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동해는 동해가 아닙니다."
홍일송 전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회장을 만나는 사람들은 몇 차례 놀라게 된다. 우선 그가 구사하는 우리말이 여느 '서울 아저씨'와 같이 자연스럽다는 데서 기분좋게 놀라게 되고, 그 한국어로 이 같은 냉정한 내용을 앉자마자 찌르고 들어온다는 점에서 당황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 영해의 일부로 알고 있는 '동해', 늘 애국가의 첫머리에서 당연하게 떠올리는 '동해물'은 국제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말을 늘 입에 달고 사는 그는 자칭타칭 동해와 독도 문제 전문가. 위의 발언 첫머리만 봐서는 일본과의 외교전에 시달려 닳아버린 패배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직함에 들어가 있는 버지니아가 바로 미국에서도 한국에 가장 우호적인 발표들을 내놓은 바 있는 선구적인 지역임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버지니아주는 공립 교과서에 일본해와 동해 표기를 함께 적는 내용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지역 교민 사회를 결집시켜 정치인들을 설득해낸 막중한 역할을 한 이가 바로 홍 전 회장이다.
◆"750만 교민 믿어라" vs "독도-동해 문제 분리", '냉정과 열정 사이'
버지니아주 교과서의 표기가 바뀐 긴 운동은 2011년 본격 태동했다. 미국 7개주 한인회 회장들이 뜻을 모아 각각의 주에서 '동해 명칭 병기 청원 운동'을 벌이기로 다짐하고, 길고 치열한 설득 끝에 2014년 버지니아 각급 공립학교 사용 교과서에 동해-일본해 표기를 함께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교민 독도 전문가 홍일송씨가 책을 펴내고 모국을 찾았다. = 임혜현 기자
더욱이 버지니아주는 일본에서 큰 투자를 하고 있고 교류가 많아 반일 행보로 낙인찍힐 행동을 무턱대고 진행할 수는 없다. 감정에만 호소해서는 안 되고, 한국과 일본 교민이 모두 사는 상황에서 그냥 편하게 중립이 아닌 한국 교민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복잡다단하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를 들어 일본인들이 먹는 콩의 상당 부분이 버지니아 콩입니다. 버지니아 경제에서 일본은 그야말로 물주지요. 그러나 미국에서는 유권자들을 두려워하는 정치인들의 정신이 살아있습니다. 나는 유권자 누구이고, 왜 이렇게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런 안건에 내 구역 정치인인 당신이 찬성해야 한다고 본다고 조목조목 주장을 하면 꼼짝을 못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설득이 되고, 그 힘이 모이면 거기에 찬성을 해줍니다. 그게 우리 운동의 밑천이고, 그걸 인정해주는 게 미국의 힘이죠."
지루한 반복 세뇌 학습과 표를 의식하게 하는 압력으로 정치인들을 다룬다는 것 같지만, 논리 전개에서 우선 타당하고 또 빈틈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그가 택한 게 바로 동해 문제와 독도 문제의 분리 접근이다.
"한국에서는 대단하다고 칭찬해주면서도, 한편 왜 동해 내지 한국해 단독표기가 아니라 일본해와의 병기(함께 표기) 운동을 벌이냐고 물어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미 일본해로 국제적 표기가 굳어져 있기 때문에 이걸 일시에 감정적으로만 되찾아온다고 해서는 외국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가 오랜 자료 공부와 토론, 연구 끝에 개발한 접근법이 동해라는 표현의 가장 시원적인 의미를 부각하는 것이다.
◆'거북선 모형' 앞세운 독립기념일 행진 그 후, 경제학자 꿈 접어
"동해는 한국인들이 동쪽에서 봤을 때 동쪽 바다가 아닙니다. 그런 식의 주장으로는 '우리 동해'를 찾아올 수 없습니다. 서양인들이 (대항해시대 이후) 팽창할 때 멀리 동쪽을 바라봤을 때 동해라는 생각이 녹아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걸 일개 국가명으로 부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해야 합니다. 적어도 병기를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의 뜻, 그리고 전략이 주효해 이룬 결실이 바로 버지니아주 공립 교과서 표기상의 변화인 것이다.
그가 이 문제에 긴 세월 매달려온 것은 바로 독도 영유권 시비 때문이다. 동해 문제를 풀지 않으면 독도 주장도 국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동해를 먼저 찾아오고, 독도는 그 다음'으로 뜻을 세웠다.
"일본인들이 독도 문제를 공격할 때 가장 기본적인 논리가 일본해에 있는 섬이니까, 라는 식의 접근입니다. 이걸 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동해 되찾기에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의 생각처럼 기왕 하는 운동 아예 일석이조로 독도와 동해를 한꺼번에 목표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그는 본다.
"독도는 우리가 점유하고 있지만, 반대로 동해는 우리가 명칭을 갖고 있지 못하고 되찾아와야 하는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지키고 공격하는 방법론상에서 한꺼번에는 다루기 적합하지 않다.
이런 냉철함의 소유자지만 불가능해 보이고 일신의 영달에는 그다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 운동에 긴 세월 매달려온 열정도 동시에 갖고 있다.
바다에 관한 가장 오래된 조직적 활동, 그리고 리더십의 발휘를 찾아 올라가자면 1985년 워싱턴 지역 대학 한인 학생회장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따지면 만 30년 이상의 활동이 된다.
1981년 메릴랜드대에 입학한 그는 유명한 경제학자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책등에 새겨진 저서를 미국 학생들 책장과 도서관 서가마다 꽂겠다는 구체적인 꿈도 있었다.
하지만 워싱턴 지역 대학 한인 학생회장을 거쳐 1987년 재미 민주민권협의회 회장을 지내면서 한반도 밖에서 보는 대한민국의 위상과 인권, 그리고 이와 관련해 외국에 사는 교민이 현지에서 누리는 인권과 대접 문제에 매달리면서 이 꿈 대신 교민 네트워크와의 긴 연애가 시작됐다.
고(故) 박종철씨 변사 사건 이후 민권에 초점을 맞추던 그는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차차 교민의 인권과 처우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된다.
1985년 일본 교민들의 세에 늘 눌려있던 우리 교민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미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대형 트럭 크기의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참여한 것은 지금도 동부지역 교민 사회의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바다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동해 표기 추진위원장, 문화유산국민신탁 미주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늘 바다 그리고 독도 문제의 첨병으로 활동해왔다. 버지니아주 한인회장을 지내고 또 이례적으로 이를 역임한 것도 모국의 가장 아픈 구석을 긴 호흡으로 매달리는 점, 그러면서도 단체 본연의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검증된 입소문이 늘 공존했기에 가능했다.
그런 그를 지켜본 이들은 그를 '돈, 그리고 정치인과 불가근 불가원하려 노력하는 인물'로 평가한다. 메릴랜드대 학맥 때문에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인연이 있지만, 그는 이를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 각종 교민 활동 중에 당시 군사정부 쪽과도 그랬지만, 이 시절 미국에서 망명 생활하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진영과도 일정하게 거리를 뒀다. 각종 운동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때문에 잡음도 낳는 돈 문제도 최대한 맑게 관리하고 있다.
◆돈과 거리두고…미주 누비며 글 쓴 '독립운동가 서재필' 잇는다
"적게 먹고, 먹게 움직이고, 의식주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어서 그렇지요. 나머지는 오래 이런 활동을 하면서 쌓은 네트워크의 힘과 도움으로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비결이랄 것도 없고, 그뿐이에요."
오래 활동하며 미국 각지, 그리고 세계 각지에 교분을 쌓은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과정에서 냉철한 전력가적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교포들의 힘과 선함을 믿는 한없는 긍정론자로 거듭난다. 그를 처음 만나고 대화하는 중에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듯 다채로운 단면이 교차해 나타나는 이유가 이런 점이다.

경제학자의 꿈을 접고 독도 지킴이로 살아온 궤적을 책으로 펴낸 홍일송씨. = 임혜현 기자
그런 그의 활동을 중간결산하는 작업이 이번에 펴낸 '찾아야 할 동해 지켜야 할 독도(2016년 12월, 도서출판 '느낌이 있는 책' 펴냄)이다. 편안한 의사의 길을 접고 다시 조국의 어려움에 응답해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처럼 글을 쓰고 미주 각지를 누비며 활동을 하고 있다. 선생은 의사 경력과 사업가 생활을 통해 얻은 자금으로 누구보다 당당하고 정력적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다.
비슷한 궤적을 걷고 있는 그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에게 이런 점을 묻자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꼭…"이라며 '다음'을 기약한다. 자신이 이루면 좋고 영광이겠지만 어쨌든 더디더라도 꼭 이루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에게는 목표가 두 가지라 선생 대비 불리하기 때문이라는 '계산'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풀이다.
생전에 우리에게 독도 영유권이 있다는 국제적 인정, 일본해 표기 일색의 지도를 지구상에서 모두 없애고 적어도 동해 표기를 함께하는것을 그가 이룰 수 있을까? 찾동지독 운동(찾아야 할 동해 지켜야 할 독도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속도로 봐서는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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