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피격사건에서 순국한 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가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가가 천안함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묻고 있는 모습. 이 모습은 우리사회가 정치적인 입장을 달리하는 진영 간 얼마나 뿌리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은 4월29일 천안함에 탑승했던 전사자들의 영결식이 이뤄진 날입니다. 천안함은 1987년 건조돼 1차 연평해전에 참전하는 등 전공을 세운 전함이었지만 2010년 3월26일 북한잠수함의 어뢰공격에 의해 침몰되었습니다.
당시 해당 사건을 전투에 의한 패배로 봐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살아 돌아온 생존장병들을 패잔병 취급하는 일까지 일어나며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경위야 어찌됐건 국토를 지키다 떠난 순국선열들의 감사함이 당연히 뒤따라야 하는 일이었지만 정치싸움꾼들에게는 다른 부분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당시부터 "어뢰공격이다", "암초에 좌초된 것이다" 등등 설왕설래가 오가면서 심각한 국내갈등이 불거진 것입니다. 그리고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우리는 심각한 국내갈등을 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3월27일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일어난 일은 이러한 정치 갈등이 불러온 참극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천안함 전사자인 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가 이날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가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맞는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공식입장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을 명백한 북한의 도발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실을 왜 유가족이 대통령에게 관련 기념행사에서 입장을 물어봤는지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이유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진보여당의 정부가 천안함의 침몰 이유를 기존 결론인 북한의 소행으로 바라보는 것과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반대진영에서는 유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의 뒤편에 서있던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유가족을 째려봤다는 검증되지 않은 '정치적인 이야기'로 SNS를 도배했습니다.
진보정부를 믿지 못하는 보수진영과 보수여당 시절 발생한 사건에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는 진보진영의 갈등 속에서 정작 기억되고 감사받아야할 순국선열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시작에는 천안함의 피격에 대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는 '음모론'이 있었습니다.
어뢰 추진체가 발견됐지만 북한의 부인과 이를 믿는 일각의 사람들은 민관합동조사단의 결과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위 진보진영인사들과 진보매체들이 이러한 '의구심'을 확대 재생산 했습니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고 싶지 않고, 향후 북한의 소행이 아니면 어떻게 감당하겠냐라는 발언을 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의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이보다 심하게는 천안함 사건과 이후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모두 보수여당의 조작에 의해 발생한 사고이며, 인신공양을 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습니다.
민군합동조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신상처 씨는 이러한 주장을 펼치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북한의 소행이건 암초에 의한 좌초이건 경계근무 간 불미스러운 일로 국가의 아들들을 잃어버린 것은 가슴 아픈 일이고 특히 유가족들에게는 평생을 씻지 못할 상처일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위로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로 돌팔매질을 해대는 배경에 '정치'가 있는 것입니다.
국민들을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국민들이 서로를 적대시하고 불신하도록 만드는 현실은 씁쓸함을 남깁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서로 다른 정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불신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우리 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상처를 입은 사건이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 일을 '폭동'으로 바라보고 헬기사격과 같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거짓말'로 치부하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심하게는 북한에서 내려온 공작원들의 활동이며 시민들은 이에 동조한 '빨갱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게 합니다.
사고와 사건을 당한 당사자들의 발언과 기억은 서로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충격적인 외부작용 속에서 흔들림 없는 판단력과 이성으로 정확한 기억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건을 둘러싼 증거들을 수집해 증언의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 기억된 부분을 바로잡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억하는 일 자체가 없는 일이었다거나 거짓말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접근입니다. 특히 그러한 판단의 기저가 정확한 근거에 의한 과학적 접근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라면 더욱 문제가 있습니다.
재판이 진행 중인 두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과 상대에 대한 불신에서 진보와 보수진영 중 누가 더 '정직'하고 '진실'된가를 따지고 누가 더 정의로운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이미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죽음 앞에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무의미 합니다.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우주에서 우리가 사는 은하와 그 속에 태양계, 그리고 지구는 하나의 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구에서 한국이라는 공간은 아주 작은 한 귀퉁이일 뿐입니다.
이 우주 상 하나의 점에 불과한 지구의 한 귀퉁이에서 같이 살아가는 이웃을 형체도 없고 진실도 없는 '이데올리기'에 의해 적으로 바라보고 서로 피 흘리도록 만드는 일은 '진보'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은 일입니다. 그저 적대감에 함몰되고 상실된 채 찌그러진 '인간성'을 보여줄 뿐입니다.
기억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그리운 이를 추억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지만 정치에 의해 심겨진 기억과 서로 상잔한 기억은 우리를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 잡는 허상으로 작용합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동포라는 사실과 젊은 날 나라의 국토를 지키다가, 또 나라의 민주적 가치를 지키다가 사라져간 동료국민들을 기억해야할 시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을 섬기는 정치인들부터 바른 자세와 인식을 가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느 한 장군의 이임사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어떤 자세로 국민을 섬겨야 하는지 느끼게 합니다.
이 장군은 이임사에서 자신의 신조를 "공은 부하에게, 명예는 상관에게, 책임은 나에게"라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지금 정치인들은 자리다툼에만 혈안이 돼 자신의 공을 앞세우고 명예는 버려버리거나 자신의 진영과 정당에게만, 책임은 선거에만 외치는 공염불로 여기고 있습니다. 오히려 목숨을 던져 앞서 희생된 자들의 명예를 지켜주려 한 것은 민간의 쌍끌이 어선들과 故 한주호 준위를 비롯한 일선의 장병들이었습니다.
공은 일선에서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명예는 국민에게, 책임은 정치인 스스로 질 수 있는 자세가 국론분열을 끝내는 핵심 '키(key)'일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진 순국선열과 민주열사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