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쿠팡을 지정하든, 개인 김범석을 지정하든 계열사 범위에 전혀 변화가 없고 사익편취 규제행위도 지금 시점에선 발생 가능성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의 결정에 따라 쿠팡은 미국 사장 이후 추진해오던 국내 투자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29일 올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과 동일인(총수) 지정 결과를 발표하고 쿠팡의 동일인을 쿠팡 법인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뉴욕증권거래소 앞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 쿠팡
공정위는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사례에서 국내 최상단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온 점 △현행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동일인관련자 범위나 형사제재 문제 등에 대한 현실적 대처 어려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쿠팡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계열사 범위에 변화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 같이 판단했다.
쿠팡은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어서 올해부터 대기업집단에 편입됐다. 당초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한 전례가 없고, 외국인이 총수인 경우 사익편취 규제 등 제재 실효성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대표적으로 외국계 기업인 에쓰오일, 한국GM은 매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업계, 정치권 등에서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공정위는 방향을 선회해 김 의장 총수 지정을 검토한 바 있다. 김 의장은 쿠팡 지분을 10.2% 보유했으나 주당 29배 의결권을 가져 실질적 의결권은 76.7%에 달해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김범석 의장이 쿠팡 내에서 다른 재벌기업 총수와 비슷한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혜국 대우' 위반 논란을 고려한 판단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국적인 김범석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상 최혜국 대우 규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지적을 접하고 실무 검토를 진행해왔다.
또 쿠팡은 지난달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면서 앞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에 따른 규제를 받게 되는데, 이는 국내와 미국에서 이중 규제가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다만 이 같은 공정위 결정과 관련해 '검은머리 외국인 봐주기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 2017년 공정위의 대기업 집단 지정을 앞두고 이해진 창업자가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을 만나 이 의장의 총수 지정 문제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바 있다.
공정위는 '외국인 총수 지정'과 관련해 이 같은 제도상 미비점을 인정하고 개선 방안을 찾기로 했다. 연구용역 등을 통해 동일인의 정의・요건・확인 및 변경 절차 등 동일인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현행 규제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당장에 외국인을 총수로 판단해 규제하기에는 집행가능성, 실효성 등에서 일부 문제되는 측면이 있다"며 "총수 지정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및 개선을 추진해 규제 사각지대를 방지하고, 규제의 현실적합성·투명성·예측가능성을 높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정위의 결정에 따라 쿠팡의 국내 투자도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쿠팡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지 2주 만에 전라북도 완주군에 신규 물류센터 설립을 위해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이어 3000억원을 투자해 경상남도에도 물류센터 3곳을 신규 설립하기로 했다.
한편, 공정위는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은 △쿠팡 △한국항공우주산업 △현대해상화재보험 △중앙 △반도홀딩스 △대방건설 △엠디엠 △아이에스지주 등 8개 그룹을 새롭게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기존 대기업집단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총수는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효성그룹의 총수는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각각 변경됐다.
또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40개 집단(소속회사 1,742개)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셀트리온, 네이버, 넥슨, 넷마블, 호반건설, SM, DB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새로 포함된 반면 대우건설은 제외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지정으로 경제력집중 억제 시책의 적용 대상이 확정됐으며, 이후에도 대기업집단에 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분석, 공개해 시장 감시 기능 강화를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