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통의 '렌탈 명문'이 드러낸 민낯은 경악스러웠다. 코웨이 정수기의 얼음정수기 일부 기종에서 미량의 니켈 가루가 혼입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이 업체가 사실상 1년 이상 이를 은폐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드러난 뒤에도 '배짱성 사과문'을 공지하는 등 공분을 샀는데, 이 같은 행보의 뒤에는 약관상 허점이 작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더욱이 이 같은 해석상 허점을 만든 작업이 과거 회사 매각 전인 웅진코웨이 시절의 약관 문제점을 고치려다 우연히 발생한 것인지, 각종 법규의 허점을 최대한 악용하기 위해 개정을 빙자해 의도적으로 개악을 한 것인지 규명 필요도 있어, 후자일 경우 집단소송시 이를 모두 검토할 필요도 요청된다.
◆웅진코웨이 시절 갑질약관이 오히려 낫다…왜?
코웨이는 웅진 계열사인 웅진코웨이가 모태가 된 것으로, 그룹 위기로 매각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과거 웅진코웨이 시절의 '코디' 인력 시스템 등 대부분의 기틀을 이때 닦아 현재의 코웨이에서 변화를 가미해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거부터 논란 소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선 아닌 개악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웅진코웨이 시절 정수기 렌탈 계약에 사용되던 버전의 약관(Ver. Ba100712)을 보면, 제3조에서 제품의 인도 및 설치, 철거를 규정해 그 5호에서 '을은 상품의 인수·설치 완료 즉시 계약서에 서명 날인 후 1부를 교부받아야 하며 이때 상품의 상태, 성능이 정상적인 것을 확인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하는 등 내용을 밝히고 있다.

과거 웅진코웨이 시절 사용되던 Ba100712 약관. ⓒ 코웨이
이어서 이 당시 약관은 제8조 담보책임에서 '을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하여 상품이 고장·훼손된 경우에는 을은 갑에게 무상으로 수리 및 부품교환을 요청할 수 있으며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구 버전의 '정상 확인 간주' 내용은 소비자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것이다. 리스에 관한 판례 중에는 이런 정상물 인수 간주 규정의 효력을 그대로 인정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996년 8월에 나온 대법원 95다51915 판결 등이 그 예다.
이에 후의 코웨이 약관(예를 들어 약관 CSJ01150101)은 이 규정을 없앴다. 이는 겉으로 보면 소비자에게 상당히 유리한 방향으로 개선된 것 같지만, 함정이 있다.

웅진코웨이 시절 약관을 보면, 제3조의 정상 성능 간주 규정 같은 문제 규정도 있지만, 제8조 담보책임에서 배상, 수리, 교환 등을 폭넓게 약정한 점을 알 수 있다. ⓒ 코웨이
우선 정수기 렌탈 계약이 리스인지, 렌탈인지가 문제가 되므로 이 부분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현재는 이들 간의 경계선이 서로 희미하다고 하지만, 일말의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면 치과의사가 의료기기를 설비하는 경우 금융리스를 주로 이용하고, 일반인들이 자동차를 리스하는 경우 운용리스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정수기 등의 물건은 렌탈로 흔히 보고 있다.
금융리스는 리스이용자·리스업자·공급자 3당사자 간의 계약으로 리스이용자가 선정한 물건을 리스업자가 리스공급자로부터 새로 취득 또는 대여하여 리스이용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판례는 무명계약으로 본다. 따라서 임대차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편, 운용리스는 리스업자가 새로 취득 또는 대여받은 물건을 리스이용자에게 대여하는 것으로 민법의 임대차 규정이 적용된다. 렌탈의 경우 임대차로 해석한다.
정수기 렌탈의 경우, 과거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서 당사자 사이에 정수기를 매매한다는 의사가 명확하게 표시되거나 매매대금을 정한 사실이 없고, 일정한 위약금을 부담하고 중도 해지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는 점을 고려해 할부매매(리스)가 아니라 임대차의 성격을 갖는다고 판단한 선례가 있다.
사실상 정수기 렌탈의 경우, 위의 금융리스에만 인정되는 하자담보책임 제한 약정 항목을 약관에 그대로 유지해도 실제 분쟁시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후에 없애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를 위해 현실적으로 보장된 이익을 포기한 '통큰 결단'이 아니라, '갑질 논란'을 불러올 만한 데다 사실상 효력 발휘도 어려운 요소를 가지치기한 데 그치는 셈이다.
문제는 이와 함께 소비자를 위한 담보책임은 줄어들도록 미세조정이 함께 이뤄졌다는 점이다.
Ver. Ba100712 약관 제8조에서 수리, 교환 및 배상 청구 가능성을 모두 언급한 바와 달리, CSJ01150101 약관은 제7조에서 이 책임을 다루면서, '고객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하여 고장, 훼손된 경우에 고객은 무상으로 수리 및 교환을 요청할 수 있다'고만 한정해 배상 가능성을 아예 닫아 놓았다.
렌탈 시 민법상 담보책임이 적용된다는 점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나, 이 같은 매도인의 담보책임에 관한 민법의 규정은 거래의 상대방, 즉 매수인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보충적 규정'이지 '강행 규정'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당사자 간의 특약으로 매도인의 담보책임을 배제·경감 또는 가중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볼 수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2015년 7월 기준 새 약관에서 다시 제7조 하단의 제3호에 '기타 담보책임은 품질보증서에 따르고 그 이외 사항에 관해서는 민법 등 법령에 따른다'고 해 여전히 담보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대전제'로 책임 없는 사유 발생의 경우에도 배상 책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교체, 수리 등만 명시하면 이는 (배상 책임은 면하게 해주는) '특약'이 된다고 보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다.

2015년 7월 기준 새 코웨이의 정수기 약관. 하자담보책임이 줄어드는 내용이 들어가 사실상 특약화함으로써 책임을 줄였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 코웨이

2015년 7얼 기준 새 약관이 제7조처럼 변화하면서 소비자들은 여러 피해에 노출되게 된다. ⓒ 코웨이
특히나 애초 과거에는 배상 가능성 등을 열어두던 약관을 고쳐, 일부러 위와 같이 손질한 경우 그런 코웨이 측 의사를 가정할 필요가 더욱 커질 것이다.
한 법조 관계자는 "아이폰처럼 리퍼만 해주고 환불을 결코 안 해주는 경우와 비슷한 내용의 계약도 가능하다. 그런 관점에서 (배상 가능성 등) 일부 선택권을 줄이는 약관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 경우 사안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배상은 배제하는 특약으로 못 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두 약관을 비교하면, 내놓고 갑질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웅진코웨이 시절의 약관보다 오히려 뒤의 버전이 더 소비자 보호에 허점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만약 이번 니켈 유출 건에 적용해 본다면, 확연히 차이가 드러난다. 배상 책임이 아예 없이 수리와 교체 등만 해주면 된다는 쪽으로 개악이 이뤄진 것이어서, 현재 코웨이처럼 교체에 나섰다고 해도 비판 가능성이 줄어든다.
즉 소비자에게 대대적으로 공지를 할 경우 '배상 등 여러 문제 확대 가능성이 있어서 몰래 쉬쉬하며 처리한' 것과, 원래 부담하는 교체와 수리 등의 업무를 '단순히 조용히 처리한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약관 수정으로 제조물책임법-약관규제법 허점 극대화
이처럼 약관 변화가 이뤄져온 상황은 현재의 약관규제법과 제조물책임법 등의 허점과 결합하면 소비자 보호에 큰 구멍을 만들 수 있는 부정적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코웨이 측에서 이런 문제를 관찰,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이런 약관 손질을 한 게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되는 이유, 더 나아가 앞으로 다른 렌탈사가 이런 악용에 나설 가능성도 여기에 있다.
약관규제법은 제6조 제1항, 제2항 제1호에 따라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신의칙에 반해 공정을 잃은 약관 조항은 무효로 못 박고 있다.
또 제조물책임법은 제3조 제1항에서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그 제조물에 대하여만 발생한 손해는 제외한다)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정했다. 또 다시 그 법 2조에서 설계상의 결함으로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채용하였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아니하여 해당 제조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 책임을 밝혀 놓았다.
하지만 이런 규정들에도 막상 실제 문제 사안들을 보면 약관의 무효화를 선언하거나 이를 뛰어넘어 배상 책임을 묻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우선 금융기관들이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고객들에게 떠넘기게끔 정한 내용이 약관인지 여부, 더 나아가서 이런 규정을 무효 약관으로 바로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2014년 6월 대법원은 "약관인 것은 맞으나 신의칙에 위배돼 무효라고 할 정도의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한 바 있다(대법원 2013다214864 판결).
대법원은 또 제조물책임법의 경우도, 이른바 '고엽제 사건'에서 설계상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인과관계라는 그 다음 잣대를 적용해 고엽제 제조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바가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면 결국 렌탈 등의 경우 잘못된 약관을 적용하더라도 제조물책임법이나 약관규제법상 무효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약관상 담보책임 경감 특약 등의 효력 문제에서 발목을 한번 잡히면, 예를 들어 이번처럼 극히 미세한 양이라도 니켈 가루 등이 검출된 경우 이 자체를 '제대로 된 음용수가 이미 아니기 때문에' 피해 발생이라고 넓게 해석하는 것은 물론, 배상 청구도 불가능해지는 등 연쇄 파장이 일어난다. 또 이를 문제삼고자 약관 조항을 무효화하는 등 다른 법을 활용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에서 코웨이 측이 일종의 '배짱성 사과'를 낸 데에는 이런 점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그간 이뤄진 것이 굳이 이번 니켈 검출 건 같은 '특정 사안을 상정해' '좁은 의미의 고의'로 이뤄진 조치라고 단정하기는 물론 어렵다. 다만, 소비자 보호의 폭을 제약하는 쪽으로 또 현재의 여러 특별법의 허점을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큰 틀에서 변화가 이뤄진 '경향성'과 '개괄적 고의'는 추정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괴물 약관'이 실제로 일말의 의도가 아니라, '전적으로 우연히' 여러 개정 변화 속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그 실질적 폐해와 활용 가능성이 이번에 드러난 만큼, 손질을 해야 할 지적도 유효하다.
본지에서는 코웨이 측에 과거 웅진코웨이 약관의 인도, 설치, 철거 조항이 배제된 사유가 없어진 점 등 일련의 변화 배경에 대해 듣고자 했다. 다만, 지난 7일 오전 문의했으나 "해당 부서에 확인해 보겠다"는 설명 이후에는 11일 오후까지 명시적인 답이나 해명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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