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북한에도 몸은 늙었지만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활동하고 있는 화백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람은 북한 조선민예 연합상사 산하 송화미술원의 원로급 예술인들이다.
오랜 기간동안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이들 원로화백의 작품에서는 원숙미가 물씬 풍긴다. 물론 작품창작 열정도 젊은 사람 못지않다는 평가다.
경험에서 나오는 원숙미가 물씬 풍기는 원로화백 가운데 손꼽히는 사람은 조선화가인 근암(瑾癌) 김상직 화백이다.
김상직의 작품은 먹의 특성과 붓의 자욱이 그대로 살아있다. 속도감과 중량감이 느껴지는 선에는 '의도'보다 붓이 주는 '우연'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대상을 간결하고 선명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인 김 화백의 모든 작품에서는 붓의 긴박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20대에 두만강하유를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하는 등 유화가로도 활동했던 김 화백은 조선화가인 일관 리석호 화백으로부터 개별지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부에 대한 열정도 뜨겁다. 1961년에는 47세의 나이로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해 벽화를 공부했을 정도. 특히 1965년 내놓은 졸업작품 <광부들>은 제 8차 국가미술전람회에 전시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작품은 김 화백이 직접 광산에서 찾은 색돌을 갈아 대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북한 특유의 미술 기법인 보석화 발전의 시초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조선미술가동맹,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작품활동과 후진양성에 주력한 김 화백은 197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말까지 화가로서 전성기를 보냈다. 1977년에 그린 조선화 <산적막에 남긴 사랑>은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에 당선되며 역량을 인정받기도 했다.
현재 북한 최고 원로화가들의 모임인 송화미술원의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화백은 정영만, 선우영, 정창모 화백과 함께 현존하는 북한의 최고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경력은 다른 유명 화가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김 화백의 주요 작품으로는 <압록강의 노래> <삼일포에서 외금강을 보다> <동해 명승 해금강의 아침> <백산의 수리개> <물총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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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산의 수리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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