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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찬찬히읽기]봄을 찾아서 - 이재무(1958~)

 

프라임경제 | don@krfutures.co.kr | 2007.06.02 14:24:40

[프라임경제]봄을 찾아서 - 이재무(1958~)

스무 해 전 훌쩍 버리고 온 집 찾아가
불들인 지 오래인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아
텅 빈 구멍 속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살진 고요가 들숨날숨을 내쉬고 있다
배화교도가 되어 불 숭배한 적 있다
부뚜막 밖으로 뱀의 혀 되어
날름대는 불 속으로 마른 장작의 나날
불쑥, 던져놓고 두어 됫박의 재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때로 젖어 연기만 분주한 시간 태우며
분노에 시달린 적도 있다
그러다가도 파랗게 인광을 내는 불꽃에 놀라
주춤 물러선 적도 있다
생각해보면 막힌 구들처럼 아득한 날들이었다
그 해 늦겨울 솥단지가 아궁이를 떠나자
아궁이 속은 오래된 동굴처럼
쥐 몇 마리와 폐허만이 살게 되었다
모종과 유랑으로 이 도시 저 도시 배회하고
전전하는 동안 생의 뒤꼍에는 회한의 솔잎
소복이 내려 쌓였다
나 이제 다 늦은 생의 오후가 되어서나 돌아와서는
마당가 웃자란 잡초를 뽑고
송판마루 두껍게 쌓인 제비똥을 쓸어낸다
새로 들여온 솥단지에 물 길어다 붓고
삭정개비 주워 모아 불을 지핀다
그러나 불은 옛날의 신화를 알지 못한다
다만 긴 잠에서 깨어난 마음의 불씨 몇 토막
슬며시 눈 뜰 뿐이다
내일은 가라앉은 구들장을 다시 들이고
방 어지간히 데운 후 객지 벗이나 몇 불러들여야겠다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서 나는 전에 없이
마음 다소곳해지고 산간마을에 내린 첫눈과 같이
아직 죄를 모르는 순백의 영혼이 된다

<‘푸른 고집’ 중에서, 천년의 시작, 2004년>

 


 

천만이 넘는 서울 인구 중에 원래부터 서울에 살았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시인 아니라도,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두고 떠나온 집이 있으리라. 스무 해면 참 긴 것 같아도, 돌아보면 잠깐이다. 엊그제 결혼 한 것 같아도, 잠깐 사이에 아이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사람으로 철이 들어간다. 이제 아이들의 고향은 어른들의 고향이 아니다.

정부에서 동탄 동쪽에 분당급 신도시를 세우겠다고 한다. 강남이든 분당이든 일산이든 신도시이든, 고향 떠나와서 행복하게 살고들 있는가? 불 때서 밥 짓던 우리 부모들 수만 년 살아온 고향 버리고 떠나와서 행복지수는 좀 올랐는가? 시를 읽으며, 문득 고향 떠나온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선조들보다 조금은 올랐는가, 그것이 궁금해진다.

아직도 끝없이 오르는 서울 집값 따라잡지 못해서, 온통 눈길이 집값에만 쏠려 있는 사람들 적지 않으리라. 이번엔 좀 더 넓은 평수로 갈아타야지 하며, 틈만 나면 아파트 개발 소식만 뒤지는 사람들 적지 않으리라. 잠시 눈길 뒤로 돌려, 시인처럼, 솥단지가 아궁이를 떠난 지 오래인 집에 들러, 빈 아궁이에 솥 걸고, 구들 고치고, 정든 고향에, 타관에서 정든 벗들 불러다 술추렴이나 한 번 할 궁리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죄를 모르는 우리들 순백의 영혼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전무용/시인

1956년 충북 영동 출생
한남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3년 <삶의 문학> 동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희망과 다른 하루>(푸른숲)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시 전문 계간지 <시와 문화> 필진
현재 대한성서공회 번역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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