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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신뢰자본上] '조자룡' 삼성생명의 50주년 비전 '공수표'

능력 좋으나 오너 일가 안정적 활동에 동원…'이젠 쓰임새 다한' 60주년 계열사의 초상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12.29 12:12:35

[프라임경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항소심 절차도 이제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삼성그룹은 정유라 선수 승마활동 지원을 명목으로 희대의 국정농단 무대에서 열연했다. 단순히 돈을 뜯긴 피해자가 아니라 그룹 승계작업에 도움을 얻고자 기회를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미 1심에서 3세 승계의 정점인 황태자가 징역 5년을 선고받는 등 신뢰 저하 우려가 크다. 삼성의 신뢰자본 조각들이 깨진 사례 중 작지만 의미 있는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고, 앞으로 이를 다시 붙일 방안은 없는지 실마리도 찾아본다

삼성그룹에게 삼성생명(032830)은 어떤 의미일까? '조자룡 헌 칼 쓰듯' 활약했던 삼성생명은 이제 IFRS17 등 새 국면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2017년은 이 회사가 60주년을 기록하는 해다. 갑자를 채우도록 굳건했던 업계 최강자 위상. 금년 현재 자산은 241조원으로 업계는 본다.

올해 추정 매출액은 18조4000억원 상당, 당기순이익은 1조5000억원대이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5.04%를 기록할 전망이다. 좋은 성적표다. 연초 신년사에서 '올해 글로벌 일류를 향한 역사적인 모멘텀을 만들자'고 외친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의 각오만 떼놓고 보면 대단히 선전한 것. 

그러나 이를 창사 50주년을 맞던 2007년 5월 당시의 '사자후'와 비교하면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이수창 당시 삼성생명 사장은 미래 비전을 통해 '글로벌 톱 15' 구상을 내놨다.

그는 "증시 상장은 신성장동력을 해외에서 찾고 있는 삼성생명에 자본확충의 기회"라고 제언했다. '"혁신과 조직문화, 고객섬김 3가지가 3대 소프트웨어'라며 사회적 자본 즉 기업이 속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받는 '신뢰와 존경'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가 당시 2015년 기준으로 밝힌 비전은 △매출 60조원 △자산 260조원 △순이익 2조5000억원 △ROE 15%이었다.

'리먼 브러더스' 위기도 문제였지만…주원인은 그게 아냐?

물론 모든 비전 선포가 100% 제대로 이행되지는 않는다. 하물며 2008년 후반 미국에서 리먼 브러더스 부도 사태가 일어나고 글로벌 금융 위기로까지 증폭돼 그 여파가 상당 기간 계속된 점을 감안하면 그 직전 나온 이런 선포가 공수표가 된 것이 모두 삼성생명의 탓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리먼 사태 여파로 모두 면책 효과를 얻기에는 2%의 빈 틈이 있다. 2015년에는 △매출 27조7000억원 △순이익 1조2000억원 △ROE 5.28%였다. 당초 2015년 비전 목표, 그리고 2년 후의 2017년 매출 등과 겹쳐 보면 당초 목표에서 크게 벗어났고 현상유지하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ROE는 분명 문제가 있다. 17일 보험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세계 생명보험산업 ROE는 8.1%이었다. 2015년 10.8%, 위기 이전 수준인 2007년 14.4%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험연구원은 지적한다.

그래도 이런 글로벌 현황은 삼성생명의 2015년(5.28%)이나 2017년 지표(5.04%)와 비교하면 꽤 높다. 그러나 국내 1위와는 차이가 있다. 국내의 주요 경쟁상대인 교보생명의 ROE는 11.5%로, 이 업체는 2004년 이후 국내 대형 생보사 중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오너 일가 뒷바라지에 깊숙히 관여하면서 여러 논란을 감수해왔다. 흔히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을 'JY 경영권 승계' 드라마의 백미로 꼽는다. 이를 통해 그는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이던 당시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삼성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뒤이은 199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사채(BW) 헐값 발행도 중요 이벤트였다. 

그리고 삼성생명은 2010년 상장했다. 삼성생명은 200조원이 넘는 자산으로 삼성전자의 지분을 사들여 삼성전자를 틀어쥐었다. 이 부회장은 61억원의 종잣돈으로 매출 300조원이 넘는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갖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낸 세금은 증여세 16억원에 그쳤다.

2011년 상장의 문제가 여기 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닥치기 전, 삼성생명 쪽에서 밝힌 상장 필요성은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결국 전대미문의 사태 여파로 좌초됐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왔다. 회사에는 별반 이익이 되지 않는 '이상한 상장'이라는 평이 일각에서 나왔다. 당시 삼성생명은 4443만여주를 공모했는데, 이는 모두 삼성차 채권단과 신세계⋅CJ 등 삼성으로부터 계열분리된 친족그룹이 보유한 물량이었다.

즉 삼성생명이 새로 주식을 발행하지도 않았고, 이건희 회장 등의 지배주주가 기존 주식을 팔지도 않았다. 1997년 말 IMF 환란 이후 삼성그룹을 괴롭혀온 삼성차 부채를 털기 위해, 또 오너 일가 이익을 위해 처리했다고 요약하는 외에 딱히 명분도 실리도 없는 상장이었던 셈이다.

2007년 50주년 비전 등에서 거론된 '확충 모멘텀'은 공급되는 일 없이 삼성생명은 그룹 지배구조의 중요 축으로 차출, 기능 소화에 동원된다.

과거 삼성생명의 지배구조 역할론. 통합 삼성물산 출범 전의 구도다. ⓒ 프라임경제

이는 IFRS17 등 변화 흐름에도 삼성생명이 동종업계 타 기업들 대비 보수적으로 자본확충 등에 대처하는 결과를 낳았다. 삼성 지배구조는 2014년 이 부회장의 부친 이건희 회장의 건강 문제가 생기고 '그룹 차원'에서 승계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으로 다시 전환점을 맞이한다. 통합 삼성물산(028260) 출범이 그것.

대강은 완성되더라도 다만 세부 내역 매조짐이 어려웠던 삼성그룹은 이 과정에서 정유라 선수 지원을 빙자한 박근혜 전 대통령-최순실과의 협력이 있었다는 전언으로 악재의 크기를 키웠다.

RBC 위기론? 지배구조 본질 흐리면서 '확충 골든타임' 놓쳐

자본을 확충할 필요가 있음에도 삼성생명은 2010년 IPO 당시 100% 구주매출로 구조를 짰듯, 보수적 행보를 지속한다. 신주 발행을 통해 핵심 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것을 꺼리는 입장이 반복된 것이다. 이후 조달시장의 문을 두드린 전례가 없다.

이런 논의는 대체로 타당해 보인다. 새로운 규제가 모두 시행된다 해도 삼성생명의 2019년까지 RBC비율은 최대 80~90%포인트만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200% 이상의 RBC비율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은 '고객 보호를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명제를 'RBC 정도는 그대로 두라'는 방어논리로 무마하는 근거가 된다.

통합 삼성물산 탄생 후의 삼성 계열사들의 위상과 역할 구도. 근래 삼성물산의 전자 지분이 4.63%, 삼성생명의 전자 지분이 8.23%으로 변화한 외에 대강의 구조는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15년 기준표. ⓒ 프라임경제

그러나, 금융그룹통합감독 등 다른 변수를 최근 당국이 꺼내면서 이런 느긋한 대처 논리에 회의를 품는 시각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논의는 참여정부, 박근혜 정부에서도 있었으나 무산된 바 있다.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되살아난 상황이다.

이기영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개별 보험사의 2개년 사업보고서(2015년·2016년)를 바탕으로 전망치를 내놨다.

이 시뮬레이션은 (국제기준) 금융그룹통합감독 적용 시 삼성생명의 RBC는 302.1%에서 110.1%로 내려간다고 예측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27조원어치 계열사 주식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적정 자본에서 제외돼 재무건전성 비율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주목할 시점이다.

삼성생명은 당초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베일 속에 숨었었다. 하지만 '이건희-재용 모두 건재' 상황에서 최대한 모호하게 시나리오를 유지하던 상황에서 '이재용 중심' 상황으로 국면이 변화하면서 책임만 지는 자리까지 내려갔다.

삼성전자가 고배당으로 전환하는 등의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등은 다시 삼성생명에 새 부담 요인이 되는 등 반대급부가 있는 것이다. 이런 터에 과거부터 유배당보험상품 가입자들이 이익의 일정 부분을 주주 아닌 가입자들에게도 챙겨줘야 한다는 논리를 다시 꺼내면 최악의 국면이 될 전망이다.

과거 가입자의 양해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기류가 강했지만, 삼성그룹의 '신뢰자본'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 회장 혹은 그 아들 이 부회장의 이익을 위해 다른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침묵하도록 하는 게 유일선이라는 전제는 힘을 잃고 있다.

삼성생명은 근래 금리인상 동향 등으로 그간의 역마진구조 개선 등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의 각종 신뢰자본 하락 징후들이 현실화되는 것을 모두 상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1심 재판부는 "삼성 승계구도는 이미 대강 완성이 됐으며 삼성생명 역할 모델을 갖고 가는 것은 장기간 유지할 수 없는 모델"로 폐기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제 삼성생명은 '그룹을 위해 활약하는 조자룡'이었다기 보다는 그룹이 '조자룡 헌 칼 쓰듯' 함부로 사용한 칼이 아니었는지 자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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