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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주택금융공사 사장, 지역구서 갓끈 고친 사연

정계 출신 인물, 과거 출마지역 편중된 사회공헌사업 선심으로 잡음

서경수 기자 | sks@newsprime.co.kr | 2018.12.17 17:27:39

[프라임경제]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은 340여개, 전국 각지에 고루 분포돼 자리하고 있다. 공공기관장 임명은 대통령 권한으로, 주로 해당기관 관련 전문가들로 채우는 게 일반적이다. 기관장들의 직업은 교수와 고시 출신이 가장 많다. 하지만 정당대변인과 전 국회의원 등 정계인사들도 상당수 포진해 있다. 정권 창출에 큰 공을 세운 인물들이 자리를 꿰차기도 한다는 뜻이다. 다만, 이 경우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코드·낙하산 인사라는 오명과 함께 비난이 뒤따른다.

간단히 말하면, 정치인 출신을 정부공기업기관장으로 발탁하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가 얼마나 낙하산 논란 등에서 자유로울지가 관건이다. 결국 임명권자에게 누가 되지 않게끔 일할 수 있냐는 점만 보장된다면 된다는 뜻이다. 다만 거기에는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부산지역 7개(△기술보증기금 △부산항만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남부발전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가나다順) 공공기관은 지난 11월 28일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사회적 가치 혁신사업 기본계획 선포식을 개최했다. ⓒ 기보

임명 전에도 잘 해야 하지만, 임명된 이후에도 정치인 출신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잡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관의 본사소재지가 지난날 그 정치인이 출마 지역구로 짝사랑했던 곳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최근 그런 임명 이후의 문제를 심각히 고민해 보는 사례를 하나 접했다.

한 공공기관의 경우 사회공헌사업 명목으로 2017년 총 66차례, 올해는 11월 말까지 54건 중에 본사 소재지로 매년 각각 10건씩 지원했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연고지 쏠림현상으로 일단 보인다. 하지만 그 기관장이 정치권 출신일 경우 상황이 한층 복잡해진다. 사안에 따라선 불필요한 오해로까지 번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상당수에 공기업들은 사회공헌사업부서를 별도로 두고 있지만 사업을 진행할지 여부와 예산 집행의 폭은 당연히 그 기업의 최고 책임자 손에 달렸다.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이 역시 기관장이다. 바꾸어 말하면, 정치인 출신이 나랏돈으로 생색내기 좋은 자리에 앉아서 지역주민들과 자연스런 스킨십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지도는 덤으로 따라붙는다.

과거 '물 먹었던' 지역구에 연고를 둔 공공기관에 부임해서, 사회공헌사업을 이유로 인지도 높이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면? 장차 다시 출마를 도모하려는 인사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조건이라고 우려한다면 지나친 억측일 뿐인가? 문제의 이 공공기관은 주택금융공사다.

◆ '남구 벽화마을' 배포된 극세사 이불 주민들 환호... 뒷맛 찝찝 

부산시 남구에 위치한 벽화마을. 산비탈에 구불구불 종으로 횡으로 난 비좁은 골목길은 사람하나 겨우 지날까 싶을 만큼 주거환경이 열악한 동네로 손꼽힌다. 

지난 13일 이곳을 주금공 신입 연수생 수십명이 찾았다. 그들의 직장인 부산 문현금융단지 BIFC빌딩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펼친 것. 이날 이들이 준비한 기부물품은 겨울나기에 제격인 극세사로 짠 이불담요. 동장군도 두렵지 않을 만큼 따뜻해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불이 든 가방 속에는 쑤시고 저리린데 용이하게 사용될 파스가 한통씩 담겨져 있다. 선물을 받아든 주민들도 매우 흡족해한다. 어르신들이 많은 주민들을 위한 공사 측에 센스와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정환 사장이 부산 남구 벽화마을 주민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프라임경제

봉사단은 4~5개 조를 나눠 인솔자로 나선 주민대표들을 따라 집집마다 직접 방문해 양손에 든 가방을 전달했다. 주어진 할당량을 끝내고 삼삼오오 집결지로 모여든 이들의 얼굴은 봉사의 기쁨을 만끽한 듯 밝게 빛났고, 뿌듯함이 만면 가득 번져있었다.

같은 시간 또 다른 한무리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얼마 멀지않은 곳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손에는 여전히 가방을 쥐고 선채 한곳을 응시하고 있다. 시선이 머문 곳에는 사장님께서 수행원이 건 낸 이불보따리를 받아 주민들께 전하며 손을 맞잡고 덕담을 나누고 있었다. 또 다른 수행원은 훈훈해 보이는 이 장면을 놓칠세라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눈짓하나 몸짓하나 빠뜨리지 않겠다는 기세다. 사장님께서는 그렇게 몇 집을 더 다니며, 평일 오전 일과시간에 진행된 30분 남짓에 봉사활동을 마쳤다.

'좋은 일 맞는데' 이정환 주택금융공사 사장, 남구 몰아주기 논란

올 초 부임한 이 사장은 마을주민들과 초면이 아니다. 지난 19대, 20대 총선에서 바로 이 지역에 당시 야당후보로 출마해 연거푸 고배를 마신전력이 있다.

주민들은 본격적인 추위를 앞두고 금의환향한 그를 반겼다. 그러면서 두 번의 총선에서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였던 지난 기억을 새삼 떠올렸다.

그는 차기 총선에서 이곳에 출마할 것으로 점쳐지는 여당 유력후보로 일치감치 하마평에 오른 인물.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라 좋은 먹잇감이 된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공헌활동을 두고 일각에서는 ‘지역구로 사업을 몰아주기를 하는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하지만 벽화마을은 내년 6월 철거를 앞두고 있어 차기총선 즈음엔 동네 자체가 통째 사라질 예정이어서, 이 같은 의심은 기우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취임 이후 주금공이 남구에서 진행한 공헌사업들을 살펴보면 △'황령산 등산로 정비' 1억 △주택용 소방시설 소화기와 경보기 300개 △부산남부교육지원청 소프트웨어(SW) 교육협력 협약 △남구노인복지관 어르신 중복 맞이 '삼계탕 데이' △남구장애인복지관 '설맞이 사랑의 떡 나눔' 등 모두 11건에 달한다.

부산 남구 벽화마을 주민에게 이불이 든 가방을 전달하는 이정환 사장. ⓒ 프라임경제

소재지인 남구를 제외한 부산시 나머지 15개 구·군 평균 공헌활동은 2~3차례에 불과하다. 이 중 단일 명목으로 1억원이 넘는 사업비를 기탁한 곳은 해운대구(1억5000만원)와 남구 단 두 곳이었다. 

사람인지라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이 정도면 해당 공기업 연고지 챙기기의 도를 넘은 게 아닐까? 아울러 공기업 기관장에게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수단으로 사회공헌이 잘못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된다.

'배밭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즉 뜻이 아무리 좋다할지라도 오해살만 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공기업 기관장에게 주어진 역할과 권한은 지역기반정치인들과는 엄연히 결이 다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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