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문재인 대통령의 '집단 지성' 구상이 주목받는 가운데 부처별 업무보고 내용과 이 개념의 융합 가능성이 점쳐진다. 다름 아닌 과학기술 연구개발(R&D), 그중에서도 기초연구의 강화와 그 관리 감독 방안이다.
실험실과 광장민주주의 같은 서로 거리감 있는 요소가 만날 길은 그러나 우리가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22일, 업무보고 대상 부처 22개 부처 중 가장 먼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에 앞서서 비전문가 관점에서 몇 말씀 드리겠다"면서 "과학기술 분야는 과거에 비해 국가 경쟁력이 많이 낮아졌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의 R&D 자금을 투입하는데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의 제언, 6월 기초연구 예산 기조 재확인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밑바탕이 되는 기초연구에 대한 상대적 소홀함을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부족해서 일본이 22명이나 노벨 과학상을 받는 동안에 우리나라는 후보자에도 끼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도 많이 뒤쳐졌다"고 평가하며, 기초연구에 대한 더 큰 관심이 담긴 제언을 했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이미 나온 바 있는 기초연구 기반 확장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이미 지난 6월29일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는 2018년도 기초연구 및 기반 확대 예산으로 1조8000억원을 책정한 바 있다. 금년치보다 15.6% 늘어난 규모다.

문재인식 기초연구에 대한 연구개발비 지원 강화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사고 있다. 사진은 역학조사 중 자료를 남기는 연구원들. 특정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 뉴스1
기초연구 사업 중에서 정부가 연구분야를 지정해온 전략공모 과제를 자유공모로 전환하기로 했다. 연구자가 스스로 주제를 제안하고 이 제안이 채택되면 연구비를 받는 방식이 활짝 꽃을 피우게 된 셈이다.
기초연구 체질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꾸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이 나왔다.
◆예산타당성도 과기부에? 그만큼 높아진 외부 견제의 벽
22일 문 대통령의 발언은 비전문가로서 묵묵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기초연구 과학기술인에게 따뜻한 응원만 보낸 것은 아니다. 투자 규모 대비 결과 부재에 대한 문제 지적을 깔고 있기 때문.
행간을 추측해 읽자면, 결과가 잘 안 나오는 게 기초연구 같은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등한시하고 사상누각을 지었기 때문이라면 이를 바로 잡으라는 것이지, 결과가 무한정 안 나와도 좋다는 '면책특권'까지 기초연구계에 준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향후 R&D에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권한 자체를 원칙적으로 나라 곳간과 돈줄을 감독하는 기획재정부(기재부)에서 과기정통부에 넘겨주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은 기대를 많이 받는 대신 일말의 우려를 낳고 있다.
'과피아' 득세와 관련한 것이다. 아울러 그 동안 단기 성과 보여주기에 매몰돼 제대로 긴 호흡의 일을못 했다면, 이제는 막상 결과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가 생길 여지도 있다.
물론 일명 '원천기술'은 잠재력이 크다 뿐이지 그 파급력이나 최종 성공 여부를 중간에 예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아무런 외부 검증이나 평가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과학계가 질주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독일 연구계, '세금 내는 사람 의견' 경청
이런 점에서 20일 대국민보고대회에서의 문 대통령 발언이 새롭게 읽힌다. 문 대통령은 "촛불 집회처럼 직접 촛불을 들어 정치적 표시를 하고, 댓글을 통해 직접 제안하는 등 직접민주주의를 국민이 요구하고 있다"며 "국민의 '집단 지성'과 함께 하겠다.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겠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직접민주주의와 집단 지성이라는 용어를 굳이 함께 사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진보 지지자를 자임하는 여당 지지층에서는 자신들의 참여로 여론과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집단 지성'이라 일컫기도 한다.
단순히 표와 머릿수의 우위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답을 전제로 다수가 압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당연히 중우주의(중우정치)와도 거리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압도적인 지식이나 전문성까지는 아니어도 일정한 지적 무장을 통해 상식적으로 이를 모으고 결합해 정당한(검증된) 답을 제시하는 시너지효과가 강점이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이상한 답을 내놓는 '집단 사고'와의 차별성도 있다.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핵심의사 결정기구에서 이런 역할 참여 모델이 발견된다. 물론 집단 지성이라는 미명 하에 비전문가들이 전문가들을 매번 견제하고 의심하며 방해하는 것은 독일에서도 허용되는 모델은 아니다.
다만, 핵심의사 결정기구인 평의원회에 정치인, 산업계, 과학계가 같은 비율로 참여, 서로 견제와 대화 및 설득을 하고 의사 결정과 연구 진행에서 외부인들의 감시와 응원이 이뤄지는 구조다.
세금을 내는 국민 의견이 과학계에 전달되는 방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지금과 같은 기재부의 예타 검증 이상으로 실효성이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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