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전발 0시50분'이라는 노래로 희미하게 철도와 함께 연상되는 대전. 광역시급이면서도 1993년 엑스포 외에는 외지인에게는 이렇다 할 특징이 알려져 있지 않다. 교통의 중심지로 급속히 커진 신생도시 이미지가 강할 뿐이다.
하지만 대전은 충남권역의 대표 도시이자 지방 교육의 중심지다. 이 곳은 또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에 대한 열의가 높은 고장이기도 하다. 3년 내 일자리 3000개를 목표로 한 '대전형 협동조합' 500개를 설립하겠다는 게 대전의 포부다.
이런 구조 때문일까. 작가들이 모여 글을 쓰고 생활 안정 차원에서 각종 논의를 진행할 협동조합이 구성되는 전국적으로도 드문 케이스가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대전의 문화를 발굴해 내고 육성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작가들 모여 공통의 관심사 논의 '할 일 무궁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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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잡지 '작가마당' 주간이기도 한 김병호 책임작가(좌측), '경향신문' 신춘문예 출신의 시인이자 공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정덕재 작가가 대표로 조합의 얘기를 들려줬다. ⓒ 프라임경제 | ||
그래서 이들은 순문학 단체냐, 참여문학 성격이 강하냐 등의 보통 문인들이 모이면 나오게 마련인 일반적 도식이나 문법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책임작가'라는 명칭을 통해 서로 글과 문화적 열정을 논하고 글을 쓰는 이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좋은 틀로 조합을 택한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부딪히거나 할 일 없이 오손도손 잘 운영돼 오고 있다. "공통의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정덕재 책임작가)"라는 설명처럼 수시로 의견을 개진하고, 전화로 이야기할 때도 있는 등 편하게 의사소통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는 게 우리나라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많은 작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들은 조합 이전에도 개인적 관계가 있었고 또 문필가들의 조직 등에서 유대가 있었다. 하지만, 조합이라는 틀을 통해 다시 한 번 묶인 만큼 이들이 앞으로 개개인이 펜을 들고 있을 때보다는 더 의미있는 일들을 많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변에서 부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가장 개연성이 크다고 기대되는 출판 사업에 관련해 정 작가는 "이런 책을 내야겠다는 전제로 (논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면서도 "글을 쓰는 대표적인 표출 행위가 출판이지 않은가? 우리는 당연히 출판이 중요한 사업 목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창작이라는 행위 특성상 공장에서 물건을 쏟아내듯 인풋-아웃풋이 기계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이들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창작을 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존중해서 꾸준히 이뤄지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철길 따라 성장' 숨은 얘기 많은 도시의 '이야깃꾼' 역할은?
출판사업 등 구상 외에도 실제 이들은 이미 의미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대전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단체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 4월, 대전문화재단의 '원도심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조사연구분야 수행단체'에 선정됐다.
대전은 경술국치 후 회덕군청을 한밭으로 이전하고, 이 한밭을 기점으로 호남선 철도공사가 시작되면서 19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게 된 곳이다. 그저 교통의 중심지라고 치부하기에는 이미 백년 역사의 배경이 간단치 않고 그만큼 외지인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의 숨은 이야기가 적지 않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에서는 이에 따라 '원도심, 길에서 흔적을 찾다'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구 성과물이 12월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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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은 교통의 발달과 함께 큰 도시이나 이미 지역 거점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쌓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진은 스토리밥의 취재 대상이기도 한 원도심의 옛 충남도청. 서울의 덕수궁 근방의 구 법원 청사처럼 일제시대 건축의 전형적 양식을 따르고 있다. ⓒ 프라임경제 | ||
이 같은 작업의 진행은 이들이 대전권에 연고를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이들이 모였다는 특성이 가장 잘 발휘된 것이라는 풀이다.
실제 조합원 책임작가들은 물론 사진작가, 웹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이들과 조율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데 이를 원만히 꾸려오고 있다. 본지에서도 협동조합 모델로 취재를 했던 대전의 극단 '나무시어터' 등 숨은 문화 요소들을 인터뷰했고, 구 충남도청 등을 기점으로 선화동, 은행동 등 원도심의 구석구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옛 충남도청 같은 경우는 일제시대의 흔적으로,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근대 문화유산도 있고, 일제 잔재도 있고 문화 유산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하는 정 작가는 "스토리텔링이라는 작업을 원도심 작업에 한정해 말하자면, 지역에 대한 흔적과 기억, 그것들을 통해서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이기 때문에 지역학에 감수성을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 세기 역사 쌓은 한밭'에 인문학 향기 더하는 재능기부
한편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에서는 자신들이 쓰는 글의 탯자리가 돼 준 대전에 재능기부를 통해 보답하는 역할도 이미 착착 진행하고 있다.
호수돈여고에서 열린 청소년 인문학강좌에 참여,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관심도를 높이고, 조합의 인지도를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호수돈여고 홀스톤갤러리에서 열렸던 '이유(理由)를 알아야 관심이 생기지'란 주제의 청소년 인문학 강좌에서 김병호 책임작가는 시인이 과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진단했다.
요즈음 유행하는 개념으로는 '통섭'이 될 것인데, 김 작가는 실제로 시집 '포이톨로기', '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 과학산문집 '과학인문학' 등 영역을 넘나드는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많이 과제가 있겠다 생각
"자발적으로, 시간이 맞는 학생들이 오는 자리였는데도 60여명이 참여했다. 밝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 김 작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조합으로서의) 목적과 활동 범위에서 글쓰기의 재능기부가 들어 있었고, 사회적 경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멘토링이나 이익환원 등 '나누는 것'을 기본적 태도로 가져야 하지 않는가. 아울러 젊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 정 작가
이렇게 준비 운동으로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충실한 몸풀기를 보인 만큼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나가고 할 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조합의 역할이, 그리고 과제가 많이 있겠다 싶다"는 이들이 앞으로 또 어떤 기획취재를 통해 원고작성 등 다양한 스토리 콘텐츠를 내놓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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