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기업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돌돌 말린 전선 다발과 몇 가지 장비, 셋톱박스 등을 옆구리에 끼고 '주말도 마다않고' 고객들을 찾아 IPTV 개설과 인터넷상태 불량 A/S 등을 처리해 주는 서비스 기사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소비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바로 그 대기업의 아래아래 그 아래에 있는 회사, 이름도 생소한 곳에 소속돼 일한다. 장비를 지급받는 것도 여의치 않고, 다쳐도 자기 돈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복장과 업무지시 등 간섭은 극심하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난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터뜨린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하도급 논란에 이어 올해 4월은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가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른바 서비스 기사들의 지위 개선 목소리가 노조 결성 형식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소비자가 어느 IT업체에서 산 물건을 고치거나, 서비스를 받기 위해 기사를 만나러 가거나 집으로 부를 때, 이 기사는 그 IT업체 소속이 아니다. 소비자는 어느새 그 회사에서 떼어낸 '**서비스'라는 회사를 상대하는 단계로 자기도 모르게 넘어가 있는 셈이다. 그나마 막상 일할 기사는 그 서비스사와 연관을 맺고 있는 그 아래의 또다른 작은 회사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전국에 각각 91개와 70개의 고객센터를 두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이 센터를 행복센터라고 부르고 LG유플러스는 고객센터로 칭하지만, 결국 이들 센터는 두 기업과 별개의 조직으로 법적으로 조직돼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즉 이들 센터는 두 기업과 1~2년에 한 번씩 도급 계약을 맺는 하청업체들이 운영한다. 원청과 하청 사이에 2~3개 센터를 동시 운영하는 '중간업체'도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먼저 불거진 삼성서비스센터의 협력업체들과 닮은꼴이다(소사장 제도 등 다소 다른 개념은 아래에서 다시 언급).
과연 이 구조는 소비자에게도 좋은 제도일까? 고용돼 일하는 사람에겐 그저 눈물의 제도가 아닐까? 직접적으로 고용할 경우에 질 여러 책임이 부담스러워 서비스회사를 떼어내고 그도 모자라 또 다시 반복해 가면서 하도급을 준 것으로 돼 있을 뿐이라는 비판이 출발하는 지점이 여기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고객서비스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측에 직접고용 등을 촉구하며 '희망연대노조' 산하에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를 출범시킨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다.
이들은 두 대기업이 도급의 형태로 협력사와 계약을 맺었으나 사실상 협력사 소속 노동자인 자기들을 대기업 소속 노동자인 것처럼 직접 근로 지휘감독을 했기 때문에 '불법 파견'의 즉 위장하도급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직접적 근로 지휘감독했으니 위장하도급 비판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10일 기자회견은 노조 결성을 알리고 사측에 근로기준법 준수,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촉구한 자리였다. 민주노총은 사측이 서비스센터의 인원을 결정해 이들에 대한 신입교육을 진행하고 원청의 복장·명찰·명함 등을 사용케 하는 등 사실상 직접고용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궁극적으로 직접고용을 통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게 이날 기자회견의 골자라고 할 수 있다.
상당수 비정규 기사들은 4대 보험료의 사용자분 및 퇴직금을 직접 부담하고 있고, 업무에 필요한 유류비나 통신요금과 자재 구입비 등도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만약 다칠 경우 모든 사고 처리 비용도 스스로 메웠다. 삼성서비스센터 소속 기사들의 경우와 유사하다.
이처럼 각종 비용이나 도구를 회사에서 주지 않는 것은 단순히 비용을 아끼려는 야박한 조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근로자성 인정 여부에서 원청측 근로자와 섞여 일했는지, 원청측 도구를 사용했는지 등 몇 가지 요소에 과거 법원이 상당히 주목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송 가능성을 대비, 빠져나갈 길을 만든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문제가 남는다. 사실상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는 논란이 여전히 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8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에서 입수, 공개한 '서비스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이미 2005년에 A/S를 전담하는 협력회사 직원의 급여와 직급/직책 체계를 직접 수립했다.
또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조사, 공개한 자료들(20일)을 보면 노조 가입을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는 등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SK브로드밴드 센터(소사장)의 발언 녹취록 중 일부를 보면 회사에서 사실상 근로의 지휘감독을 했는가라는 논란 외에도 하청사 직원의 노동운동 여부까지 쥐락펴락하는 압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는 대목이 적지 않다(예를 들어, "노조가 결성이 되면 센터 계약 폐지야, 본사에서" 같은 발언의 경우 실제로 이런 압력이 하도급측에 하달됐는지 혹은 그냥 꾸며진 내용인지 실체 규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삼성의 경우보다 더 나쁘다? 소사장제 악용 우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그리고 삼성서비스센터의 협력업체들이 고용한 많은 직원(기사)들이 위장하도급 논란 속에서 열악한 처우를 감수하고 일하고 있는 점은 위와 같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런 하도급 구조 외에도 이미 삼성서비스센터보다 더 진화(?)한 형식을 택하는 등 구조의 세련성이 더해가고 있다는 새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통·철거 기사들을 한 팀처럼 묶어 운용하는 소사장을 두고 있는 센터들도 상당수라는 주장이 10일 기자회견장에서 제기된 것이다.
이남신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소사장 제도의 등장은) 삼성전자서비스, 티브로드 등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아주 특이한 형태"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아울러 "중간 착취의 수준이 굉장히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소사장 제도란 기업 경영이 어려워진 일부 사례에서 히든 카드로 종종 사용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바 있다. 이른바 '경영혁신' 영역에서 주목받은 개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제도는 경영상 필요에 의해 특히 경쟁력이 없는 부문을 처리할 때 유용하게 활용된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이를 떼어내 매각하는 등 조치가 여의치 않은 경우 종업원이 주인이 되고 이전 회사와 계속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크게는 '종업원 회사 매입 제도'와도 유사성이 있다.
문제는 소사장 제도나 사내하청 등이 같은 회사나 공장 내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처우가 다른 많은 고용관계가 생겨나는 원흉으로 작용했듯, 중간 착취 등에 악용될 여지가 숨어있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노조 가입을 직접적으로 강하게 방해하는 사례가 발견된 점은 뒤집어 보면 소사장들이 느끼는 절박성 크기를 방증한다. 작은 회사로 잘게 쪼개 일을 맡겨 구조를 복잡하게 하면서 단결 가능성을 극도로 작게 하는 셈이다. 실제로 소사장 제도의 부정적 효과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정치인이 초강수를 요청하고 나서기도 했다. 은 의원은 '수시감독'이라는 비상대응에 주목하는 대표적 정치인이다.
은 의원은 대기업 통신사 고객센터의 임금착취 행태를 정부가 수시감독해야 한다고 23일 주장했지만, 문제는 실효성 있을 정도로 강력한 수시감독 집행의 물적 그리고 인적 토대를 당국이 투입할 의지가 있는지에 달려 있다. 결국 '서비스 기사'들은 지루한 소송전을 피하면서도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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