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부산광역시 기장군의회가 초유의 견제권 행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기장군은 2019년도 제2회 추경예산안을 제출했는데, 기장군의회가 이를 미상정하기로 결정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집행부와 의회 간의 갈등은 지방자치제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요소이고, 어느 지역에서나 종종 반복되지만 이번에는 골이 유례없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장군의 제2회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제출에 기장군의회는 31일 미상정 결정으로 화답했다. 집행부가 추경예산안을 제출하면 도마에 올려 난상토론 끝에 불필요한 경우 삭감해 버리는게 통례다. 이 과정에서 의회를 구성하는 여러 당의 힘겨루기와 타협, 혹은 논리 대결과 함께 집행부(선거로 뽑힌 지방자치단체장과 이를 보좌하는 직업공무원 시스템 전반)와의 이해와 조율도 곁들여진다.
하지만 기장군의회의 선택은 달랐다. 6월 제239회 기장군의회 제1차 정례회에 추경안을 '아예 미상정'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절차가 일단 올스톱 된 것인데 다음에 언제 처리할지 예측도 난망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기장군 일각에서는 올스톱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올킬'이 아니겠냐는 추경 위기감을 토로한다. 추진 중인 국제 행사 및 주요 현안 사업들이 많은데, 이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는 것이다.
기장군으로서는 현재 추경 등을 통해 처리하고 싶은 일이 적지 않다. △정관 빛물꿈행복타운 조성 △8월에 개최될 제29회 세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 추진 △폭염대비 쉼터 설치 △미세먼지 저감사업 △수산 u-IT 융합 모델화 공모 사업 군비 부담분 처리 등 돈 쓸 일이 많아 추경을 요구한 것.
민생 현안 및 군민 복리 증진과 관련한 중요한 예산으로 편성해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자 했다는 사정 전반에 대해 기장군의회 측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부 불발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한번 정도 보류나 일정 미루기로 '물을 먹이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추경 전체를 불발시키려는게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왜 그럴까?
이는 오규석 기장군수와 기장군의회 일각의 불편한 기류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오 군수는 무소속 정치인으로, 현재 군수직을 3번 연달아 하고 있는 상황. 따라서 다음 정치 수순으로 총선 출마를 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기장당협을 이끄는 최택용 위원장이 잠재적 적수라는 풀이가 있다. 서로 상대방을 견제한다는 분석인 셈.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출신 군의원이 많은 기장군의회가 오 군수 견제 차원에서 깐깐하게 추경 문제를 다룬다는 풀이가 부각됐었다.
이런 추정(의혹)의 사정은 이렇다. 앞서 4월말의 2019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불거졌다. 여기서는 미세먼지 저감 이슈(나무심기 예산)를 삭감하기도 했으나, 주요 겨냥 포인트는 정관 아쿠아드림파크 건축 공사비(예산) 50억원을 부결한 것이었다는 소리가 많았다.
오 군수의 역점 사업(공약 사업)의 초두에 해당하는 길목을 틀어막은 것으로 기선제압 성격이 있다. 더욱이 아쿠아드림파크 힘을 뺀 것은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이후 여러 맞물린 처리안이 모두 불발될 위험이 높아지는 것. 즉, 정관빛물꿈행복타운의 '전체 컷' 처리를 기장군의회가 시도한 것이라는 얘기도 당시 나왔다.
다만, 이런 의혹성 기사가 여럿 제기된 상황(당론 운운하며 최 위원장이 군의원들을 압박했다는 설)에 대해 최 위원장이나 민주당 출신 군의원들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언론에 밝힌 바 있다. 특히, 정관빛물꿈행복타운은 국비와 시비 매칭 하나도 없이 천문학적 금액을 모두 군비로 추진하는게 무리이므로 견제했을 따름이라는게 일부 군의원들의 주장 골자였다.
하지만 오 군수는 우회로를 뚫었다. 국비 확보를 위해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공모를 신청하는 아이디어를 띄운 것. 이를 위해 부산시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오 군수가 부군수 임명권 해석 문제로 오거돈 부산시장과 불편한 사이임을 감안하면 이같은 행보는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 다양한 안건을 아우르는 제2차 추경안을 불발시키는 답신이 기장군의회에서 나온 것. 아예 돈줄을 막는 강공책으로 반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도 뒤따른다.
마치 1984년 서산방조제 공사 난항 당시의 '정주영 공법' 같은 엄청난 방법을 기장군의회가 택한 것.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물을 막는게 쉽지 않아 방조제 공사가 계속 어려움을 겪자, 거대한 폐유조선을 끌어다 구간 전부를 막아버리는 기발한 대책을 내놨다. 배를 통째로 투입하고 그 위로 자재를 부어버려 구멍을 모두 없애버린 것. 당시 미국 언론도 이 충격적인 시도에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국비와 시비 매칭 하나도 없이 천문학적 금액을 군비로만 추진하면 되냐며 퉁박을 놓았음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그 다음엔 1차 추경 심의 국면에서 퇴짜를 놓자 국비를 끌어오겠다며 우회로를 뚫는 오 군수의 대결. 보통 같으면 오 군수의 이런 집념에 손을 들 법도 한데, 기장군의회는 아예 구멍을 모두 틀어막겠다고 초강수로 대응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조선 끌어다 가라앉혀 물길 모두 막듯 일처리를 하자 부작용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주민들의 반발 여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기장군의회에서는 일단 상정은 하는 쪽으로 10일 늦게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약간의 양보는 한 것이지만 면피 차원에서 내놓은 조치이고, 사실상의 추경 올킬 구도 전체가 여전하다는 점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는 쓴소리도 피하기 어렵다. 지역의 발전기회 전부를 날릴 수 있는 자존심 싸움에 너무 매몰된 게 아니냐는 것이 가장 문제다.
무리한 토목사업 견제 명분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추경 올스톱이니 사실상의 추경 올킬이니 하는 소리가 나온 것도 한국 지방자치 역사 전반에 기장군의회가 오점을 남긴 것이라는 쓴소리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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