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3일 오전 열린 제 3차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추진하자는 협의안이 도출돼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모인 당정청 인사간에 입장차가 나타나 달라진 역학관계를 엿보게 했다. 취임 100일을 맞아 한창 이욕적이어야 할 청와대나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책임 통감'을, 당 관계자들은 '제도 개선'을 키워드로 삼았다. 당은 훈수를 두고 정청은 고개를 숙인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내각을 총괄하는 한승수 국무총리는 이에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축제가 돼야 할 오늘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며 "그간 정부가 많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또 "쇠고기 안전과 관련, 검역주권을 지키겠다"고 말해 그간의 정부 정책을 사실상 뒤집었다.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국민의 권리"라는 평가를 내렸다.
류우익 대통령실장 역시 "대통령과 국민께 송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당은 모두발언부터 정청에 따끔한 훈수를 시작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당대표는 "지금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마음에는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침체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며 "민생의 환한 불을 밝힘으로써 자연스럽게 촛불을 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책에 대한 실패를 짚은 셈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 역시 "국민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되고 머리를 숙이고 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태도가 문제였다는 간접 표현인 동시에 채널 운영에 변화를 주문한 대목으로 읽힌다.
또 홍 원내대표는 "대통령한테 무엇인가를 건의했으면 확실하게 책임져야 하고 아깝고 미안하지만 책임질 사람은 지는 풍토가 필요하다"며 인책론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도 했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당정청간 긴밀한 논의구조를 갖고 예측가능한 일을 하기 위해 회의를 정례화, 매주 한차례 개최키로 했다"고 밝힌 것도 주목할 만한 사항이다. 고위당정청 협의는 주마다 1번씩 갖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 번 당정청 협의에서 언급된 것이지만, 정부가 정책에 사실상 전면적 실패를 자인한 상황에 당이 정청과의 소통을 확실히 보장받게 돼 당의 입김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정청 회의에서의 상황은 이른바 여의도식 정치 문법을 배제한 실세형,실무형 정치인들의 정청 장악이라는 이명박식 정치 실험이 쇠고기문제로 암초에 부딪힌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과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야당 등 정치주체들을 무시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를 풀어나가야 할 압박을 정부와 청와대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변화는 또 당초 다가오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관리형 당대표가 선출될 것으로 전해졌던 정국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정권 초임을 감안, 정부의 의사를 당에 전달,조율해 줄 수 있는 인사가 차기주자형 당대표보다 적절할 것이라는 분석에서 나온 관리형 당대표론은 당의 힘이 어느 정도 견제받는 상황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상황 변화로 향후 관리형 당대표가 등장하더라도, 당의 입장은 목소리를 더 키울 여지를 얻게 됐다.
이에 따라 원내대표단(원대대표-정책위원장-정조위원장단)이 한층 부각되면서 향후 정국에 의견을 개진할 전망이다. 더욱이 박희태 전 의원 등이 언급한 바 있는 정무기능 강화를 위한 정치인 입각 추진 등이 이번 쇠고기 인책론과 연계돼 대폭 추진되는 경우 당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래저래 당의 비중이 제고되는 상황에, '여의도 정치'와 접목된 이명박식 '실용정치'가 어떻게 난국을 해결해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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