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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김훈과 윤대녕 섞어 시를 짠 느낌, 이미혜 시인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3.20 16:25:51

[프라임경제] 한국 문학이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가끔 나온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큰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후일담 문학'이나 그 반작용으로 자기 내면만을 들여다보는데 매달리는 작품들이 서로 양 극단까지 치닫고, 그 사이에서 독자들이 설 땅이 좁아졌다는 풀이가 유력하다. 여기에 소설 아닌 시는 더욱 어렵다는 편견마저 덧칠돼 사정이 더욱 어렵다.

대학에 사복 경찰이 상주하던 시절, 남자와 술잔을 기울이며 어깨를 겯고 민주화 운동을 얘기하던 시절을 겪은 이가 이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생활인이 돼 시를 쓴다.

2005년 '시작' 여름호로 등단한 이래 이제야 책을 묶어 내는 걸 보면 빠른 창작 속도는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재능, 평범한 종이와 펜을 펴놓을 수 있는 창작공간 같은 전제조건'을 쉽게 허락받지 못했던 이가 교사 생활과 작품 창작을 병행해 이룬 성적이라면 F라고 쉽게 평가할 정도의 결과는 아니지 않을까? 바로 이번에 '소리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낸 이미혜 시인의 이야기다.

이미혜 시인은 2005년 등단 이래 이번에 첫 시집을 낸 과작의 작가다. ⓒ 프라임경제

이 책의 시적 화자는 바로 시인 자신이라는 평가가 유력하다. 생활인으로서, 전직 운동권으로서, 재능이 별반 없는 게 아닌가 스스로 의구심이 드는 갑남을녀로서 천천히 써내려간 글들 사이에 주저흔처럼 본인의 지난날로 의심되는 많은 정황이 먼지처럼 소복하게 앉아있다.

그림을 그리듯 짧은 문장으로 생활인으로서의 답답한 현실과 그에 대한 체념을 이야기한다. 그런 한편 대체 세상은 왜 이런지에 대한 고민이 어쩌다 가끔 번득인다. 과거의 이념과 열정은 지난 일이라 애써 서랍에 넣어두려면서도 날카롭게 눈에 모순이 잡히는 것까지는 주체하지 못하는 모순을 두루 관통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그 와중에 시를 써내려갔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윤대녕 작가가 회화적 이미지의 소설로 포용력 있는 여성 그러면서도 늘 떠나고 싶어하는 여성들을 다양하게 변주('제비를 기르다' 등에서는 매번 집을 떠나 방황하다 돌아오는 여자 등이 나온다)한 것을 연상케 한다.

'단단한 세상을 힘들어했던' 아이의 이유식 시기를 젖은 잇몸으로 기억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에 잠기지만, 장난감과 과자 때문에 악다구니를 쓰는 아이에게 '예의와 범절을 가르치려' 하루 해가 다 가는 허탈함도 오래도록 기억하는 '뒤끝있는' 엄마의 모습이 겹친다.

이런 초조함과 안타까움은 점점 더 과거의 나로부터 멀어지면서 또 이별하고 있다는 의식 때문. 운동을 같이 하던 연애남은 남편으로 변신하면서 보수적 가부장주의의 화신이라도 된 양 속상하게 한다.

그럼에도 아이와 남편이 주는 소소한 행복 때문에 가정의 끈을 놓지 못한다. 다만 창작에 필요한 시간과 재능, 공간이 받쳐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한숨의 주재료 비율이 너무 높았다면 또다른 후일담 문학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적 화자의 입을 빌려 아직 살아있음을 외치고 있다.

계약직 교사에서 드디어 기간을 넘겨 제도권으로 편입을 허락받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인물이지만, 그렇게 한 자락을 간신히 걸쳤다고 기득권층이나 기성제도 전반에 모든 걸 모른 척 살고자 하는 건 스스로가 허락지 않는다.

생활에 치이고 소소한 기쁨과 자리에 즐거워 하면서도 이러면 안 되지 않냐고 일갈하는 눈치없음이 시집을 통틀어 두드러진다. ⓒ 프라임경제

시어머니와의 대화 중에 진보정당 해산의 부당함이 목울대까지 치밀어 오르는 경험('민주주의 꽃밭에서 향이 다르다고 솎아내다니'), 남편과 장손의 수저와 밥을 먼저 챙기다 보니 자신은 서열이 가장 아래라는 '웃픈' 경험을 쓴 시도 있다.

심지어 친정도 비판과 객관화의 대상 삼아 시의 소재로 일부 각색한 게 아닌지 그 치열한 고민과 핍진함이 경이롭다. 최 부잣집에서 유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집이 기울었음에도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고 노동을 천시하는 사고관을 끝내 못 고친 어머니는 안쓰러움의 대상이 아닌 '나의 어머니 일하지 않는 계급'이라는 비판 대상이 된다.

소설가 김훈이 짧은 문장으로 '밥벌이의 지겨움'을 노래하며 자신을 그저 비루한 생활인으로 묘사하면서도 병역 혜택을 보고자 아버지의 연줄을 동원해달라는 아이를 엄하게 꾸짖는 최소한의 도덕적 시민('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의 글들을 내놓은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윤대녕의 그림과 시 같은 흐름 전개, 자기 동일성과 타자화 사이에서 불안하게 오가는 인간사의 고민 그리고 김훈의 단호함과 결벽성을 섞는 건 소설 세계에서는 불가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섞어짜기를 시로 치환하면 이미혜 작가의 글 같은 글이 나올 것 같다. 이 작가는 이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어깨에 힘을 뺀 그의 다음 시집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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