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1974년 대한항공(003490)에 몸담은 이래 반세기 동안 '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새벽(한국 시각)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조 회장은 서울에서 경복고에서 수학하던 중 미국으로 유학, 메사추세츠 주 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인하대 공대에서 학사를,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이후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조 회장은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성을 높이며 사실상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는 평이다. 국내·외를 통틀어 조 회장 이상의 경력을 지닌 항공·운송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어서다.

조양호 회장은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제고하는 등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 대한항공
실제로 조 회장은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조 회장은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 국적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세계 항공업계 무한경쟁의 서막을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 주도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위기로 움츠릴 때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또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고, 1998년 외환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하는 등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갔다.

조양호 회장은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 주도하는 등 세계 항공업계 무한경쟁에서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를 이겨내고 대한항공이 창립 50주년을 맞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 ⓒ 대한항공
특히 그는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을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봤다. 그리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으며,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아울러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LCC) 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LCC 설립이 필요하다고 확신했고, 2008년 7월 진에어(Jin Air)를 창립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이어왔다.
'항공업계의 UN'이라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여왔다. 조 회장은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맡았다. 이후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도 맡아왔다.

조양호 회장은 환승 경쟁력을 위해 델타항공과의 조인트 벤처를 추진했고, 이는 대한민국 항공시장의 파이를 한층 더 키우는 계기가 됐다. ⓒ 대한항공
한진그룹 관계자는 "이 같은 조 회장의 IATA에서의 위상은 전 세계 항공산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2019년 IATA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하는 기폭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조 회장은 2010년대 미국 항공사들과 일본 항공사들의 잇따른 조인트 벤처로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중요한 수익창출 기반인 환승 경쟁력이 떨어지자 델타항공과의 조인트 벤처 추진이라는 해법도 제시했다. 이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장과 함께 시너지효과를 냈고, 대한민국 환승경쟁력은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데도 힘을 쏟았다.
조 회장은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 간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조양호 회장은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을 수훈했다. ⓒ 대한항공
몽골로부터는 학생 장학제도 운영 등을 통해 한·몽골 관계를 진정한 협력 동반자로 확대 발전시킨 공을 인정받아 2005년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서비스를 시작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 회장이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서비스를 성사시킨 것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며 "한국도 세계적인 문화사업에 후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국가적인 위상도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라고 부연했다.
물론, 조 회장이 만사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들의 잇따른 오판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조양호 회장은 항공사의 생명은 서비스이고, 최상의 서비스야말로 최고의 항공사를 평가 받는 길이라고 보고 고객중심 경영에 중점을 뒀다. ⓒ 대한항공
이에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고, 2014년에는 한진해운 회장직에 올랐다. 또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도 출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방위 노력은 채권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으며, 결국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됐다.
특히 최근 조 회장은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국민연금이 절차 논란 속에서 연임을 반대했고,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연임 반대를 외쳤다. 그 중에서도 오너 일가의 각종 비윤리적 행위로 논란을 빚는 등 여론 악화가 결정적으로 조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정기 주주총회에 앞서 조 회장은 핵심 계열사 업무에 집중하고 한진그룹 재도약을 선도하기 위해 겸직 계열사를 9개사에서 3개사로 대폭 줄였다"며 "하지만 주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1999년 대한항공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 회장은 시스템 경영론으로도 유명하다. 최고 경영자는 시스템을 잘 만들고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조 회장은 절대 안전을 지상 목표로 하는 수송업에 있어 필수적 요소이고 고객과의 접점이 이뤄지는 곳이 바로 현장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항공사의 생명은 서비스이고, 최상의 서비스야말로 최고의 항공사를 평가 받는 길이라고 보고 고객중심 경영에 중점을 뒀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 회장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고객, 그리고 고객들을 위한 안전과 서비스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조 회장은 평생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며 "하지만 조 회장이 만들어 놓은 대한항공의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 쉬며 대한항공과 함께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