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중은행 영업점 대출 창구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 설소영 기자
[프라임경제] 4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안. 점심시간이 되자 은행에는 입구부터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인지 마스크를 착용한 백발노인부터 △신분증과 서류 등을 챙겨온 주부 △자투리 시간 잠시 틈을 낸 직장인 등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최근 은행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방문객이 현저히 줄자 일부 영업점을 폐쇄, 비대면 서비스를 강화하는 추세다. 다만 노년층 방문이 이어지고 있어 여전히 직원들은 번호를 외치기 바빴다.
이처럼 눈 코 뜰세 없이 바쁜 상황이 지속되면서 직원들은 '신성불가침'이라는 점심시간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한 은행원은 "우리에겐 점심시간이지만, 고객들에게는 소중한 자투리 시간"이라며 "그러다보니 상사나 다른 직원들까지 눈치 보느라 급하게 점심 먹고 복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은행권에서는 '점심시간 셧다운제'가 대두되고 있어 관련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 금융노조가 '은행 사측 연합' 금융사용자협의회와 임단협에서 '점심시간 셧다운제'를 요청한 것이다.
해당 제도는 직원 점심시간 보장을 위해 오후 12시~1시 또는 오후 1시~2시까지 고객을 받지 않고 은행 영업점 문을 닫는 것을 말한다.
다만 현장에서는 섣부른 제도 도입은 오히려 고객 불만을 높일 뿐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장인들 입장에선 평일 점심시간은 은행 이용 가능한 유일한 시간.
한 은행원은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라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은행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점심시간 은행 방문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금융노조 측은 점심시간 셧다운제와 관련해 은행 직원 인권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영업점 직원들은 2~3교대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지만, 점심시간 고객이 몰리는 업무 특성상 대다수가 20~30분 만에 식사를 해결하고 복귀하고 있다. 식사하지 못한 다른 직원들을 위해 1시간 전부를 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은행원들 사이에서조차 '점심시간 셧다운제'가 고객 불만을 야기할 수 있어 제도 도입을 꺼려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은행원은 "최근 비대면 서비스로 방문 수요가 예전보단 줄긴 했지만, 여전히 대출 상담 등 대다수 은행 업무는 점심시간이 가장 많이 몰린다"며 "급한 업무로 영업점을 방문한 고객을 '직원 편의'를 이유로 은행이 외면하는 건 사실상 고객을 무시하겠다는 처사로 비칠 수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노조는 이보다 앞선 2018년 점심시간 셧다운제와 더불어 PC오프제를 사측에 요구한 바 있다.
사측은 소비자 불편이 커질 것을 우려해 '셧다운제'는 거부하는 대신 '점심시간 PC오프제'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PC오프제는 현재 KB국민은행 및 IBK기업은행 등 일부에서 적용되고 있지만, 문제는 이마저도 무용지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점심시간 1시간 보장을 위한 유연한 방안이 필요하다"며 "점심도 먹지 않고 은행을 방문하는 고객들이 많다는 점에 유의해, 노사간 합의점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중은행들은 현재 '직원 복지'와 '고객 편의'라는 갈림길에 섰다. 직원복지와 고객편의, 이들은 점심시간 셧다운제 도입 이전에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인지 보다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