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삼성그룹의 계열사 고위직 인사가 이제 마무리되면서, 현재의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느끼는 불안감과 대처 방향의 윤곽이 무엇인지 음미해 볼 필요가 부각되고 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표현도 있지만, 삼성의 인사는 암중모색 끝에 가장 적당한 방법을 찾자는 뜻을 내비친 '장고 끝 선방'으로 해석된다.
앞서 삼성전자(005930)에서는 분야별 전문성 있는 50대 CEO들이 중용이 우선 눈길을 끌었지만 속살 즉 인사 기조의 방점은 안정이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새로 스마트폰 사업부문의 수장이 된 1968년생(이재용 부회장과 동갑) 노태문 무선사업부장 등에게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지만, 대표이사 3인 체제의 유지가 갖는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 김기남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부회장)과 김현석 CE(소비자가전)부문장(사장)·고동진 IM(IT·모바일)부문장(사장)으로 구성된 3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점은 무리하게 변화에 가속도를 내는 것까지는 필요치 않고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추진할 때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 역시 자체적으로 고위층을 꾸리는 상황이 됐다. 금융 계열사 CEO는 과거에는 삼성전자와 미래전략실 출신이 이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2017년 3월 미전실이 간판을 내린 상황이 이제 이런 관행의 종결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전영묵 삼성생명(032830) 사장·김대환 삼성카드 대표(부사장)·심종극 삼성자산운용 대표(부사장)은 특히 1986년 삼성생명 입사 동기들이라 눈길을 끈다.
이렇게 CEO에 오르기 전까지 주요 경력을 삼성 금융 계열사에서 쌓은 이들이 승승장구하는 패턴은 금융 계열사 발전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삼성물산(028260)과 삼성중공업(010140), 삼성엔지니어링(028050) 등 삼성의 중공업 라인들은 현 CEO들을 전원 유임시키기로 가닥을 잡아, 이 부회장 등 최고위층이 구성원들에게 신뢰감을 전달하려 한 게 아니냐는 풀이가 제기된다. 지난해 일부 사업의 실적이 나빠졌다고도 볼 수 있으나,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다독이는 쪽으로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즉,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앞으로도 심기일전 뛰라는 주문과 동시에 칭찬을 얹은 셈이다.
전체적으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상황에서 암중모색하는 삼성과 이 부회장의 고민이 전투 중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구도로 각 계열사마다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각종 재판에 시달리고 있고, 미국 등 주요 시장의 불안정한 흐름 등 대외 요소도 삼성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은 삼성 전반에서 고른 인재 성장과 발탁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풀'이 형성돼 있고 이를 실제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브라질 현지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고위 인사들. 이 부회장은 미래를 향한 혁신을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 삼성전자
2017년 4월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 포기를 선언하는 등, 삼성그룹은 전체적인 지배구조의 틀을 오너 일가 중심으로 짜는 게 사실상 어렵다는 전제에서 새 경영 모델을 놓고 고심해 왔다. 당시 삼성전자의 지주 전환 포기는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여러 문제들(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계열회사의 보유 지분 정리 등이 필요)이 결코 녹록치 않았음을 방증한다.
결국 이병철 창업회장과 이건희 회장과 다른 고민을 이 부회장은 '뉴노멀'로 늘상 안고 가야 한다는 것. 최근 그룹에 준법감시위원회가 이 부회장의 경영에 '견제를 통한 건강한 시스템의 유지' 기능을 제공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다.
현직 판사가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에 공개 편지를 띄우는 형식으로 준법감시위원회의 기능과 미래에 회의적 시각을 밝힌 것을 음미해 볼만하다. 설민수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17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올린 '정준영 부장판사님께'라는 글에서 "준법감시위가 내부 정보에 관해 어느 정도의 접근성을 가질지, 회사에 대한 비밀 유지 등에 관해 얼마나 자유로울지 등에 관해 정해진 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면면이라도 실제 효과는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모가 크고 잘나가는 회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외이사가 이를 반대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례는 미국에도 얼마든지 있다"면서 특히 한국의 오너 일가 지배 상황에서는 견제와 감시가 더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부회장도 현재의 상황과 그룹 내외의 여러 시선을 모르지 않는다. 선대의 여러 인물들과 달리 제왕적 힘으로 선단을 좌우하는 선장이 아니라, 합리적인 방법과 몸을 낮춘 자세로 태풍 앞에서 배들을 끌고 가야 하는 더 어려운 처지라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끝없이 우울과 무력감에 침잠하지 않는 점이 안정과 조직 다독이기라는 계열사들의 CEO 인사 메시지로 나타났다.
현재 발목을 잡고 있는 여러 법률적 난제들을 헤쳐나가는 동시에 미래를 그리는 것은 결국 현재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이번에 드러난 안정 위주 구도는 그래서 뛰어오르기 위해 움츠린 개구리에 비견할 만하다. 힘들지만 밑천도 있고 의지도 있다는 점은 삼성이기에 가능한 대목이고 이 부회장은 이런 점을 고위층 인사안 짜기라는 숙제를 통해 과시했다.
안정을 추구하지만, '혁신과 도전'을 강조하는 모습을 잃지 않기에 퇴행과 현실안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이번 명절을 활용해 미래 시장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무대인 중남미를 찾은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 부회장은 브라질 현지 공장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에서 나온다"며 "과감하게 도전하는 개척자 정신으로 100년 삼성의 역사를 함께 써 나가자"고 말했다.
이런 각오를 그룹 계열사의 사장단 등 주요 인사들은 실제로 십분 뒷받침할 수 있을까? 훗날 2020년 초의 인사 이슈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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