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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채권' 소각하는가 싶더니…소멸시효 '연장'

채권 10개 중 4개…채무자 도덕적 해이 우려 속 '죽은채권부활금지법' 필요

이윤형 기자 | lyh@newsprime.co.kr | 2017.07.14 14:38:58
[프라임경제] 문재인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장기·소액 연체채권을 자체적으로 소각하던 은행들이 뒤에선 채무자들의 연체를 연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국민행복기금 보유 10년 이상 연체, 1000만원 이하 채권 소각 방침에 따라 은행들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특수채권을 전량 소각에 나서면서 연체 채권 소각 규모를 늘리고 있다. 

은행들은 올 1분기에 9만943명의 채권 1조4675억원을 소각했고 2분기에도 1만5665명, 3057억원의 채권을 폐기처분했다. 이는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 1732명의 빚 174억원을 소각한 데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 같은 은행권의 채권 소각은 새 정부 코드에 맞춘 과감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뒤따르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은행들의 행보가 연막 작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연체 채권 소각 규모를 늘리는 은행들이 뒤에선 또 다른 이들의 채권 소멸시효는 연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 금융권 및 은행권 특수채권 현황 표. ⓒ 제윤경 의원실


실제 최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6개 은행은 올해 1분기 만에 1만5459명, 원리금 3143억원의 대손상각채권 소멸시효를 연장했다. 

대손상각채권은 연체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 은행 장부에 '손실'로 기록되고 충당금을 쌓은 채권이다. 이런 채무의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은행이 법원에 소송을 내면 5년씩 계속 연장할 수 있다. 

새 정부 눈치를 보면서 연체채권 소각 규모를 늘렸지만, 한편으론 빚을 받아내려고 소송을 제기해 시효 완성을 미루고 있던 셈이다. 

특수채권의 소멸시효를 연장시키는 행태는 이미 금융권 전반에 깔린 상황이다. 정무위 소속 제윤경 의원(민주당)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각사로부터 제출받은 '금융권 특수채권 현황' 자료를 보면, 3월 말 기준 전체 금융사(증권업, 대부업 제외)의 5년 이상 연체된 채권 규모는 20조1542억원(원금 11조9660억원, 이자 8조188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소멸시효가 1회 이상 연장된 채권이 총 8조2085억원으로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채권 10개 중 4개가 법정 소멸시효 5년을 채운 뒤에도 소송 등의 방법으로 계속해서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소멸시효가 늦춰지다보니 이자가 원금보다 많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5년 미만(소멸시효 도래 전)까지는 이자가 원금의 절반 수준이나, 소멸시효가 연장된 후에는 이자가 원금의 104%, 3차 연장에는 176%까지 상승한다.

채권연장이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것은 채무자가 상환의무를 고의적으로 외면하는 도덕적 해이 우려와 채권자의 권리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권이 채권을 사고 팔면서 3차 연장까지 이어가는 것은 채권 상환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만 높이고, 이는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해라는 반론이 최근 득세하고 있다. 

제 의원은 "소멸시효가 늘어날수록 채무자는 연체기록 탓에 취업이 어려워지는 등 경제생활에서 배제될 수 있다"며 "그동안 이자는 계속 불어나 상환을 끝내기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고 짚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죽은 채권 소각으로 은행들이 정부의 입맛을 맞추는 듯 보이지만, 또 다른 채권의 소멸시효는 연장하는 꼼수를 쓰고 있다"며 "이런 행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현재 계류 중인 죽은채권부활금지법(공정채권추심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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