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내년부터 기업이 돈을 주고 구매하는 탄소배출권 가격이 인상될 조짐을 보이면서 화석 연료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LG화학(051910)과 SK이노베이션(096770) 등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사업 확장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도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정부 친환경 정책에 발 맞추기 위해선 비용 소모가 상당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서다.
특히 두 기업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탄소배출권 비용 증가와 저탄소를 위한 체질 개선이 점진적으로 성장·투자 위축에 따른 경쟁력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탄소배출권'이란 지구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고안된 제도로,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탄소배출권을 기업간 거래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각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정한 뒤 배출권을 할당해주고, 이보다 많이 사용하면 배출권이 남은 다른 기업으로부터 구매해 쓰도록 하는 방식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시행 이후 점차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정부는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에는 탄소배출권을 100% 무상 할당했지만, 2차(2018~2020년)부터 3%를 유상 할당했다. 3차 시작인 내년부터 오는 2025년까지는 이 비율을 10%로 높인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앞으로 유상 할당 비율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환경 규제가 강화되다 보니 탄소배출권 가격은 치솟는 중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기준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2만7500원으로 이달 들어 꾸준히 오름세다. 2차 계획 시작인 2018년 당시 톤당 2만3200원이었던 탄소배출권 거래 가격은 올해 들어 4만원대 안팎으로 급상승한 후 코로나19 여파로 하락·소강 상태를 보이다 현재 다시금 오르기 시작했다.
업계는 앞으로 꾸준히 탄소배출권 가격이 오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내년에 강화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시작되면, 배출권 소진이 예상되는 3차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수요가 더욱 늘어 결국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배출권 가격이 지금보다 약 3배 정도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오를 수록 화학업계는 재무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업 확장을 위해 공장을 가동하면 할수록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고 이는 곧 배출권 추가 지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LG화학 경우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841만톤을 배출했다. 지난 2017년에는 772만톤, 2018년 800만톤을 쏟아냈다. 여기에 측정하기 어려운 간접 배출량까지 더하면 규모는 900만~1000만톤으로 더 커진다.
같은 기간 매출을 보면 지난해에는 28조6250억원(연결기준)을 기록했다. 2017년(25조7000억원)과 비교하면 11.4% 성장한 수준으로 기업이 성장할수록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증가한 셈이다.
글로벌 배터리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외형 성장이 불가피한 LG화학 입장에선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추가 비용이 예고된 수순이다.
이미 LG화학은 2018년 10만톤, 2019년 13만8000톤의 배출권 추가 매입을 단행했다. 올해 LG화학이 할당받은 배출권은 755만톤 규모로, 배출권을 추가 구매한 2018년(790만톤), 2019년(766만톤)보다 적은 탓에 추가분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다 보니 LG화학은 배출권 거래제를 두고 '재무 리스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LG화학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및 배출권 구매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구축해 국내 배출권거래제 참여에 따른 재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해외 배출권 선도 거래 △자체 청정개발체제 사업 추진 △대응 TF 구성 등 내년 3차 배출권 거래제를 의식하는 LG화학의 고심이 짙게 드러나 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온실가스 1253만톤을 내보냈고, 2018년은 1314만톤을 배출했다. 배출량이 줄어든 점은 외관상 수치로서는 유의미하지만 문제는 배출부채가 증가하고 있는 부분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에 할당된 탄소배출권을 초과하는 배출량에 대해 향후 부담할 비용을 추정치로 잡아 배출부채로 집계하고 있는데, SK이노베이션의 배출부채는 지난 2018년 28억원에서 지난해 80억원으로 늘었다.
유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우리나라 제조업은 탄소 다배출 업종 비중이 높고 발전믹스 또한 석탄 의존도가 높다"며 "산업구조와 에너지믹스를 고려하면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중립 정책으로 국제 질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이에 동행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은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산업구조 변경과 에너지 전환에 따라 비용부담이 늘어나고 가격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국거래소 본사 내 탄소배출권 거래시장 전경. ⓒ 연합뉴스
◆ LG·SK, 갈 길 먼 친환경…"두 마리 토끼 다 놓칠라"
여기에 탄소중립 정책을 위한 체질 변화까지 신경 써야 하니 쉽지만은 않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모두 근본이 화학 기업이다 보니 정부 정책에 맞추려면 현 사업 비중을 전면 뒤집어엎어야 하는 실정이다.
올해 3분기 기준 LG화학 매출에서 석유화학 부문 비중은 47%로 약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외 차세대 먹거리인 전지(배터리) 사업이 36.4%, 첨단소재 11.5%, 생명과학 2% 순이다.
같은 기간 SK이노베이션의 석유화학 부문 매출은 87%에 달한다. 전지 부문은 4.15%에 그쳤다.
화석 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이에 따른 신규 시설이나 연구개발 등이 진행되려면 대규모 투자가 우선적이다. 기업 입장에선 투자 비용으로 인한 부담 가중과 함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친환경 흐름에 따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정부 정책에 맞추려면 더 속도를 내야 하는 실정이다.
전 세계 친환경 기업 여부를 판단하는 CDP 지표를 보면, LG화학은 올해 기후변화 대응 부문에서 B등급 기업으로 분류됐다. 지난 2016년 최고 등급인 A를 기록한 이후 매년 등급 하락을 보인 결과다.
올해 처음 CDP 성적표를 받은 SK이노베이션은 B-등급으로 나타났다.
K-배터리 위상을 높이고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이들이 친환경 정책으로 인한 재무 부담을 이겨내고 지속 성장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우선 양사는 친환경 정책이 본격 시작하는 내년 사업 계획에 있어 ESG 전략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전략이다.
LG화학은 탄소 배출 절감을 중장기 계획으로 삼고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재생에너지를 사업장에 적용하는 등 탄소 배출 이슈에 대응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LG화학 관계자는 "현재 사업 확대나 케파(생산 능력) 증설 등으로 탄소배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라면서도 "LG화학은 지난 7월 국내최초로 탄소중립 성장 계획을 발표했고 이를 중장기 전략으로 삼으며 탄소배출 규제에 따른 이슈 등을 대응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ESG를 과제로 꼽고 이를 중심으로 한 조직개편도 최근 단행하는 등 친환경 전환을 위한 실행력을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ESG 경영 일환으로 오는 203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그린밸런스 전략을 세웠으며 사업별로 탄소 절감을 위한 과제 추진 및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필요시 강도 높은 혁신 사업도 추진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