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파면됐지만 탄핵 불복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정국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주요 잠룡들은 자당의 경선후보 등록 일정 등을 검토하면서 향후 정국 구상과 대중을 향한 메시지 전달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명 '장미대선'이 제대로 된 공약 없는 선거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말 선거를 예상하고 있던 정치권이 갑자기 탄핵 이슈에 말려들었기 때문.
192일간의 레이스 끝에 헌법재판소가 결과물을 내놓는 동안 정치권에서도 경우의 수를 상정, 준비를 앞당기는 문제에 나름대로 매달렸지만 당별 파벌 문제나 일부 인사들의 이합집산 문제로 의미있는 생산 활동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총평이 우세하다.
탄핵에 불복하는 친박(親朴·친박근혜) 진영에서 사실상 바라는 가장 강력한 카드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무죄 판결 등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뇌물죄 등 형사법 위반 문제는 원래 소추 사유 중 하나였으나, 국회 측에서 2월 들어 철회했고 이에 대해서는 집중적인 검토와 논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경제공동체' 등 그간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게 씌워진 부패 문제와 이에 대한 관리 책임 등의 자세한 내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권을 바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이처럼 힘을 강하게 받고 있는 파면 상황 부정이 명분 확보로 치달을 것이라는 대목이다. 탄핵 정당성 부인 관련 이슈 자체는 지지층의 노력을 등에 업고 가더라도, 또 다른 세력의 규합 내지 암묵적 협력을 얻지 못한다면 대선 와중에 존재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야권의 공세로 민생법안이 대거 사장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반격하는 투트랙 전략이 구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온다.
◆민생법안 외피 때문에 야권 반발 상쇄 가능성 일석이조
'특별연장근로 허용'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손질 이슈, 복지지출을 다소 줄여서라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메우자는 법안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는 재정건전화법 구상, 지역별 특화산업을 위한 규제 대폭 축소를 추진하는 규제프리존 설치 안건 등이 박 전 대통령의 창조경제 법안들로 분류돼왔다. 이들 못지 않게 핫이슈로 부각됐던 안건이 바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이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처리를 촉구하는 1인시위 모습. ⓒ 서비스산업총연합회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법안의 취지, 그리고 이에 수반될 파급효과 추산치 등은 눈길을 끈다. 한국개발원(KDI)은 2015년 4월 서비스산업 발전의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서비스산업이 미국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발전한다면 2030년까지 69만1700명의 취업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견이 있다. 미국은 서비스 수출입 규모로 세계 1위다. 즉 이 보고서는 우리 나라 서비스 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한다는 가정 하에 수치를 추정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서비스산업과 관련 이번 기본법과 같은 초강수를 띄워도 100% 기대치를 얻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는 의견이 그래서 나온다. 원론적 보고서를 아전인수하지 말자는 경계심리인 셈이다.
다만 서비스산업총연합회에서 지난해 3월 1인시위를 진행하는 등 이를 바라는 업종 종사자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선 상황과 맞물릴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로 주목되고 있는 것.
◆의료 넣자는 아이디어 아니냐 논란, 日 같은 경제효과는 탐나는데…
2011년에 서비스산업발전법안은 처음 제출됐다. 그간 부침을 겪었지만 '서비스산업' 전반을 육성해 침체된 한국경제를 살리자는 구상을 담고 있어 박근혜 정부의 경제관이 오롯이 담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에 전방위 공략이 가능하도록 짜여진 상황이라는 풀이도 가능한 상황이다.
서비스산업에 관한 정의부터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 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을 말한다'고 하고 있다(법안 제2조). 야권에서는 그래서 이 법안을 정부가 대통령령으로 서비스산업 범위를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보건·의료를 포함하려는 술책으로 의심한다.
더욱이 법안 제3조도 '서비스산업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해 국회 통과 시 서비스산업발전법에 방해가 되는 모든 법률들에 앞서게 된다. '의료 민영화 추진'의 도깨비 방망이로 기능할 수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이유다.
야권에서 대안 제출을 통해 의료나 보건 영역에 대해서는 이 법 적용을 배제한다고 방어막을 치기는 했으나, 원안과 대안 등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와중에 단순히 다수결 원칙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특히 대선 상황과 맞물리면 얼마든 다른 방향으로 문제가 풀릴 수도 있다. 유권자 표심이 쏠리는 경우 어려운 문제로 공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야권 일부 인사는 이명박 정부 탄생을 막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도표가 복잡하며 기본적으로는 법리 논란인 BBK 이슈를 주요공격무기로 택한 게 자충수로 작용했다고 풀이한다. 이번 서비스 관련 일반론과 의료 민영화 반발이 그런 구도로 흘러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가장 나쁜 상황은 친박에서는 실제 법안 통과가 되지 않더라도 이를 부각해 자신들의 '우국충정'만 어필해도 나쁠 게 없는, 잃을 게 없는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의료 민영화가 속셈이라고 아예 '커밍아웃'을 해도 상황이 나쁘지 않다.
지난해 11월 KOTRA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일본의 의료·헬스케어 산업: 한일 경협방안 및 대일 진출 전략'을 발간했는데, 여기서는 일본의 헬스케어 산업은 의료제도 개혁에 힘입어 제조업에서부터 서비스업까지 다양한 업체가 참여하며 급속히 확대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경제 장기화로 침체된 터에 이 같은 정책 방향 자체가 왜 나쁘냐는 측의 논리 자료로 활용되기 딱 좋은 보고서다.
2014년 보고서가 원론적인 분석과 예측이었다면 2016년 12월7일 나온 자료는 KDI의 내심이 의료 및 관련 산업의 활성화(민영화)에 더 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더 높다. 이 자료에서 KDI는 "서비스업 발전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상황에서 규제개선의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 금융, 관광 등 유망 분야에 정책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KDI는 "원격의료의 경우 원격진료와 더불어 의료기기 판매사업, 의약품 제조·배송, 건강관리서비스, 개인질병정보를 활용한 보험상품 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신규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앞선 작년 7월, 정부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서비스경제 발전전략'을 확정·발표했는데, 이 방안에는 국내 서비스경제의 수준을 높여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려는 목적을 천명하고 구체적으로는 △서비스-제조업의 융합발전 △서비스경제 인프라 혁신 △7대 유망서비스업 육성 등 세 방향의 추진전략을 마련했다.
특히 이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의료·관광·콘텐츠·교육·금융·SW·물류 등 7대 유망서비스업 육성을 통해 25만개의 일자리를 추가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원격의료 허용, 산악관광진흥구역 도입, 인터넷전문은행 지분규제 완화 등 46건에 달하는 유망서비스산업 규제를 내년 6월까지 재검토해 개선방안을 제시키로 했다.
KDI의 뒤이은 연말 자료는 이 정부의 여름 발표 방안을 엄호하려는 것으로까지 오해를 살 수 있다.
◆의료 민영화 커밍아웃할 '용자'는 누구? '말려들' 사람은 이미 충분
물론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동정심을 표명하고 보수의 적통임을 자부하는 것과, 박근혜 정부의 시책을 고스란히 반영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작년 8월4일 오후 요양시설 원격의료 시범사업 기관인 서산효담요양원을 방문, 요양 어르신에 대한 원격의료 시연을 참관하고 있다. ⓒ 청와대
최근 자유한국당 당원권 회복으로 대선 출마 가능성을 더 높이게 된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쇄 문제로 이미 공공의료 개혁 이슈의 아이콘이 된 상황이다.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자는 점에서 의료 등 이슈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료 민영화 등 제도 손질 아이디어를 담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 관련 논쟁이 불거지거나, 반대 진영에서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식으로 불손한 공세가 들어올 경우 반발심리로 말려들 여지가 있다.
또 다른 자유한국당 대선 출마 희망자 중 한 명인 안상수 전 인천광역시장도 이 이슈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긍정적 입장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일명 친박과 거리감을 두려는 태도를 보인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소위 친박들이 위세를 떨칠 때 당에서 공천 배제를 당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다. 새누리당과 신한국당의 보수 적통을 (제가) 이어가면서 일정 부분 피해도 받았다"고 주장할 정도다. 그러나 강화의료복합단지 추진 등 이력을 볼 때, 필연적으로 이 이슈에서 선봉장 역할을 할 여지가 있다.
심지어 반(反)박근혜 보수파의 아이콘인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조차도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2015년 6월 '원격의료 필요성 대두 발언(새누리당이 존재하던 시절로, 당시 그는 원내대표를 지냄)'을 내놨다가 의사들의 모임 중 하나인 대한의원협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결국 서비스의 속성에 의료나 헬스케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의 문제 그 이상의 폭발력을 갖춘 고장난 시한폭탄이 바로 문제의 법안인 셈이다. 친박을 정치적 폐족 상황에서 구하는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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