰 정치'를 포기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같은 자리에 참석했던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은 "국회가 아무런 할 일이 없다"고 현상황을 진단했다. 야당들의 등원 거부와 함께 등원 문제를 놓고 여론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함께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임 위원장은 "모든 게 국회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면서 "국회에서 논의되도록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이에 덧붙여 "국민들이 생업에 돌아가 종사하고 정치현안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우려의 입장을 피력했다.

◆ 사회 변화 읽는 눈, 소신껏 정치행위할 수 있는 전문성 키워야

물론 민의 수렴에 그간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았던 정치인들이 촛불집회의 거대한 규모라든지 네티즌들의 힘이 표출되는 상황을 계기로 여론에 관심을 크게 갖게 되는 상황은 긍정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각각의 정치현안에 대해 정치인들이 모두 여론 흐름에 좌우되는 상황으로까지 흐른다면, 대의정치의 기본 골간이 흔들려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평론가 공희준 씨(전 서프라이즈 편집장)는 "이번 촛불집회는 '(민의) 수렴'에 문제가 있어 일반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현상"이라면서도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민주주의가 업그레이드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대의제 기능에 문제가 있어도 직접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시위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의 의사는 그러면 어떻게 반영해야 하나?"라는 것. 결국 대의제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고 또 이것이 완벽하지도 않겠지만, 결국 전체적인 흐름은 '제도적 정치'를 통해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은 문제는 사상 유례없이 직접민주주의식의 참여 열풍이 거센 상황 속에 기성정치인들이 어떻게 위상을 재정립하는가다. 기존의 행태를 답습하다가는 '촛불집회의 상설화' 상황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소통의 길을 열어두되, 정치적 판단에 대해서는 소신을 갖고 결정하고 임해야 한다는 구분선을 정치인들이 스스로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 문제는 이러한 자신감과 위상을 새롭게 그리는 근거와 힘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다.

인터넷 시대, 대중문화 시대의 여론과 그간의 정치문화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음을 이번 촛불집회 정국에서 알게 되었으니만큼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는 것은 좋으나, 지나치게 위축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정치를 전담하는 전문가들의 필요성 역시 사회의 다각화와 발전으로 한층 커진 게 현실이기 때문. 이는 현재 직접민주주의 열기가 커진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런 매커니즘이 오래 지속되거나 대의제 자체를 폐기해서는 정치 발전이 요원하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정치인들에 의한 국정운영 정보의 독점이 허용되지 않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하고 대중의 사회참여 욕구도 커진 만큼, 기성정치인들 스스로도 특권의식을 버리고, 대신 정책전문성을 키우고 정책의제(Agenda)를 지속적으로 계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부활,제도권 정치의 마비로 볼 수 있는 이번 촛불정국이 대의제와 기성정치인들의 추락으로만 끝날지, 아니면 대의정치제도가 직접민주주의 부활이라는 특수상황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국 그 승패는 기성정치인들이 무기력하게 성난 민중들의 눈치보기에만 급급하다 몰락할 것인가 혹은 이번 기회에 기성정치인들 스스로가 시대에 걸맞게 변신하는 기회로 일궈낼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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