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서민금융진흥원이 올 가을 위용을 드러낼 전망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그간 초미의 관심사였다. 미소금융·햇살론·국민행복기금 등 제각기 운영돼온 서민금융 지원업무를 일원화해 효율성을 제고하자는 기획 아래 준비됐고, 최근 휴면예금관리재단의 설립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내용의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금융위원회는 관련법안이 계류 중이던 상황에서도 이미 정책서민금융 공급 규모를 2018년까지 22조원 규모로 잡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내놓는 등 서민금융진흥원 시스템 도입을 전제로 정책 아젠다를 제시해왔다. 특히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8일 서민금융 관계기관 기관장을 초청해 연 간담회 자리에서 서민금융진흥원 설립을 9월 중순까지 차질 없이 진행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서민금융진흥원 태동 상황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원스톱으로 서민금융을 관장, 주도하는 방식이 과연 효과적일지에 대해 우려가 존재한다.
실제로 채무를 조정하는 기구와 자금 대출 기능들을 모두 '진흥원 깃발 아래'에 모으는 안은 없던 일이 됐다. 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6월23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조사해 봤더니 (서민금융 틀로) 자금을 공급하는 것 중 실제 채무조정 대상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아주 미미하다"고 반박한 바 있다.
하지만 이해상충 논란을 반영, 결국 신용회복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법적 위상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금융소외에 대한 만능키 역할을 서민금융진흥원에 기대하고 모든 것을 짐어삼킬 조직을 만드는 게 긍정적일지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금융소외 해결 필요성 높지만…
소득이 적고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이 제도권금융으로부터 소외되는 일명 금융소외(금융배제)는 과거에는 신자유주의 병폐 현상으로 주로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유럽권보다는 주로 영국이나 미국에서 일부 관찰돼왔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겪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시달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6월 서민금융 관련 간담회에서 서민금융진흥원 출범 필요를 역설한 모습. ⓒ 뉴스1
하지만 이 같은 정책 집행에도 불구하고 금융소외에 시달리는 계층이 아직도 큰 규모로 존재한다. 임수강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해 6월 한 세미나에서 금융소외 인구 규모를 "대략 성인 다섯 명 가운데 한 명꼴"이라고 추산했다.
특히 금융소외는 가계부채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 속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문제는 현재의 가계부채 등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올해 들어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소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은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방안보다 주택시장 둔화가 영향을 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9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70%에 근접했다는 점을 부채상환 여력으로 연결해 해석, 가계부채 문제가 질적으로 악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가계부채 특히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는 교육비나 의료비, 출산 등에 수반되는 내용 즉 사회보장에 의해 해결돼야 할 비용 중 일부를 개인이 떠맡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복지제도가 없거나 부족하거나 심지어 후퇴하는 경우에 저축이 없는 개인이 생활자금 문제로 빚을 지거나 늘리는 경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대해 서민금융을 맡는 기구가 금융소외를 풀려면 복지 문제를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방의 역할'까지 잠식 가능성
이에 따라 이번에 마련, 통과된 법안 역시 서민금융진흥원의 역할(제24조)에서 서민에 대한 신용보증 및 자금의 대출(해당 조항의 4호)에만 한정하지 않고, 서민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취업 및 금융상품 등의 알선(2호)을 예정했다.
또 8호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서민금융지원센터에 대한 자금 지원을 거론하는 등 여러 측면을 규정했다.
이에 지자체의 역할이 제약되고 사실상 서민금융진흥원의 도구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법에 따른 대통령령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명 지자체가 운영하는 서민금융지원센터'가 어떤 모습과 역할, 범위를 가지게 될지는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경험 사례를 보면, 서울 도봉구가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 등 서울시의 관련 케이스가 두드러진다. 도봉구는 구청 내에 금융복지상담센터, 일자리센터와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법무부파견 홈닥터 등을 한자리에 두고 주민들이 금융과 복지, 고용 문제를 원스톱으로 의논, 상의하도록 한 바 있다.
현재의 새 법 시스템에 따르면 서민금융진흥원이 모든 것을 관장하거나 이에 지원을 하면서 상위기구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생긴다. 기존에 있던 각 광역 내지 기초 지자체의 각종 금융과 고용 주선(촉진) 모델 즉 자생적 모델까지도 중앙의 울타리 안에 일원화되거나 틀 밖의 외로운 독립적 모델 신세로 별화될 우려도 제기된다.
이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해온 경험과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의 경우는 서민금융의 어려운 사정을 해소해주기 위해 국민생활금융공사를 포험한 4개 기관의 역할을 통합, 정책금융공사를 2008년 10월 탄생시켰다. 이 부분만 보면 서민금융진흥원으로 일을 몰아주는 우리 시스템과 유사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일본 정책금융공사의 국민생활사업부가 자금 융통이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생활자금 등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과 별개로, '지역밀착형 금융'의 역할은 별개로 갖고 간 바 있다.
일본 금융청은 2003년부터 지역금융기관들을 활용한 지역밀착형 금융서비스 제공을 위한 제도('릴레이션십 뱅킹의 기능 강화에 관한 실행 프로그램')을 실시했었다. 정부 주도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대신 지역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8년 8월에는 금융심의회에서 '중소, 지역금융기관의 종합적인 감독지침'을 고쳐 한시적이었던이 프로그램을 항구적 감독체계로 바꿔 중앙의 공사 시스템과 지역의 역할(금융기관)이 투트랙으로 어우러지는 상황이 됐다.
미국 역시 지역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그 역할을 촉진한 경우다. 1980년대 후반에 저축대부조합 위기로 인해 미국 여러 지역에서 작은 지방 금융기관들이 문제를 경험한 뒤인 1994년에 오히려 '지역개발은행과 금융기관법'을 제정, 지역개발 금융기관(CDFI) 펀드를 설립했다. 미 의회의 예산 결정을 통해 수혜자를 연단위로 결정하므로, 중앙기구에 의한 지방의 역할 잠식보다 한층 민주적 통제 이념에 부합한다.
◆'민과 관' 협력 모델 필요…한국이지론의 미래는?
모든 게 금융위가 사실상 주도하는 관치금융 스타일로 처리될 수 있다는 점도 향후 불식시켜야 할 기우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일반금융기관에 접근이 어려운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금융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CDFI(미국과 명칭이 같음을 참고하면 유사조직임을 짐작할 수 있다)들이 성공적으로 출발, 정착시킨 것도 의미심장하다.
영국의 대부분의 CDFI들은 자선조직이나 신탁 등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해당 지역사회 범위 내에서 관련 공공 내지 민간 각 요소들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소규모 융자사업을 추진한다. 민·관 협력 방식(PPP)으로 창업 의지와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자금을 일반적인 은행 대출로 조달할 수 없는 경우, 금융소외자에 대한 대출을 주로 지원하고 있다.
CDFI들의 재원 중 일부는 정부 보조를 받기도 하나, 기본적으로는 민간의 자금 역할을 중시한다. 즉 개인이나 기업이 자금 투자를 하고 그 부분에 대해 당국이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민과 관이 함께 역할을 하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출범하는 서민금융진흥원으로 흡수되는 여러 기능 외에도 한국이지론 등 자생적 민·관 협력 모델이 자칫 새 제도에 휩쓸려 들어가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이지론은 시중 여러 은행 등이 자금 참여를 해 설립한 공적 대출중개회사로 특이한 위상을 지닌다. 신용도와 소득을 판단,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대출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중개회사다.
특히 고객의 대출상담을 내용 정리를 통해 제휴, 가장 낮은 금리로 제도권 내에서 금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경매 방식'으로 개인과 금융기관의 주도적 의사 결정을 하게 한다. 낮은 금융비용으로 서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있어 새로 탄생하는 서민금융진흥원과도 윈윈할 여지가 높다.
하지만 현재 각 지역밀착 금융기관이나 지자체 역할까지 위축시킬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 상황이라 이 같은 민·관협력 시스템 등에까지 부정적 여파가 닥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때문에 민과 관의 건강한 역할 정립, 중앙과 지방 간의 역할 존중 및 거대 규모의 시중은행과 지역밀착 금융기관 간 역할 분담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일본 등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이제 시행에 막 들어가는 서민금융진흥원 시스템이 관치금융으로 모든 걸 책임져 나가는 결과물로 치닫지 않게 부지런히 논의를 해 나갈 숙제가 다음 20대 국회에 주어진 셈이다.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