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얼마전 타계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0년 전 오늘 '새로운 삼성'을 천명하며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을 신설합니다. 미전실은 지금은 사라진 사내방송과 함께 '하나의 삼성'을 상징하는 그룹 의사결정 기구였습니다.
오늘은 미전실과 같이 운영됐던 삼성그룹의 의사결정기구를 다뤄보려 합니다.
삼성그룹의 의사결정기구는 유래가 깊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부터)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9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병철 회장의 삼성물산 비서실이 외환위기시절 구조조정본부로 이름을 바꾸고 운영되다 X파일 사건때 전략기획실로 격상했지만 다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해체된 이력이 있을 정도로 삼성그룹의 성장과 함께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0년 전 사건은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자 컨트럴타워도 미전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가동시킨 것이죠.
컨트럴타워의 신설은 '이 회장(총수)-삼성그룹(컨트럴타워)-계열사' 구조의 의사결정 체계가 다시 구축됐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삼성의 의사결정 체계는 계열사별 독립경영의 여지를 최소화해 그룹의 이익을 최대화 하는 방식의 경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성장에 이 회장의 노화에 따라 경영승계의 임무를 부여받은 미전실은 2010년대 중반 무리한 승계작업을 추진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만나 창립 79년만에 처음으로 총수가 구속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여론은 미전실의 책임논란 보다는 경영승계의 수혜 대상이 주목하다보니 사건에 대한 법의 최종 심판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데요. 삼성입장에서는 아직까지 골치거리로 자리잡고 있는 셈입니다.
마침 최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전문심리의원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파해친 홍순탁 회계사를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 같은 특검의 추천을 수용했습니다. 미전실을 해체하고 준법감시위원회 설치해 준법경영을 추구한다는 삼성의 진심을 해당 사건을 들춰낸 회계전문가를 통해 검증하겠다는 주장이지요.
그래서 오늘 기사는 10년 전 오늘로 돌아가 삼성 지배체제의 전환을 조명하려 합니다. "그룹 조직을 다시 만들라"던 이건희 회장의 주문은 미전실 '인사'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초대 미전실의 수장은 김순택 삼성전자 부회장(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이 맡았습니다.
당시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이날(2010년 11월19일) 긴급브리핑을 열고 "이건희 회장께서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을 삼성물산 건설부문 고문으로, 김인주 삼성전자 상담역을 삼성카드 고문으로 임명했다"며 "조만간 과거 전략기획실에 오래된 일부 임원들에 대한 인사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부회장은 삼성SDI 재직 당시 삼성의 신수종 사업인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를 사업화에 성공시킨 업적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그 결과 삼성은 전세계 AMOLED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할 수 있게 됐지요. 이를 위해 삼성SDI의 개발부서를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로 이전한 것도 김 부회장의 역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상 삼성디스플레이를 낳은 인물이지요.
또 삼성전자의 신사업추진단장으로 역임하며 2010년대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는 역할도 감당했습니다. 당시 김 부회장이 보여준 실력은 오랜 비서실 경험 더불어 장기기획에 능한 미전실에 적합한 인재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2년만에 미전실장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은 비상경영을 선포합니다. 2012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한 경기침체의 누적이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던 시기입니다. 수출의 둔화와 동시에 내수시장도 얼어붙어 체감 경기는 2008년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지요. 김 부회장의 후임으로는 최지성 부회장이 미전실장에 취임했습니다.
최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으로 이어지는 미전실내 최고 의사결정라인은 이전까지 없던 영향력을 갖춘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최 부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의 가정교사로 불릴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으며, 사실상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설계하고 실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배정받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해 이 부회장이 받은 재판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주요 혐의에 대해 '최 실장이 결정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당시 최 부회장의 영향력이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이 부회장은 미전실에 대해서도 "이건희 회장님의 보좌 조직이지 저의 보좌 조직은 아닙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이후 최 부회장 또한 "제가 이건희 회장을 대리해 삼성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이재용에게는 정보 공유를 할 뿐 보고와 지시를 받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상 국회와 법원이 지적한 삼성의 문제와 관련해 최종 결정을 내린 주체가 자신이라는 표현입니다.
최 부회장과 장 사장 등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관련자들에게 법원은 실형을 선고했고 삼성은 약속대로 미래전략실을 해체했습니다. 어떠한 사과와 개선안에 대한 이행의지 보다 미전실의 해체는 삼성그룹 내 이 회장의 영향력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결정으로 받아들여졌지요.
하지만 이 부회장이 해체를 선언한 '미전실'과 당시 청문회 의원들이 해체를 요구한 '미전실'은 같은 듯 다르게 반영됐습니다. 이 부회장은 미전실을 해체했지만 '컨트럴타워'까지 해체한 것이 아니며, 실제 새로운'컨트럴타워'의 흔적은 최근까지도 발견돼 왔기 때문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 복귀 당시와 같은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2008년 삼성비자금 사건 당시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최광해 부사장 등 전략기획실 핵심 인물은 경영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학수 부회장은 '각사의 독자적인 경영역량이 확보되었고, 사회적으로도 그룹 경영체제에 대해 일부 이견이 있는 점을 감안하여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전략기획실이 해체된 이듬해 삼성은 사장단협의회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을 실험했습니다.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인 가운데 2009년 삼성의 실적은 뛰어났습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2008년 4분기에 연결기준 74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지만 2009년 1분기 47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삼성전자는 매출 154조 6300억원, 영업이익 17조3000억원, 순이익 16조1500억원의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호실적에도 '위기'라며 경영에 복귀하고 미전실을 신설했던 것이지요. 돌이켜 보면 승계작업의 본격화를 목적으로 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총수-컨트럴타워-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했던 부분을 따져보면 그 목적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다시 최근의 사건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해체됐던 미전실의 흔적은 2019년 5월7일, 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장 바닥에서 수십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회사 공용 서버와 수십대의 노트북이 발견되며 확인됐습니다. 삼성바이오에 대한 회계 부정 수사가 진행되자 직원들이 서버와 노트북을 은닉한 것이지요.
검찰은 증거 은닉을 주도한 곳을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이하 TF)'로 지목했습니다. 이곳은 미전실 출신의 정현호 사장이 이끄는 신설 조직입니다. 은닉의 목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함이었지요. 1심 재판부는 '증거인멸교사'혐의로 기소된 TF소속 부사장 2명에게 각각 징역 1년6개월을, 상무 2명에게는 각각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서도 명칭이 무엇이든 '컨트럴타워'의 존재 유무는 양형을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될 전망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감시위의 실효성을 평가하는 전문심리위원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찾아낸 홍순탁 회계사가 선정된 사실 때문입니다.
홍 회계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을 금감원 특별감리 이후 감리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도록 이끌어낸 인물입니다.
따라서 특검의 의도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맡아온 미전실이 필연적으로 그룹 전반을 장악하고 승계과정 전반을 주도해 왔기에 '컨트럴타워' 중심의 삼성 지배체제의 전환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또한 "국민의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면 (미전실 폐지에 대한) 약속을 지키겠다"던 이 부회장의 청문회 약속도 이행하라는 주문으로도 읽혀집니다. 전문심리위원회의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