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몰락하기 전의 일이다. 트럼프 부동산과 고급고층주택 노하우를 교류하게 되고 큰 도움을 얻은 김 전 회장은 트럼프의 이름을 딴 고급빌딩을 국내에 몇 지었다. 지금 백악관에 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본인과의 일화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자기 이름을 따(비용도 지불하면서) 건물을 지어도 되냐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음은 물론 대단히 기꺼워했다는 후문이 있다.
지난 4월27일 북한과 남측의 정상회담으로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뒤, 미국이 북한과 마주앉을 정상회담 장소로도 판문점이 부각되고 있다는 뉴스들이 종종 나온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을 원하나, 참모들이 여러 위험 부담(성공시 평화 이미지 부각 효과는 극적으로 나올 수 있으나 반대로 성과가 별로 없을 때 역풍 가능성)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이런 터에 협상 자체의 무산 가능성 등을 강력한 어조로 주장하는 한편,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 3명을 돌려보내는 등 김정은 체제는 미국에 강온 양면 전략을 쓰고 있다. 북한의 '통 큰 결정'에 기분 좋아진 트럼프 대통령이 자칫 평양 방문 카드를 밀어붙일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거론한다. 외교가에서는 미국 외교 당국자들이 이미 싱가포르 준비에 착수했다는 설을 이야기하고, 외신 일부도 이를 보도하고 나선 상황이지만 일종의 '블러핑(포커에서 상대방을 눈짓 및 표정 등으로 오해시켜 속이는 일)' 가능성이 남아 있다.
문제는 정말 평양으로 갈 때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빛을 잃을 가능성이다. 이번 회담에서 무슨 이야기가 실제로 나오고 나오지 않든 간에, 미국 국가원수가 평양을 찾아준다는 것 이상으로 인상적인 북한 체제에 대한 간접적 인정이 더 있겠는가? 이 경우 북한의 핵무장 해제 관련 발언권은 강고해질 것이고, 북측 체제가 굳건해질 수록 북측이 행여 원치 않아도 저절로 '통미봉남'이 될 여지가 있다. 즉 비용과 보상 문제만 떠맡을 우리 부담만 커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싱가포르는 몰라도 평양은 절대 안 된다는 점에서 우리 당국이 미국 요로에 의견 전달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10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9일 밤 이뤄진 문재인-트럼프간 정상 전화통화에서 회동 장소 관련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의 엄중함을 볼 때 우리가 장소 문제에 발언이나 의견 개진을 전혀 손놓을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대두된다.
더욱이, 지금 정권은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한다는' 문재인 정부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북측과의 정상회담에서 북측에 억류 중인 우리 국민 6명의 송환 문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밝힌 내용이다.
이제, 우리가 북한과 마주앉는 무대로 판문점을 제안하고 이 제안을 미국이 받을 때의 우리 선물을 준비할 때다. 그런 점에서 위에서 김우중-트럼프간의 일화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한국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온, 빛나는 경제 성장에도 해외에서 우리에게 투자하기를 혹은 심지어 단기 여행을 오기조차 꺼리는 '코리아 리스크'의 원인이 되는 게 북한 위협 문제였다. 그것을 이번에 북측과 판문점에서 담판지어 해결해 준다면, 우리는 그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이름을 딴 건물 이상의 선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향후에 적대적 군사 행위가 차차 단계적으로 철폐되고, 판문점 역시 지금 상호간에 과시하듯 위용을 가미해 지어놓은 건물들을 모두 뜯어 없애버릴 수 있는 시기를 맞이할 여지가 높다.
그 경우 새로 생길 판문점 벌판에, 제주도에 지어진 승효상 건축가의 추사기념관 같은 너무 크지 않으면서도 멋이 있는 건물을 짓고 판문점 트럼프월드 정도로 칭하면 어떨까 싶다. 제주의 해당 건물에 대해 지역민 일각에서는 '감자 창고 같다'고도 한단다. 하지만 유배객의 흔적과 마음을 담는 데 그 이상 큰 건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건축 책임자는 추사 김정희 그림 중 '세한도'에 나온 집 모양을 따 기념관 역할을 할 집을 적당한 크기로 지었다.

세한도. 추사 김정희가 유배 생활 중 입은 호의에 대한 감사로 그려준 작품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는 겨울이 돼 고난이 오자 누가 과연 푸르른지 안다는 뜻의 그림과 짧은 글귀로 이뤄진 작품이다. 제주에 유배온 자신을 살뜰하게 챙겨준 제자에게 내려준 그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그림 속 집을 본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추사기념관이 지어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고마움은 차치하고라도, 이번에 우리가 북측의 ICBM 이슈에 얼마나 추운 연초를 보냈는가를 생각해 본다. 만약에 북한과 미국간 정상회담에서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휴전 협정의 종전 협정으로의 변경 더 나아가 평화 협정 체결 등이 나온다면 더욱이 그 무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굳이 판문점을 택해 준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우방 미국의 도움을 기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판문점으로 정말 북·미 정상회담장 지정이 이뤄진다면, 그리고 성과가 좁쌀만큼이라도 나온다면, 우리 당국에서는 정말 판문점 트럼프월드를 아담한 세한도 속 집처럼 하나 지어줘야 옳지 않을까?
외교가에 자국 이익 없이 남을 도우러 나서는 일명 우방은 없는 것이고,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없다고 하지만, 어려울 때마다 우리를 도와준 한국 국민의 고마움은 하나쯤 형상화해 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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