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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화가 열전]조선화 거장 리석호

 

박광선 기자 | kspark@newsprime.co.kr | 2007.12.27 17:26:45
[프라임경제]조선화(북한의 한국화) 최고 거장 리석호 화백. 북한 미술계가 몰골법을 장려하면서 새롭게 조명되는 화가다.

전문가들은 간결하고 섬세하며 시적 여운과 함께 힘 있고 아름다운 세련된 필치를 갖추고 있다고 그의 작품을 평가한다.

실제로 그는 화폭에 함축된 짙은 시적정서, 붓의 속도와 역점, 선의 강약관계, 비상한 섬세성과 정밀성, 본색의 특징을 예리하게 담아냈다고 한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감정으로 세인을 감탄시킨 그의 작품들은 현재 조선미술박물관과 세계 여러 나라 박물관들에 소장 전시중이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가현리에서 출생한 리화백은 20살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 미술에 뜻을 두고 21살 때 상경, 안중식(1861-1919)이 조직한 서화협회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1928년부터 서화협회 전람회, 시도전람회, 조선미술가젼람회 등에 작품들을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이 시기의 주요 작품으로 〈노호〉, 〈엽정〉, 〈신록〉, 〈장정〉 등이 있다.

8·15광복 후 경기도 안성군 인민위원회와 남조선미술가동맹 서기국 선전부에서 일하면서 정종여(1914-1984) 등 6명의 화가들과 함께 7인전을 가졌고, 1949년에 이응로와 함께 2인전을 가졌다. 이 시기에 그는 주로 꽃과 새, 풀과 벌레 등을 그렸다.

6·25전쟁 후 미술대학 조선화 강좌 교수,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조선화분과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민중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한 작품들을 그렸다. 이 시기 작품으로 〈현물세운반〉, 〈국화〉, 〈진달래〉, 〈해바라기〉, 〈청봉〉, 〈가을〉, 〈장미〉, 〈소나무〉, 〈삼지연〉 등이 있다.

1971년 죽음과 더불어 화단에서 사라졌던 그가 다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된 것은 1988년. 김정일에 의해 몰골화가 부상하고, 수묵화가 복권되면서 부터다. 이에 따라 1988년 리석호·우치선의 2인전이 열리고, 1989년 12월에는 평양에서 리석호 개인전이 1달 동안이나 대대적으로 열렸다.

그의 생전에 열린 1957년 개인전과 비교하여 훨씬 큰 규모로 대 성황리에 열렸다. 이제 <소나무>보다는 몰골법으로 그려진 작품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북한미술계가 <들꽃>과 <창포>에서 보듯이 서예적 필묵미와 더불어 사의성이 농후한 그의 작품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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