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세계적인 요리사 고든 램지가 한국 맥주를 홍보하러 방한해 화제인데요. 지난 18일 국내 유력 맥주 생산업체인 OB맥주의 브랜드 중 하나인 '카스' 홍보차 기자간담회를 갖는 등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입맛 까다로운 요리사로 유명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에둘러 지적하거나 따뜻한 조언을 해주기 보다는 직설적으로 말을 뱉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신장개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명세를 탔고, 여전히 악명이 높죠.

고든 램지의 카스 간담회 장면. ⓒ OB맥주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는 세평이 있었는데, 요리에 대한 신념이 강한 것으로 이름난 그가 호평을 했다니 기자들로서는 의견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던 것이죠.
사실 이 점이 제대로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못했다면, 카스 브랜드 홍보는 대단히 삐걱거릴 뻔 했습니다.
"천하의 독설가 고든 램지가 이미지를 굽히고 그저 그런 한국 맥주에 호평을 하다니, 돈이 좋긴 좋은 게로군" 식의 비판과 비아냥이 폭주했을 테니 말이지요.
하지만 그는 이 부분에 대해 나름의 답변을 내놔 자기 소신에서 벗어난 광고 촬영을 한 게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해당 기업으로서도 '유명하긴 한데 브랜드 가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델'을 데려왔다는 오해를 털고 모델을 보는 눈, 즉 '안목'이 있음을 자랑할 수 있었죠.
램지는 우선 카스를 위시한 한국 맥주의 맛 논란에 대해 "유럽인들은 맵거나 강한 음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강한 맛을 상쇄해 줄 맥주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안 한 것 같다. 아까도 말했듯이 카스는 한식과 아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한다"고 반격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아주 좋은 평은 아닌 것도 같은데요?
그러나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고 성공할 때까지 이사를 자주 다닌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카스는 편안하게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맥주라고 생각해서 선택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스토리텔링을 하면 그가 카스를 선택한 데 설득력이 높아지면서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 간접적으로 높아지겠죠.
아울러 맛을 직설적으로 평가하는 인물인 동시에 자신도 가차없이 평가받는 입장이라는 점도 거론하면서, 흔히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에서 반전된 입장에 섰는데요.
즉 카스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추가로 조언을 풀어나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음식평론가들이 15~16년 동안 내 음식에 쏟은 신랄한 평을 일일이 마음에 담아뒀다면 아마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카스든 나든 중요한 것은, 주변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정체성과 신념을 지키며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이라는 게 그의 인터뷰 중 백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을 참 잘 한다고 치부하고 넘기기엔 여러모로 의미있는 맥주 인터뷰였는데요. 우리나라 정치권을 보면 이런 정체성과 신념 문제가 특히 쉽지 않아 보이고 그래서 램지의 발언과 소신이 대단해 보입니다.
최근 여러 정당이 이합집산 바람에 휘말렸고, 많은 정치인들이 부패 문제로 검찰과 법원 문턱을 밟고 있습니다. 뭔가 좀 다른 정치를 표방하며 각자 새 깃발을 들었던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극심한 분열 논란을 빚으며 한계를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야권에서는 최경환 의원이 부정한 돈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정작 그는 '할복' 발언으로 이를 부인 중입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기업체 뒷돈 문제로 물러나 검찰 조사에 응했습니다. 여당도 이런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데, 원혜영 의원이 '과거 야당 원내대표들도 국회운영자금을 보조받았다'는 설과 싸우고 있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제기한 이 의혹대로라면, 한때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에 원내대표를 지낸 원 의원도 자금 수수 후보군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원 의원은 말을 꺼낸 홍 대표에게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지요.
정치인들의 개별 입장과 하나하나의 상황을 보면 억울한 경우도 상당히 섞여 있는 것 같지만, 글쎄요, 종합해 놓고 보면 백년하청이나 그 밥에 그 나물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박한 평가에서 수십년째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인 것도 사실이라 안타깝기만 합니다.
정체성과 신념 잣대를 남에게 이야기하긴 쉬워도 자신이 지키기는 어려운 게 원래 정치권 특징이라지만, 근래 모습은 많이 심각해 보입니다.
요리사가 남의 나라 맥주 하나를 맛보고 평을 할 때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되지 않도록 평소 자기 신념에 왜 지금 발언이나 선택이 어긋나지 않는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되는 시대입니다. 독설가만 많은 정치권이 아닌, 자기 소신을 쭉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정가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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