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화조화,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등 조선화 각 장르에서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효원(曉園) 정창모 화백의 그림은 한국과 중국의 동양화와 달리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전통이 살아있는 조선화의 몰골기법을 현실에 맞게 발전시킨 그의 작품들은 색조가 부드럽고 시적이며 정서가 깊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풍경화에서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몰골법은 윤곽선 없이 먹이나 채색만으로 형태를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별 다른 선없이 붓이 지나간 자리에 폭포가 떨어지고 바위가 솟고, 매화 가지 위로 달이 떠오른다).
1931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난 정화백은 매화를 잘 그렸던 외할아버지 리광렬 화백의 영향으로 붓을 쥐게 됐으며 6.25 전쟁 후 북으로 넘어가 당시 개성 미술가동맹위원장 림군홍의 지도로 기초를 다지게 된다.
전주고를 나온 정화백은 26살의 늦깎이 학생으로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미술동맹 현역 미술가로 배치돼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1975년 북한의 미술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의 풍경화실 실장을 역임한 정화백은 1977년 <백두산의 봄>과 <천선대의 가을>을 창작해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고, 1989년에는 최고의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대표작으로 유명한 <북만의 봄>은 1966년에 제9차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된 후 수 차례 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끈 작품이다.
40여 년간 3000여 점의 작품을 그렸으며 국보로 평가돼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돤 작품은 100여점, 국보적 가치를 갖는 우수 작품은 400여 점에 이른다.
지난 2004년 6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북녘의 4대 화가展>을 통해 국내 미술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2005년 10월에는 중국에서 열린 중국 베이징 국제미술전에서 '남강의 겨울(120x74cm)'로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1989년부터 인민예술가로 활동하는 정화백은 ‘풍경화기법’, ‘화조화기법’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해 조선화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여러 명의 공훈 및 인민예술가 등 수 많은 우수 미술가를 양성해 냈다.
주요 작품으로는 만경대의 봄, 법기봉의 계곡, 분계선의 옛 집터, 비봉폭포의 가을, 묘향산 비선폭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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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모 화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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