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중국 진나라 시황제(BC 213년). 권력에 대한 과도한 욕망은 대의명분이라는 위명아래 의약서와 농서 등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서적을 불태우고 만다.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
로마제국의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와의 눈 먼 사랑은 페르가몬의 장서 50만권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이전, 이집트 멸망과 함께 모래더미 속으로 사라지게 한다. 근세로 돌아와 1933년. 국우민족주의를 주장한 히틀러는 비독일 정신에 대항하는 행동의 일환으로 토마스 만, 프로이트, 슈바이처 등의 서적 수 만권을 불태우는 파행을 자행한다.
역사상 폐왕(廢王)으로 분류되는 이들. 이들이 분서(焚書)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 모습이 다양한 형태를 지니지만 권력을 보다 강건히 지키기 위한 목적은 같을 것이다. 그것이 때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뤼시앵 폴라스트롱(Lucien X. Polastron)은 저서 <사라진 책들의 역사>에서 책들의 수난사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역사상 무수한 책이 벌레, 홍수, 화재,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지만 책의 파괴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한 부분은 바로 인간의 의도적인 파괴였다고 말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에서처럼 민중의 우민화를 위해 자행되기도 하고, 정복자가 피정복국가의 역사와 신앙을 바꾸기 위해 책들이 불살어지기도 하며, 종교적인 원인과 이데올로기의 분쟁 속에서 책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난 이러한 책들의 사라짐 속에서 책, 즉 독서의 힘과 중요성을 발견한다.
책이 역사 속에서 찬양과 때론 지탄과 억압의 대상이 됐던 이유가 바로 책이 지식을 얻는 최고의 수단이요, 재능과 때론 특정 이데올로기적인 믿음을 심어주는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의 위력에 천하를 호령했던 군주조차 불안해 떨지 아니했던가.
하지만 최근 다른 의미의 분서(焚書)가 우리의 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UN의 통계결과에 따르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이 연평균 7권의 책을 읽는데 반해 한국인은 1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166위에 해당하는 아주 낮은 순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은 하위권 순위를 넘어선 스스로에 대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책을 안 읽었나?”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순위인데?”하는 의구심을 잠시 접어두고, 스스로 책을 가까이 두고 읽은 지 얼마나 됐는지, 또한 책을 보기 위해 도서관이나 서점을 들은 적이 얼마나 있는지를 되짚어보자. 대다수가 이내 고개를 떨구지않을까.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이다.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의 힘과 경쟁력은 ‘정보와 지식’의 효율적인 생산과 가공에 의해 판단된다. 이러한 정보와 지식은 책으로부터 시작됨은 물론이고 말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1/7밖에 미치지 못하는 독서량으로 어찌 그들과 견줄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을까. 인구 10만 명당 1개꼴밖에 되지 않은 적은 수의 도서관과 동네 어귀의 작은 서점들의 부재. 하지만 이들을 이유삼고 탓하기 전에 책은 할일 없고 시간 많은, 혹은 부유한 자들의 여유라 여기고 방관하고, 성과위주의 알맹이 빠진 교육에 집중해 책을 경시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올바른 교육을 제창하며 고려이스쿨과 같은 교육회사들이 학원 내 도서관설립을 지원하고 책 읽는 사회, 지식이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 노력, 캠페인 등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봤는지를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강조하건데 창조적인 인재. 그리고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정립된 안정된 사회와 지식강국 등은 책을 우리 생활 속에 가까이 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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