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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방중에 시험대 오른 文…한반도 운전자론 오히려 빛날까

미-중 속셈 드러났지만 난제 여전·조율 필요성도 대두, KEDO 반면교사 줄타기 예술 주목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3.28 08:49:16

[프라임경제] "청와대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김정은 방중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재인정부가 방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부가 남북관계 운전석에 앉았다고 우쭐대다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27일 이 같은 논평을 내놓고 김정은 방중설에 관련한 우리 당국의 정보력 부족을 비판했다. 특히 이 같은 사정의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낳은 지나친 자만감이라는 식의 해석을 제시했다.

실제 27일 오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내놓은 설명은 정 대변인 발언 중에 제시된 바와 같았다. 이 관계자의 움직임은 당국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방중설과 최고 지도자 김정은 직접 방중설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사실상 정보가 없음을 시사했다. 

결국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 등이 내용 변화를 주도, 27일 저녁께가 돼서 김정은 쪽으로 사실상 굳어지기 시작했다.

美에 카운터 맞은 김정은 '경악', 中은 새 '조선책략'

이 같은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 해도, 정부가 그간 한반도 위기해법으로 제시한 제언이나 정치적 구상의 방향이 모두 틀리다고 일괄 용도폐기돼야 하는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당장'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김정은의 돌연한 움직임에 당혹스러운 것은 최강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의 무능만 문제가 아니라, 백악관의 정보력도 일정 수준까지 깜깜이를 만든 북측의 기민한 움직임과 대담함, 여기에 도움을 주고 협력한 중국의 판단력이 우수했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정확한 문제 해석론이다.

확실한 것은 중국이 북한과 손을 잡는 상황이 연출됐다는 것이고, 북측이 미국의 정상회담과 핵 해제를 연계하려는 강경한 태도에 불만을 갖고 이를 적절히 표출해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과단성을 갖췄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지금 미국과 중국이 무역분쟁으로 불편해진 상황인 것을 최대한 잘 활용했다. 반도체 구매 협상 등으로 양측이 일부 화해 모드를 조성하는 상황이라고는 해도, 북측은 주어진 여건을 적극 활용, 중국이 자신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틈새시장을 정확히 포착했다.

중국은 이런 상황에서 자국 이익을 위해 미국과 일정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함으로써,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차이나 패싱'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핵 개발로 그간 악화됐던 북한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기정사실이나, 이와 별개로 중국의 국익 보호를 위해 주변국 정세를 적절히 관리할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북한과 손을 잡은 셈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이 시험대에 올랐다. 사진은 전기차 운전석에 직접 오르는 문재인 대통령. ⓒ 뉴스1

중국의 이 같은 태도는 구한말 중국 외교관인 황쮼센이 지은 '조선책략'처럼, 주변 이해당사국들을 적절히 이용하되 가장 중요한 조선(한반도)의 파트너가 중국이라는 관점을 은연 중에 강조해 주입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심 중국이 불편해하거나 시큰둥해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도 한국이 단순히 핵 문제 등에서 방외자로 남아있는 것까지를 바라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뉴욕타임스는 27일(현지시각)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5가지'라는 분석을 내놨다. 김정은이 중국에 직접 진출, 시진핑 주석 등 고위층과 면담하면서 농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가정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에서 이런 해설 기사는 흥미롭다.

문재인정부, 미국 압박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질까?

이 신문은 이번 방중으로 김정은이 얻을 수 있는 요소들로 △국제 외교 무대의 정치인으로의 데뷔 △북한과 중국의 관계 개선 △중국의 역할 제고 △대북 제재 완화 시도 △이들을 모두 망라한 결과로 북한 인민들의 안심과 지배력 강화 등을 꼽았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 부분은 중국이 독자적으로 줄 수 없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한반도 문제 해법에서 중국 중요성이 떨어지는 일명 패싱 상태에서 구해줌으로써 발언권이 강해지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과 미국의 대화 중에 북한이 협상 과실을 얻는다는 것인데 사정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중국이 노력하고 힘겨루기도 일정 부분 불사하면서 북한을 챙기기는 하겠지만, 미국과 오롯하게 정반대의 노선을 채택하는 수준까지 북한을 제재 압박에서 구하고 이런 점에서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체제에 품는 불만까지도 희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제재 강화에 중국이 석유 공급줄을 일부 열어주는 것과 최종적 탈출구를 중국이 맡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결국 중국과 북한이 서로 윈윈하는 선에서 미국이 너무 독주하지 않는 한반도 해법 모색의 숨통을 어느 정도 열었다는 제한적 채널이라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암중모색으로 문제를 헤쳐가야 하는 우리가 녹록하지 않은 사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꿍꿍잇속이 서로 다른 주인공들이 더 많은 국면이 버거울 수도 있다.

다만 그렇잖아도 우리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남·북 정상회담 계획, 북·미 정상회담 물꼬 마련 등으로 완전히 낙원에 접어들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이런 전향적 태도에 트럼프 정부는 호응하면서도, 그 발표를 우리 당국자들이 백악관에서 독자적으로 하도록 요청했다. 미국이 모종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됐으며, 우리 측에 북한 비핵화에 일정한 책임 담보를 당부하는 이중 안전장치로도 분석됐다.

이런 터에 문 대통령은 남·북 회담, 북·미 회담에 이어 남·북·미 3자 정상회담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구상을 내놔 오히려 책임만 커질 수 있는 사정에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점을 감안한 뒤, 재차 북한의 돌발적 움직임과 중국의 움직임을 겹쳐 보면 없던 문제가 생긴 것보다는 이왕 복잡한 함수에 불확실성이 더 증가한 것이고 다만 그 폭이 인내 가능한지의 정도 문제만 남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주도권 쟁탈 시도와 신경전이 첨예했던 상황에서, 각자의 욕심과 불만이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 국면이라고 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북한이 국제 무대에 나서기 시작하고, 경제적 압박에 못 이겨 주민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 하지만 글로벌 역학 관계는 아직 이런 북한에 선뜻 퍼주기부터 해줄 의향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퍼주기를 무분별하게 하고자 해도 용납될 구도가 아니며, 이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 등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떠맡기 어려운 상황을 풀 때 중요한 방향 전환 제시를 하는 몫은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우리다.

과거 있었던 한반도 에너지협력기구(KEDO) 경험에서처럼 우리와 일본이 일방적인 지갑 역할만 하지 않도록, 국내외적으로 설득을 하고 여전히 운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맡을 의지를 문 대통령이 보여줄 국면이자, 그런 노력이 실제로 가동될 때 가감없는 평가와 지원도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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