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의 판결이 5일 선고돼 세간의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삼성전자 더 나아가 삼성그룹의 명운을 건 세기의 재판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 자연인이나 기업집단의 문제에서 조금 더 벗어나 보면 '새로울 게 없다'는 우려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탄식이 뒤섞여 나온다. 오래된 미래의 등장, 뇌물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변곡점'이 확실히 왔다는 점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특별검사팀과 삼성그룹간의 법률 쟁점 대격돌은 결국 방어팀의 전면 승리로 끝났다. 사실상 이 같은 처리는 예견돼 있었다는 풀이가 유력하다. 다만 남은 것은 형평성 논란이라고 할 수 있다.
뇌물죄는 과거 줬다는 사람이 진술하고, 받은 사람이 인정하면 유죄가 나오는 구조로 운영됐다. 과거에는 다 그렇게 수사했다는 회고가 유력하다(예를 들어 특수수사통이던 함승희 전 검사의 책 등).
특히 재판 과정 전에 미리 판사 앞에서 뇌물 공여 부분을 진술하도록 하는 제도가 뇌물 수사에서 애용되기도 했다. 이 '공판 전 증인 진술 제도'는 방어권 제한으로 위헌성 논란이 생겨 후에 사라졌지만, 뇌물죄 조사와 입증의 어려움을 인정하는 공감대가 우리 법조계 더 나아가 사회에서 존재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단순히 털오라기 하나의 의심도 없어야 한다는 엄정함이 아니라 뇌물의 개념 자체를 새로 쓰는 시대가 온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JY 사건은 이런 우려를 새롭게 쓴 것이라든지 삼성그룹의 힘이 빚어낸 그야말로 '특별한 혜택' 논란의 소재는 아니다. 다만 논란을 굳혀주는 의미에서 조명될 필요는 확실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짚을 필요가 있다.
◆진경준 주연, 이재용은 조연일 뿐?
삼성이 어디서나 나쁜 기업, 나쁜 부자의 전형이라는 근거없는 미움은 온당치 않다. 또한 삼성이나 그 오너 일가 및 수하(회사 관계자)들이 늘 주연이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라는 식의 이해도 옳지 않다.
뇌물죄 논란에 있어서는 삼성은 논리 창조보다는 새 문제 상황의 굳히기 타자로 볼 수 있다.
"이러면 뇌물죄를 앞으로 어떻게 수사할 수 있느냐?"는 식의 문제 제기에서 의미있는 시발점은 검찰 관계자들의 부정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중요성 면에서는 진경준 전 검사장 사건을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연말 대법원은 넥슨으로부터 공짜 주식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진경준 전 검사장의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을 택한 대법원의 논리 구조는 간명하다. 뇌물 무죄, 일부는 공소시효 지남(면소 요건)이다.
2005년 넥슨 주식을 사기 위해 사용한 4억2500만원을 '보전'받은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과 달리 공소시효 10년이 지났다면서 면소 판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 판결 후 구치소를 걸어나오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뉴스1
대법원은 "이익이 오고 갈 당시 김 대표나 넥슨에게 진 전 검사장 직무와 관련된 사건이 장래 발생할 개연성이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며 "당시 (넥슨 고위 관계자가) 수사를 받기는 했지만 사안 자체가 경미하거나 범죄가 성립하기 어려웠고 진 전 검사장이 개입한 사정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사 그것도 탄탄대로를 줄곧 달리다 검사장급(공무원 세계에서는 이 자리를 중앙부처 장관급과 동렬로 본다)에 오른 이가 가진 힘은 어느 정도일까? 이런 점에서 대법원의 위의 판단은 너무 '나이브 했다'거나 '순진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위 검찰 관계자가 과연 개별 기업 이익을 위해 개입할 여지가 없고, 또 그런 점에서 돈이나 편익을 받았다면 그걸 포괄적 뇌물인지 개별적 부정인지 상세하게 모두 밝혀 전부 입증해야 유죄가 된다면 이런 힘있는 이들이 부정을 저지를 때 사법처리될 확률은 어느 정도로 계산해야 할까? 진 전 검사장 사건에서 보여준 대법원 판결 태도를 앞으로 우리가 상식으로 확정한다면 그 사법처리 확률은 0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이번에 '청와대 권력에 의한 삼성 위협과 뇌물 사건'에서 포괄적 뇌물 논리가 깨지고 결국 삼성의 경영권 승계라는, 추상적인 구석이 있지만 대단히 현실적 이익 대상이 있다고 세간에서 여겨지는 존재가 부정당한 것은 진 전 검사장 사건의 파기환송 당시 이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던 것을 확인한 데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한국 경제 질서를 너무 미국식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낳는다는 점에서 추가 요소가 있다.
◆법원, '별자리' 떨어뜨릴 땐 다른 논리였다?
하지만 형평성 시비는 당분간 불가피하다. 적어도 다른 사건, 그것도 갑남을녀 같은 하위직의 비리를 다루는 뇌물죄 사건도 아닌 군 최고위층 관계자 사건에서 대법원이 다른 방식의 추상 같은 판결 태도를 보인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진 전 검사장 사건은 지난해 연말 사안이었지만, 여기서 불과 몇달 전인 같은 2017년의 봄만 해도 대가성 판단에서 대법원은 '직무의 집행'을 대단히 넓게 봤다.
대법원이 제3자 뇌물제공 혐의로 기소된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재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당시 판단 논리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제3자 뇌물제공죄는 단순수뢰죄와 달리 '부정한 청탁'에 대한 대가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대법원은 "당해 직무집행을 어떤 대가관계와 연결시켜 그 직무집행에 관한 대가의 교부를 내용으로 하는 청탁이라면 모두 '부정한 청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탁의 대상인 직무행위의 내용도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묵시적인 의사표시라도 무방하며, 실제로 부정한 처사를 하였을 것을 요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직무 혹은 청탁의 내용, 이익 제공자와의 관계, 이익의 다과 및 수수 경위와 시기 등의 제반 사정과 아울러 사회 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 여부도 판단 기준이 된다"고도 추가로 짚었다.
포괄적으로 묵시적 뇌물이 아닌 뇌물을 줘 가며 '관리'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최고 법원이 근래 문제적 판단을 하긴 했지만, 아직 이것이 100% 확고한지는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삼성 처벌을 바라는 쪽에서는 이것을 희망적이라고 풀이할 것이고, 삼성으로서는 리스크로 볼 수 있다.

사진은 삼성으로부터 부정한 이익을 제공받은 정유라씨(가운데). ⓒ 뉴스1
삼성 경영권 승계가 과연 실체 있는 이익이고 청탁 대상인지 등을 모두 짚다 보면, 결국 삼성 장학생 같은 과거의 병폐 문제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짚고 판단하고 넘어갈 지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 문제까지 부각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이 부회장 사건은 대법원으로의 이송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사안을 한정해 보면 청와대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굽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수 관계 민간인 최순실씨에게 돈을 뜯긴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세계 1류 대기업집단이 부정한 청탁인 최순실씨와 그 딸 정유라씨에게 마필 공급 등 편익을 강요당한 사건이라 이 부회장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은 여러 현재적 논란 때문에, 개인의 억울함 못지 않은 공방전은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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